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문화 칼럼]우리다운 얼굴, 우리다움의 긍지

박수룡

우리는 이제 우리의 얼굴을 잊어버리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요즘 미의 잣대로 보면 우리나라 대표 미인이라 할 계월향과 황진이의 초상화도 예쁜 얼굴이 아닌 듯싶다.

광고를 보면 서양인 모델이 넘친다. 광고하는 상품을 사용하는 사람은 한국인이 대다수인데도 그렇다. 한편으로는 서양식 미인선발대회가 한창이다. 한 해 100명이 넘는 ‘진 선 미’가 만들어지고 있다. 고추미인 생강미인 자연미인 미스코리아 후보가 그들이다. 서양식 등신 구분과 정형화된 채점 방법으로는 미인대회 목적과 특성을 살리기 어려울 것이고, 외모를 차별해 여성을 상품화해서는 안 된다는 안티운동도 있지만 많은 여성의 관심이 그곳을 향해 있는 모습이 안타깝다. 성형 유행은 또 어떤가. 대학 입학 선물로는 쌍꺼풀 수술, 어버이날 효도 선물로는 보톡스가 유행이라고 한다. 외모 때문에 겪는 불이익과 편견으로 종아리까지 깎는 세태라지만 외모지상주의로 인한 지나친 열등의식뿐 아니라 서양의 미(美) 기준을 일방적으로 좇는 듯해 아쉽다.

서양의 미가 칠등신 또는 팔등신의 규준을 가지고 있다면 한국적 미의 기준은 삼흑 삼백 삼홍의 신선한 인상과 균형 잡힌 자연미라 할 것이다. 짧은 저고리춤에 삼작노리개를 만지고 있는 신윤복의 미인도 주인공은 다소곳한 눈빛, 쌍꺼풀이 없는 아담한 얼굴을 하고 있다. 귀밑머리 하늘거리며 쪽빛치마를 살짝 들어올려 외씨버선을 바라보는 자태는 요즘 사람으로도 미인이다.

서구 미인 좇는 세태가 잃은 것들

오래전 프랑스 파리 국제현대미술 견본시 오프닝 때 진행 부스에서 리포트를 하고 있던 파리 방송국 아나운서가 “인상이 좋다. 동양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며 내게 질문을 했다. 그는 동서양 80여 개 화랑대표 작가 중 한국인이 전시 분위기에 유독 어울린다며 인터뷰를 요청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한국에서는 보통인 내 얼굴이 파리에서 괜찮아 보이나 싶어 전시 일정이 지루하지 않고 즐거웠다. 내 이야기만이 아니라 요즘 유럽에선 이성으로서 데이트하고 싶은 대상이 동양인의 검은 머리 한국인이라는 말도 들린다.

전통미인은 고루한 여인으로 인식되면서 현재 한국인의 삶 속에서 되살아나지 못하고 그 간극을 외국인의 이미지와 모델이 파고든 것 같다.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 소음 속에 타악기를 연주하고 미술이 캔버스를 떠난 시대다. 그만큼 아름다움의 기준도 급격히 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우리의 진정한 미를 간직하고 유지하기가 한층 어렵다. 하지만 그럴수록 새삼 신윤복 미인도 속의 단아한 여인의 모습이 그리워짐은 나만의 생각일까.

몇 해 전 말레이시아 정부에서 ‘우리가 서양인보다 못생겼단 말인가’라는 주장에 힘입어 서양 광고모델을 많이 쓰면 아시아인 사이에 열등감을 조장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서양 광고모델을 쓰는 TV 광고를 중단시킨 적이 있다. 이 같은 방법이 정당성을 가질 수는 없으나 취지만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한동안 우리의 얼굴을 잊고 살아왔다. 서양식 등신 구분이 심어준 규준, 즉 오뚝한 콧날, 백색 피부에 칠등신이 우리의 모습인 것처럼 착각하고 살아왔다. 미술가의 기준으로 볼 때 작가가 묘사할 수 있는 가장 수준 높은 경지의 작품이 있다면 신윤복의 미인도와 암벽에 유려하게 음각 및 양각한 서산마애불을 들 수 있다. 단아한 자태, 호방하게 웃고 있는 밀도 있는 작품으로 형과 색이 많지 않은 두 작품은 적조미(寂照美)와 통한다. 그 전통은 현대미술의 큰 흐름인 모노크롬 양식과 맥락이 닿는다. 화선지와 화강석에 이루어진 조형은 언뜻 단순해 보이지만 그리거나 다듬기가 쉽지 않다. 탄탄한 필력이 아니고서는 발묵성 화선지에는 인물화를 그려내기 어렵고 연질의 서양조각 재료와 달리 강도 높은 한국산 화강석은 작품으로 완성하기까지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땀과 정성이 녹아 있는 작품이요 숭늉처럼 깊이 있는 얼굴이다. 온화한 자연환경 속에서 수천 년을 살아온 한국인들은 장식보다는 무장식을, 인공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더 좋아했다. 인공을 가미하더라도 인위 이전의 자연세계를 보여줄 수 있는 선에서 붓과 정을 놓았다. 이런 일은 작품을 만든 사람들이 그 선에 이르는 경지를 체득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이것이 우리의 문화요 예술이며 우리다움의 얼굴이 아니던가.

한국문화의 특색에 자부심 가져야

외국인 가운데도 한국인이 자신의 얼굴이나 한국인 전체의 얼굴에 대해 의외로 자부심이 약하고 평가에 인색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한류가 세계를 휩쓸고 있지만 만약 한국의 문화상품이 한국적 특색 없이 무조건 서양음악을 베끼는 데만 급급했다면 지금의 한류가 가능했을까. 한류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한국적 정체성을 더욱 확고히 하는 것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우리다운 얼굴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스스로 되새길 필요가 있다.

-동아일보 2011.7.9
http://news.donga.com/3/all/20110709/38666905/1<-동아일보 2011.7.9
http://news.donga.com/3/all/20110709/38666905/1<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