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공감]간송미술관의 딜레마

한윤정

최근 열린 문화재청 국정감사에서 민주통합당 신경민 국회의원이 간송미술관의 문화재 훼손 문제를 지적했다. 신 의원은 문제의 심각성을 강조하기 위해 목격자들의 증언을 공개했다. 10여년 전 미술사학자인 고 진홍섭 전 이화여대 박물관장이 간송미술관 수장고에 들어가 본 뒤 제자들에게 “큰일이다! 큰일! 다 썩었어”라면서 “간송 측에 전적, 회화 관리 상태가 열악해 손질, 소독을 제안했으나 간송에서 거부했다”고 말했다는 것. 또 2008년 70주년 기념전을 관람한 한 언론인은 정약용의 ‘다산심획’ 첩 중간 부분이 너덜너덜 벗겨지고 심한 얼룩 자국이 있었다고 언론에 기고했고, 2009년 겸재 서거 250주년전을 관람한 한 한국화가는 “겸재 정선의 ‘필운대’ 진열관 내부에 살아 있는 벌레가 들어가 있는 것을 목격했다”고 증언했다는 사실이다.

 올해로 설립 74주년을 맞는 간송미술관은 간송 전형필(1906~1962)이 평생에 걸쳐 수집한 국보 12점, 보물 8점을 포함한 유물 5000여점을 보유한 국내 최고의 사립박물관이다. 간송은 문화재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없던 시대에 우리 문화재의 해외 유출을 막은 인물이다. 휘문고보를 졸업하고 와세다대 법학부에 유학한 그는 종로 상권을 장악한 미곡상 집안의 아들로, 민족문화의 결정체인 미술품의 보존이 민족정기 회복운동이라는 독립운동가 오세창의 가르침을 지표로 삼아 독립운동 하듯이 미술품을 수집했다. 그런 그가 1938년 서울 성북동 언덕에 세운 개인박물관 보화각이 지금의 간송미술관이다.

간송미술관은 문화부 기자들에게도 경외의 대상이다. 이곳은 1971년부터 매년 봄, 가을 두 차례에 걸쳐 주제를 정해 소장 미술품을 일반에 무료 공개하는데 전시에 앞서 담당기자를 미술관으로 초청해서 기자간담회를 갖는다. 미술관 측은 그 흔한 보도자료 한번 만든 적이 없다. 기자간담회 일시를 알려주면 미술관으로 찾아가고 최완수 미술관 산하 한국미술연구소장이 전시의 의미를 설명해준다. 배경지식이 없으면 알아듣기 어려운 간담회는 신참기자들이 진땀을 빼는 장소다. 그래도 어느 한 명 불평하는 기자가 없고 간송미술관 전시는 항상 문화면 톱기사가 된다. 일반인들도 마찬가지다. 전시장이 좁아 관람 인원을 제한하기 때문에 몇 시간씩 줄을 서야 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이 간송의 애국적 행위, ‘간송학파’라고 불릴 만큼 열정적인 연구로 미술관을 최고의 경지에 올려놓은 후학들에 대한 경의의 표시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여러 차례 제기됐던 간송미술관의 공공성 확보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문화재를 퇴락시키는 시간은 논쟁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신경민 의원의 문제 제기 이후 간송미술관 측의 볼멘소리가 들린다. 수장고가 비밀이고 전체 문화재 도록조차 없어 문화재가 외부로 유출될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보안 때문에 수장고를 공개할 수 없는데다 자체 소장 유물 목록을 관리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회화의 경우 20~30년마다 손질이 필요하고 비용이 1억원까지 소요되지만 문화재청으로부터 비용에 대한 지원책을 구체적으로 들은 적이 없다는 것이다. 문화재청의 해명은 또 다르다. 유홍준 전 청장 시절부터 문화재 보호를 위해 정부가 지원해 주겠다고 여러 차례 권유했지만 간송 측이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화재는 개인 소장이면서 공공성이 강하다는 딜레마가 있다. 사유재산이니 정부가 함부로 관리하려 들 수 없지만, 그렇다고 그대로 방치해도 안된다. 지원이 먼저냐, 공개가 먼저냐. 간송미술관과 문화재청의 긴장을 지켜보는 제3자의 눈에는 양 기관의 협력이 절실해 보인다. 그것이 문화재를 통해 우리 문화와 민족 정신을 지키고자 했던 간송의 뜻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 경향신문 2012.10.10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10092137445&code=990100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