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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과 경영의 만남 메세나 산책_ ‘쿨 코리아’ 그날을 위하여

이병권

대통령 선거전에서 경제민주화와 보편적 복지, 일자리 창출 같은 엇비슷한 구호가 난무하고 있다. 다 필요하고 중요한 일들임엔 틀림없지만 뭔가 허전한 느낌이다. 혹심한 생활고나 숨 돌릴 틈 없는 경쟁에 찌든 국민을 위로하고 가슴 뛰게 만들 만한 감성적 비전이 부족하다. 정치에도 ‘문화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일찍이 1960년대 초반 미국의 존 F 케네디 대통령 취임 초기에 미국민들을 열광시킨 구호가 있다. ‘달나라로 가자’였다. 이 꿈은 결국 1969년 아폴로 11호의 인간 달 착륙으로 결실을 봤다. 미국민들은 케네디 사후에도 우주 개발과 창공에 대한 대한 동경·개척정신으로 하나가 됐다. 최근 서울광장에 모인 8만 군중이 싸이의 ‘강남스타일’ 하나로 흥겹게 말춤 추며 뛰놀듯 우리를 하나로 묶을 만한 강력한 결집력이 아쉽다. 

우리 근대사에서 남다른 ‘문화적 상상력’을 보여준 인물은 백범 김구다. 나의 소원은 조국통일에 대한 그의 열망을 드러낼 때 인용되지만 이런 구절도 있다. ‘한 없이 갖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는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 남에게 행복을 준다’고 적었다. 1인당 국민소득이 몇십 달러나 되었을까, 지구상 가장 가난한 나라의 지도자는 경제력과 군사력의 상위 개념으로서 문화의 가치를 갈파했다. 조국 광복의 행동가였지만, 인간의 높은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디딤돌이 문화라는 걸 체득한 것이다.

생존과 의식주를 추동하고 이를 뛰어넘는 비전으로 많은 이의 공감과 지지를 끌어내는 힘, 그것이 진정한 리더의 덕목이다. 백범의 ‘소원’이 세상에 뿌려진 지 벌써 70년 가까이 됐지만 우리 국민과 지도자들의 관심과 소원은 여전히 경제와 생존에 머물고 있다.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 세계 10위권 경제대국답게 이제는 더 큰 꿈을 꿀 때가 되지 않았을까. 

‘경제 동물(Economic animal)’이라 조롱받던 일본은 고도성장을 한창 이어가던 1973년 재팬 파운데이션(Japan Foundation)이란 공공 재단을 만든다. 일본이 돈벌이만 잘하는 게 아니라 독특한 문화예술 전통을 갖고 있다는 걸 세계에 알리기 위해서다. 이때 내건 구호가 ‘쿨 재팬(Cool Japan)’ 즉 ‘매력적인 일본’이었다. 이후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일본은 매력 만점의 문화를 지닌 나라, 100년 전 프랑스 인상파 화가들이 동경해 마지않던 나라라는 이미지를 얻기에 이르렀다. 스시는 세계 10대 음식으로 꼽힌다. 문화는 그 자체로 경제이자 복지이고 국가 경쟁력이다. 문화강국으로서의 멋진 한국은 문화산업을 중심축에 놓고 경제와 복지, 국방·외교까지 융합적으로 녹여내야 한다. 이것이 선진국에 오르고자 하는 진정한 ‘우리의 소원’이다.

사회와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을 뜻하는 메세나(mecenat), 이 말의 어원이 된 고대 로마의 정치가 마에케나스(Maecenas)는 문예진흥을 통해 사회를 통합한다는 이상을 내걸고 베르길리우스·호라티우스 등 당대 최고 문화예술인들을 아낌없이 후원했다. 그들은 최고의 예술작품으로 사회에 보답했다.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인간 달 착륙처럼 그 시대를 빛냈다.

우리나라도 10여 년 전 이러한 움직임이 시작돼 부쩍 활발해지고 있다. 문화예술 후원자를 기리는 국제 포상으로 유명한 몽블랑 문화예술상 수상자도 이미 여럿 배출했다. 작고한 박성용 금호아시아나그룹 명예회장을 비롯해 박영주 이건그룹 회장, 김영호 일신방직 회장, 이운형 세아제강 회장,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 등이 문화예술가에 대한 격려와 나눔 대열에 합류한 지 오래다. 기업과 기업인들은 문화예술로부터 영감을 얻어 창의와 혁신에 활용하고 있다. 문화강국의 기치를 더욱 높이려면 민간에서 시작된 메세나 열기에 정부가 제도적 뒷받침을 해 줄 때다. 메세나는 민간의 나눔과 격려의 운동이다. 또한 우리 사회의 창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이고 주름진 곳을 어루만져 주는 민복(民福)운동이다. ‘경제 동물’ 소리를 듣던 일본이 ‘쿨 재팬’ 운동을 통해 품격 있는 국가브랜드를 강화했듯이 우리나라도 메세나를 통해 ‘쿨 코리아(Cool Korea)’ 이미지를 만방에 알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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