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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달진 : 한 집념의 수집가와 그의 얼굴을 그리는 손

김병종


한 집념의 수집가와 그의 얼굴을 그리는 손

 

김병종 <화가, 서울대 명예교수, 화첩기행 저자>


 

기록이 역사를 만든다. 기록이 없는 구전(口傳)과 설화(說話)만으로 역사는 세워지지 않는다. 처음 대학에 교원이 되고 나서 황당했던 것은, 불과 십 년 전의 일도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당시. 일본의 대학 자료실이나 미술관을 자주 드나들고 있어서 나는 기록이 없이는 미래 비전도 없음을 절감하고 있던 터였다. 거의 무()에서 시작하여 '서울대 미대 40년사 (후에 45년사로 개고(改稿))'라는 책을 쓰게 된 배경이다. 하지만 이 책은 거의 읽혀지지 않은 채 창고에 쌓여있다가 이제는 소실되고 말았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비록 이삭줍기처럼 허리를 구부리고 땅을 헤매야 될지라도 누군가가 당대와 그 문화를 기록하지 않는다면 훗날 뒤돌아보았을 때, 그 역사는 공백으로 남겨있거나 왜곡(歪曲)되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기록은 중요하고 기록하는 자는 위대하다.




1969년 중학교시절

 

사마천은 떠났어도 그가 기록한 사기(史記)의 역사 이천년은 오늘도 살아 숨 쉬고 있다. 그의 기록이 없었다면 중국의 상고(上古)는 아직도 암흑 속에 있었을 것이다. 서두가 길어졌지만 그래서 나는 김달진과 그의 연구소가 참으로 소중한 사람이고 장소라고 생각해 왔다. 그의 연구소는 지식의 곳간을 넘어 이제 국내 최고(最古), 최고(최고)의 한국미술 라이브러리가 되고 있다. 우리 같이 척박한 환경에서 실로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처음 이경성 관장을 통해 인천으로 가는 열차 안에서 김달진이라는 이름과 그의 성실성 그리고 미술자료 수집에 대한 비상한 집념에 대해 들었을 때 나는 참 특이한 사람이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중, 그 특이함은 기특함이 되었고 다시 대단함으로 바뀌어 갔다. 나중 그가 대를 이어가며 이 일을 계속하는 것을 보고 나는 저 일본의 모로하시 데츠지(諸橋轍次)가 생각났다. 대한화사전(大漢和辭典)이 바로 그의 집안과 한 서점 주인의 집념으로 장구한 세월에 걸쳐 완성되었고 훗날 이 책은 아시아의 대영백과사전으로 불리웠던 것이다.

 

김달진은 요새 유튜브에 멋진 패션의 안경을 자주 착용하는 모습으로 나온다. 그는 실제로 미시와 거시의 두 안경을 가지고 있다. 통사(通史)를 보는 '거시의 안경'과 그 통사가 지나간 자리에 남겨진 좁쌀 같은 팩트들을 모아 그만의 작은 역사 혹은 모노가타리(이야기)를 만드는 것이다.




1970년대 만든 서양미술전집

 

그런데 이번에는 그런 자료수집가 김달진에 관한 아카이브가 묶여져 나왔다. 이 책은 김달진의 자료 수집이라는 사적(私的) 비전을 공적(公的) 논리화 시키면서 담론의 장으로 끌고 간다. 유명 예술가를 부친으로 둔 저자는 이미 가학(家學)으로 미술에 입문한 후, 관련 글을 쓰고 미술관의 도슨트로 활동하는 등 미술 영역의 저변에서 활동하다가 김달진에 대해 기록하게 된 것이다. 기록자가 기록자를 만난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특히 발로 뛰는 수집가 김달진이 한땀 한땀 글로 기록하는 저자를 만남으로써 시너지를 일으키게 된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나는 비로소 수집가 김달진의 진면목을 다시 보게 되었다기록이 역사를 만들고 그 역사 속에는 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이 책을 통해 김달진의 생애는 비로소 역사적 조명을 얻게 되는 것을 느낀다. 오랜 고단함이 허리를 펴는 순간이라고 할까. 수집가, 기록자 김달진이 타인의 기록을 통해 자신을 보게 되는 것이니 얼마나 뿌듯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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