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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파 그림 좋아하세요?

이두식

현대미술은 좀 난해하다.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은 대체로 어려워한다. 전위적 작품은 더욱 그렇다.

20세기 초 시작된 인상주의 미술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100여년간 현대미술은 그야말로 급격히 변화해왔고, 지금도 끝없는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인상주의 이전까지의 미술은 사물을 똑같이 묘사해야 하는 게 화가나 조각가에게 주어진 당면과제였다. 그로 인해 작품의 내용 또한 인물화, 기록화, 종교화 등으로 한정돼 있었다.

미술가는 절대집권자의 요구에 따라 작품 제작에 몰두했고, 나름대로 자기 개성과 예술성을 추구하긴 했지만 사실 묘사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는 못했다. 왕과 귀족, 또 그들 가족의 초상화를 그린다거나 종교화를 제작하는 게 주 업무였다. 또 국가의 주요 업적을 기록하는 임무 등 활동범위가 제한적이었다.

그러던 중 유럽 각국에서 벌어진 시민혁명으로 왕권이 붕괴되고, 새로운 정치체제로 전환되면서 왕권에 의해 생활을 보장받던 화가들은 큰 곤란에 처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는 여러 과학적 발명품이 등장하며 삶의 양상 또한 급격히 달라졌다. 특히 사진기의 발명은 화가들에겐 대단히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손에 의한 사실적 묘사가 기법의 기본이자 전부였던 당시 화가들에겐 사진기의 등장이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화가들에게 생활고라는 크나큰 시련이 닥쳤고, 거의 노숙자 신세가 되어버렸다. 어려움에 닥친 화가들은 삼삼오오 모여 토론하면서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그림만이 그림의 전부가 아님을 점차 깨닫기에 이른다.

과일이 있는 정물을 그릴 때도 사실적 묘사에만 그치지 않고 과일의 맛을 그려야겠다는 생각, 과일을 키워낸 농부의 의지까지 그려야겠다는 엉뚱한 생각이 든 것이다. 인물화를 그릴 때도 모델이 되는 인물의 내면까지 그려보겠다는 욕망이 생겼던 것이고, 그런 엉뚱함은 당시 화가들이 처해 있던 현실을 박차고 나올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였다. 

이에 그들은 사람을 묘사할 때 팔레트 위에 물감을 잘 섞어 피부색을 칠하는 대신, 프리즘을 통해 본 무지개 원색을 점이나 짧은 선으로 찍어바르듯 칠하는 기법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그림은 당시 감상자에겐 당연히 미친 짓으로 취급받으며, 그들에겐 ‘인상파’라는 별칭이 주어졌다.

그러나 이는 회화사적으로 대단한 혁명이었다. 지금 너무나 귀하게 대접받는 세잔, 반 고흐, 모네 등이 그 주인공이다.

당시 세간의 냉혹한 시선에도 굴하지 않고 새로운 창작열을 불태운 전위적 화가들이 등장하면서 그들의 생각은 급격히 변해갔고, 독창적ㆍ개성적이라는 단어가 아주 중요한 화두가 됐다. ‘나만이 그릴 수 있는 그림’이 걸작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심어진 것. 

새로운 것에 대한 열망, 그에 따른 무모한 도전은 수많은 실험적 작가를 배출했다. 때론 뼈아픈 시행착오도 겪었지만, 그들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며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하고 있다. 100여년 전 혹독하리만치 척박한 상황에서도 예술혼을 지폈던 작가들을 오늘 다시 떠올리며 그들에게 마음 깊이 경의를 표한다.

- 헤럴드경제 2012.11.07
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121107000530&md=20121107111209_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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