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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잘 알지도 못하면서

임민욱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하나마나 한 인사, 뻘쭘한 가운데 이름을 말하고 나면 남자이름이네, 토를 단다. 무슨 일을 하느냐는 질문에 미술을 한다고 밝히면 장르를 물어보고 설치미술을 한다고 대답하면 그때부턴 서로 먼 산 바라보기다. 요즘은 좀 다르다. 낸시 랭 같은 거 하느냐고 묻는다. 예전엔 신정아를 만나본 적이 있느냐고 주로 물었다. 갤러리가 탈세의 온상처럼 보도되는 시절에는 ‘행복한 눈물’ 같은 거 그려서 돈 좀 벌지,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참 많았다. 그런 뒤 대개가 어쨌건 상대를 ‘여류화가’로 입력하고 나면 팜므파탈이려니, 자기가 어떻게 생겨먹었든 ‘나홀로 자유’ 영화를 찍어대고 만만치 않을 경우는 입방아로 소설을 쓴다. 그 화가가 스모키 눈화장까지 했다면 그들의 소설은 다큐로 둔갑해 있다.

윤창중이 미국 가서 인턴의 엉덩이를 일 잘하라고 움켜쥔 것도 이와 아주 다른 이야기는 아니다. 미국에서 자란 20대 여성이라면 당연히 자유의 여신일 것이라고 여겼을 테니. 할리우드 영화에서 보듯 키스를 밥 먹듯이 하는 나라에 가서 술 한잔 걸치고 허리를 툭툭 쳤는데 자신을 모셔야 할 미국 ‘가이드’가 감히 신고까지 하다니. 지금도 그 젊은 여성이 울고 있었다는 의미, 윤창중은 여전히 이해를 못 할 것이다. 상처의 차이를 모르면서 문화적 차이를 들먹거리는 윤창중의 변명은 생색내기 문화행정, 공무원들만 손대면 부서지고 촌스러워지는 그 모든 장소와 기억의 미래를 보여준다. 그래서 나는 지금 미셸 우엘벡을 떠올리며 “경멸하고 싶은 유혹”에 격렬히 빠져들고 있다.

돌이켜보면 외국에서 아르바이트할 적에 희한한 자유를 만끽하려는 이런 부류의 한국인들을 자주 봐왔다. 보이지 않는 곳이라 여기면 체면과 존엄을 내팽개치는 이들은 일반 관광객뿐만 아니라 문화예술인들, 관료들과 지성집단 교수들까지, 진상의 진수를 떨치고 다니는 데에는 보수 진보가 따로 없었다. 돈과 권력만 있으면 만사형통이라고 여기는 이 자유의 천민들은 너도나도 쩝쩝거리고, 금발 미녀를 보면 볼에 키스하는 사진 한 장 찍겠다고 부탁해달라 하질 않나, 나체 전신 조각상을 보면 가슴을 만지며 포즈를 취하는 일은 다반사였다. 그때마다 추태는 무리들의 결속력을 다지는 동기를 부여하는 듯이 보였고 젊은 유학생이 어떤 상처를 받을지는 알 바 아니었다. 예술가라면 더욱 안심이지, 정치에 참여하지도 않고 자신의 ‘끼’만 인정받길 바라며 존재감에 목맨 나르시시스트들, 재롱이나 떨어주길 바라는 듯했다.

존재감이란 프레임을 들이대면 정치와 예술의 생태계는 한통속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오래된 오해다. 내가 아는 정치가와 예술가들은 존재감 프레임은커녕 오히려 취향에 반박하며 중심을 비우는 사람들이었다. 내가 아는 정치가들은 삶과 노동의 현장에서 목졸린 소리들을 듣고 부조리한 법제를 뜯어고치느라 실제로 고군분투하고 있다. 내가 아는 예술가들은 보이지 않는다고 자유를 거짓 유용하는 자들이 아니다. 다치기 쉬운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해 정치가들은, 영원히 불가능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의를 구하고, 예술가들은 불일치를 통해 새로운 것을 창조하며 지켜낸다. 국격을 높여주기 위해 더 화끈하고 새끈해야 한다고? 왜 알면서 안 하겠는가. 박근혜 대통령은 노출빈도와 멍청지수는 창조경제를 견인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래도 윤창중의 퍼포먼스, 밀봉 퍼포먼스, 소통 없는 퍼포먼스, 황당하고 해괴망측한 일들이 벌어질 적마다 퍼포먼스로 부르는 것, 불쾌하다. 자유를 업신여기고 해방의 기회로 착각하는 건 언제나 시쳇말로 ‘엘리트 싸가지들’의 오만이었다. 정치와 예술 사이, 퍼포먼스와 수행성 사이, 잘 알지도 못하면 우린 언제나 신중해야 한다.


- 경향신문 2013.05.14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5132121075&code=99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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