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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 산책] '북구의 모나리자'와 후원자

송희영

새 학기가 시작됐다. 들뜨고 어수선한 강의실에 학업 분위기를 불어넣는 데 교수의 고리타분한 열 마디 잔소리보다 흥미로운 영화 한 편이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것은 일찍이 터득한 나름의 교수법이다.

영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매년 예술경영개론 강좌의 테이프를 끊는 주역이다. 예술경영을 처음 접하는 학생들이 그 필요성과 탄생 배경을 이해하는데 좋은 교재가 되기 때문이다. 예술작품 창작을 위해 고뇌하는 주인공 화가의 삶과 주변 인물들의 직분ㆍ역할에 숨겨진 예술과 경제의 상관관계, 오늘날 기업 메세나 활동의 역사를 찾아내는 재미가 쏠쏠하다.

라이번이 없었다면 빛 못 봤을 수도

이 작품은 영화가 나오기 전까지는 렘브란트와 함께 17세기 네덜란드 화단을 대표하는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1632~1675)의 명화로 미술애호가들에게는 잘 알려진 작품이다. 이국적인 청색 터번에 진주 귀걸이를 한 앳된 소녀를 묘사한 이 그림은 단순하고 선명한 색상의 대비 속에 소녀의 단아함과 청순함을 섬세하게 표현해 '북구의 모나리자'로 불린다. 최근에는 미술품 해설서의 표지 사진으로 CF 광고에도 종종 등장해 더욱 친숙해졌다.

17세기 무명 화가의 작품이 300년이 지난 오늘 우리의 일상 깊숙이 들어오기까지의 과정을 통해 예술경영의 맥을 짚을 수 있다. 그림에서 영감을 받은 영국의 소설가 트레이시 슈발리에는 1999년 베르메르의 삶과 당시 네덜란드의 시대상을 그린 동명의 소설을 펴냈고 몇 년 후 영화감독 피터 웨버가 영화로 재현해냈다.

명작의 탄생 과정에서 간과되고 있는 중요한 인물 한 사람이 있다. 화가에게 작품을 주문하고 생활비와 제작비를 제공한 후원자 반 라이번이다. 영화에서는 부유한 귀족으로 등장해 그림의 모델이 된 주인공 소녀에게 추파를 던지는 호색한으로 묘사되지만 작가의 작품을 구매하는 후견인이자 예술 소비자로서 예술가에게 작품 생산의 동기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그 역할이 결코 가볍지 않다.

서양문화사에서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를 거쳐 근대에 이르기까지 뛰어난 예술가들과 역사에 남는 예술작품의 탄생 배경에는 예술가를 독려하고 후원한 상류층의 후원이 있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현대사회에서 그 후원세력은 국가의 예술지원 정책과 일반 대중의 후원으로 전환됐고 특별히 기업의 사회문화지원 공헌활동으로 일컬어지는 메세나 활동이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예술가에 대한 금전적 지원이 예술 발전의 주요 동기가 되고 있는 점은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예술가에게 돈은 어떤 가치로 존재할까. 혹자는 예술가에게 금전적으로 후원하면 숭고한 예술정신을 되레 망치고 만다며 비판한다.

가치 공유 소비자, 예술발전의 동력

예술 창작의 동기가 부의 축적이 목표가 아니라 해도 예술가 역시 한 사람의 독립된 경제활동의 주체로서 기본 생계유지는 물론 예술작품 생산에 필요한 소재 발굴, 연구조사, 재료와 첨단장비 구입을 위해 돈은 필요하다. 예술시장도 여느 산업 활동과 마찬가지로 크게 생산자인 예술가와 작품(상품)을 유통시키고 중개하는 판매자, 그리고 구매하고 향유하는 소비자 등이 3대 요소다. 예술가와 판매자와 소비자가 맡은 바 역할을 잘할 때 좋은 예술가가 배출되고 훌륭한 예술작품이 탄생한다.

예술가의 창작욕구가 작품 탄생에 최우선이라는 점은 분명하지만 그의 예술세계를 알아주고 가치 공유를 원하는 소비자의 참여와 요구가 예술 발전의 큰 동력이 된다는 것을 영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 서울경제 2012.9.8

http://economy.hankooki.com/lpage/opinion/201209/e201209071801334891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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