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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도시, 확장된 공공미술의 장

김지연

한때, 냉장고에 코끼리를 넣는 방법이 회자된 적이 있었다. 동일한 문제에 접근하고 이를 해결하는데 전공이나 직업에 따라 다양한 방법론이 가능하다는 것을 흥미롭게 보여주던 유머였다. 나는 그 유머를 들을 때마다 전시공간을 작품으로 채워나가는 작가들의 다양한 작업방식이 떠오른다. 현대미술이 비대해져가면서 이를 수용할 공간이 커지고, 또 커져버린 공간을 감당하기 위해 역으로 작가들의 작품도 자꾸만 커져간다. 그리고 그에 맞춰 더 큰 공간이 요구되는 상황이 반복된다. 작품과 전시공간이 가지고 있는 상관관계는 경우에 따라 스케일 싸움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재치 있게 빈 공간을 채운 작가의 예로 마틴 크리드를 든다.

얼마 전 한국에서 개인전을 열었던 그가 영국의 유명한 터너상을 받았던 작품은 빈 방에 불이 켜지고 꺼지는 것을 반복하는 작업이었다. 최소 경비 혹은 최소 행위로 공간을 채우는 방법으로 그가 선택한 것이 바로 빛이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작업에 분노한 관객이 빈 벽에 계란을 던졌다는 일화도 있지만, 이 작품은 어둠을 밝히는 빛의 존재감과 강력한 메시지 전달력을 확인시켰다.

빛의 파워는 어둠속에서, 그리고 야외에서 더 막강하다. 루미나리에와 연말연시가 되면 빛범벅이 되는 가로수와 건물들을 떠올려보면, 같은 공간을 낮과는 다른 분위기로 연출하여 사람들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는 빛은 확실히 매력적인 대상이다. 요즘 들어서는 조명 이상의 기능을 하는 빛의 모습이 두드러진다. ‘2009서울 빛축제’에서도 엿볼 수 있는 변화였다.

주최 측은 과거 루미나리에 식의 빛축제와 더불어 광화문 주변의 KT 건물과 세종문화회관 건물 외벽을 스크린 삼아 다양한 콘텐츠를 상영하는 모습을 보였다. 광장 가운데에도 LED TV를 조형물처럼 설치해 외벽의 영상들과 연동되는 다채로운 콘텐츠들을 선보였다. 도시의 건물이 일시적으로 스크린이 된 것이지만 LED가 건물스킨을 파고들어간 서울스퀘어, 금호아시아나, 삼성생명 등의 경우에는 건물이 거대한 스크린으로 재탄생(미디어 파사드)하면서 빛은 콘텐츠를 전달하는 매개체가 되었다.

이와 같은 미디어 파사드는 건물과의 조화여부에 관계없이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건물 옥상이나 건물 외벽에 삽입되어 있던 기존 전광판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건물 자체를 하나의 조형물, 메신저, 공공미술의 장으로 만든다. 아이폰을 비롯한 스마트폰이 우리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흔들고 있는 것처럼, 대형 건물들의 미디어 파사드는 표면의 커뮤니케이션이 강화되고 있는 오늘날 건물이 도시환경 속에서 존재하는 방식과 역할의 다양성을 보여준다.

내러티브가 있는 영상 콘텐츠의 수용이 가능한 미디어 파사드가 곳곳에 만들어지기 시작하면서, 미술시장의 수혜를 거의 받지 못했던 영상작가들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이는 미디어 파사드라는 하드웨어 자체에 대한 놀라움과 감동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그것이 담아야 하는 콘텐츠에 대한 고민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뜻으로도 볼 수 있을 것 같아 반갑다. 공공의 영역에 예술이 파고들어가는 방식이 다양해지는 현상이 즐겁기는 하지만, 공공성이 요구하는 규율과 한계를 넘어서서 작가들이 어떻게 다양성을 표출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 우려되기도 한다. 또 과유불급이라는데, 빛의 효과가 던져주는 수혜를 입고자 너나 할 것 없이 미디어 파사드를 설치해 빛공해를 유발할까 염려되기도 한다. 모든 일이 상식적으로 잘 진행되면 별 문제 없겠지만 말이다.

- 2010. 02. 06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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