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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 산책] 예술가의 일

안규철


  • 이솝 우화에 ‘개미와 베짱이’이야기가 있다. 여름 동안 땀 흘려 일하는 개미 옆에서 노래만 부르던 베짱이는 겨울이 오자 추위와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개미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이 우화는 두 가지 버전이 있다. 하나는 베짱이가 문전박대를 당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마음씨 좋은 개미의 도움으로 무사히 겨울을 났다는 것이다.

  • 어느 버전이든 이 우화의 메시지는 일하지 않고 노래만 부르던 베짱이가 땀 흘려 일한 개미에게 잘못을 뉘우치며 용서를 빈다, 즉 혹독한 대가를 치른다는 것이다. 베짱이가 개미의 도움으로 살아남았더라도 사람들은 이듬해부터 베짱이의 노래를 듣지 못했을 것이다. 지난해의 굴욕을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열심히 일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 ‘개미와 베짱이’엔 反예술 정서 담겨

  • 이 우화에는 예술에 대한 가장 오래되고 폭넓게 퍼져 있는 반감이 담겨 있다. 오랫동안 예술가들은 사회의 일반적 관습과 의무를 벗어 던진 이단자, 비현실적인 공상에 빠져 사는 이상주의자로 여겨져왔다. 일하지 않기 때문에 이들의 인생은 외롭고 고달플 수밖에 없고 부모들은 자식이 이런 길을 가도록 방치할 수 없다. 수많은 예술가들이 부모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쳐 길고 험난한 우회로를 거쳐야 했고 훨씬 많은 사람들은 현실의 벽 앞에서 예술의 꿈을 접었다. 

  • 그런데 예술가들이 생산하지 않고 소비만 한다는 게 사실일까. 베짱이가 노래 부르는 것을 생산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예술가가 사회를 위해 무엇인가 생산하는 일을 해야 한다면 무엇을 생산할지를 결정하고 평가하는 것은 누구인가. 여기서 우리는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 지난 1980년대에 한국 미술은 예술과 사회의 관계, 즉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격렬한 논쟁 시기를 겪었다. 미술계는 미술이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느냐를 놓고 첨예하게 대립하는 두 진영으로 나뉘었다. 미술가들은 “미술이 현실에 대해 발언하고 역사의 편에 서서 사회의 변화에 기여해야 한다”는 민중미술 진영과 “정치 수단이 돼서는 안 되며 자율성을 지키면서 내적 혁신을 계속해야 한다”는 모더니즘 진영 중 어느 한쪽에 속하거나 양쪽을 모두 비판하거나 둘의 화해를 주장하거나 침묵해야 했다. 

  • 당시 이 논쟁은 주로 정치적 이념의 문제로 다뤄졌지만 필자는 여기에 미술가들의 심리적 요인이 상당히 작용했던 것으로 생각한다. 민중미술 진영은 현실비판과 정치적 발언을 통해 자신들의 예술에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역할을 부여하려 했다. 산업화와 경제개발에 매진하던 한국 사회에서 자신들에게 던져지는 냉랭한 시선을 의식하며 미술의 길에 들어선 그들은 ‘베짱이의 노래’가 아니라 현실과 역사를 진전시키는 ‘일’을 하고자 했다.

  • 예술은 세상에 대한 질문이자 노동

  • 예술은 사회에 무슨 일을 해야 할 것인가. 아주 오래된 질문이다. 하지만 숱한 논쟁에도 불구하고 정답은 없다. 우리는 이 질문에 하나의 정답을 정함으로써 더 이상 질문을 할 수 없게 만들었던 역사적 사례들을 알고 있다. 20세기 전반 독일의 나치미술이나 소련의 사회주의 리얼리즘 미술은 지배 이념에 복무하는 미술 이외의 것에 퇴폐ㆍ반동ㆍ시대착오라는 낙인을 찍어 금지시켰지만 결국 동어반복 속에서 스스로 소멸했다. 미술은 지난 세기 동안 끊임없는 질문과 이의제기ㆍ논쟁의 장이 돼왔다.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질문은 그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한 열려 있는 질문이다. 세상에 대해 의미 있는 질문을 하는 것은 하나의 일이며 생산이다.

  • - 서울경제 2012.11.10
  • http://economy.hankooki.com/lpage/opinion/201211/e201211091747334891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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