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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 간송미술관 유감

손영옥

50대 후반의 정보기술(IT) 기업 이사 Y씨는 고미술품 컬렉터를 아버지로 둔 친구 덕분에 고서화의 세계에 푹 빠지게 됐다고 한다. 그의 ‘간송 전시 사랑’은 대단하다.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 정기 전시회를 지금까지 빠트리지 않고 찾는다는 그는 1971년 1회 전시회부터 지금까지의 전시 도록을 소장하고 있다. 

“부산에서 군 복무하던 시절에도 간송 전시가 있으면 외출 허가를 받아서라도 새벽 기차로 올라왔어요. 도록을 챙겨 저녁 기차로 내려갈 때면 어찌나 좋던지….” 

14일부터 보름 동안 간송미술관 가을 전시가 열린다. 올해로 설립 74주년을 맞는 간송미술관은 국보 12점, 보물 8점 등 유물 5000여점을 보유한 국내 최고 사립박물관이다. 간송 전형필(1906∼1962)이 평생 수집한 이 유물을 1년에 딱 두 번, 봄·가을 전시회를 통해 수장고에서 꺼내 일반에게 선보이는 것이다. 

간송미술관 전시는 Y씨 같은 마니아층뿐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엄청난 사랑을 받는다. 호젓했던 성북동길은 북새통을 이루고, 전시장 입구 도로까지 입장객들이 장사진을 연출한다. 그 긴 줄 자체가 기사화될 정도. 전시장 안은 미어터진다. 간송미술관은 이제 문화 아이콘이 됐다. 간송미술관 전시 구경 자체가 문화적 패션이 되다시피 한 것이다. 사실, 인상파 등 서양미술 블록버스터 전시에 비해 홀대받는 우리 전통미술에 대한 관심을 제고해 준다는 점에서 ‘간송 신드롬’은 긍정적이다. 

그런 간송미술관이 전시를 코앞에 두고 도마에 올랐다.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의 문화재청 국정감사에서 신경민 의원(민주통합당)이 간송미술관의 유물 보존 상황에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정약용의 ‘다산심획(茶山心劃)첩’ 중간 부분이 너덜너덜 벗겨지고 심한 얼룩자국이 있었다.” “2009년 겸재 서거 250주년 전 때 겸재 정선의 ‘필운대’ 그림 진열관 안에 살아 있는 벌레가 있었다.” 여러 증언도 소개됐다. 

간송미술관의 문화재 보존 문제는 문화계 내부에선 진작부터 지적이 있어 왔다. “창문틀이 밀봉되지 않은 옛 건물 그대로 아닌가. 그 사이로 바람이 들어오고 수분도 들어오면서 전시장 안 습도는 엄청나게 변화한다. 간송 소장 유물 대부분이 종이나 비단에 그려진 것인데, 섬유는 습도에 가장 민감한 재료 중 하나다.” 

명지대 최명윤(문화재보존관리학과) 교수는 전시시설뿐 아니라 전시운영 방식도 문제가 있다고 한다. “사람들이 뿜는 열기가 안 좋은데, 간송은 관람객 수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을 뿐더러 비 오는 날 젖은 우산을 그대로 들고 가게 하더라”는 것이다. 그는 “전시장 습도와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갖춘 공기조절 장치도 간송에는 없다”며 “이런 시설에서 귀중한 문화재 전시를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간송미술관이 국가지정문화재 조사에 응하는 방식으로는 유물 보존 현황에 대해 검증이 제대로 이뤄지기 어렵다는 데 더 큰 심각성이 있다. ‘문화재보호법’ 개정안에 따라 2008년부터 국가지정문화재에 대한 정기 조사가 실시되고 있다. 신 의원실에 따르면 간송미술관은 문화재 조사를 자체 연구소에 위탁한다는 조건으로 2009년 ‘동국정운’(국보 71호)에 대한 정기 조사를 받아들였다. 이쯤 되면 문화권력이 아닌가. 

간송의 일대기를 다룬 ‘간송 전형필’(김영사)은 2010년 5월 출간 이래 3만5000여부가 팔린 베스트셀러다. 일제시대 전 재산을 털어 문화재 유출을 막은 애국자에게 국민들이 보내는 애정이다. 국민들의 간송 사랑을 문화권력의 방석으로 이용해선 안 된다. 


- 국민일보 2012.10.13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006526117&cp=n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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