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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새 문을 열라

임철순

서예가 하석 박원규는 최근 '식영정(息影亭) 운에 차운(借韻)하다', 즉 '次息影亭韻'이라는 송강 정철의 시를 작품으로 만들었다. '숨어사는 사람(幽人)이 세상을 피하여/산정에 외로운 정자를 세웠구나./아침엔 주역을 보아 진퇴를 정하고/저녁엔 별을 보아 갠 날과 흐린 날을 아네./이끼 무늬는 해묵은 벽을 오르고/솔방울은 빈 뜰에 떨어지는데/이웃에 거문고 가진 객이 있어/ 때때로 대사립을 두드린다.' 이런 뜻이다.

금문(金文)과 한간(漢簡) 초서 등 각종 서체가 난만하게 어우러진 '하석서예의 정화'라고 할 만한 작품이다. 이로써 송강의 시가 새롭게 생명을 얻었다.

작품에는 초서와 예서를 섞은 추사 김정희 '不二禪蘭(불이선란)'의 방서를 본딴 부분이 있다. '세상 사람들이 어찌 알며 어찌 좋아할 수 있으랴' 하는 말이다. (추사처럼 쓰지 못해) '부끄럽다 부끄럽다'는 말이 이어지지만, 거꾸로 온갖 서체와 자학에 밝은 그의 자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이런 삐침 하나, 점 하나에 50년이 들어 있다면 사람들이 믿겠느냐'며 서업(書業) 50년의 공력과 글씨 쓰기의 어려움을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스스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예술의 길을 걷는 사람에게 만족이란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가 보다.

'바위고개' '어머니의 마음' '섬집 아기' 등을 작곡한 이흥렬 선생의 장남인 이영조 전 예술종합학교 교수의 작곡이력도 50년을 헤아린다. 선친으로부터 3대에 걸쳐 14명이 음악에 종사하는 집안의 맏이로 외길을 걸어온 사람이다.

그는 최근 인터뷰에서 잘한 일이 있다면 서양음악 전공자로서 남들보다 한 발 앞서 우리 음악의 뿌리, 그러니까 한국 전통음악을 천착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2시간이 넘는 자신의 오페라 '처용'이 아버지가 만든 16마디의 동요 '섬집 아기'보다 더 훌륭한가 생각하면 자괴감이 든다고 한다. 그에게는 아버지가 존경하는 스승이자 뛰어넘어야 할 산이다.

5년 3개월 만에 복구가 끝난 숭례문에도 50년의 적공(積功)이 빛난다. 1일 종묘 고유제에 이어 4일 기념식이 열리는 숭례문 되살리기에는 도편수 신응수 대목장의 역할이 컸다. 6ㆍ25의 참화를 입은 숭례문을 보수할 때 그는 20대 막내였다. 그 공사가 1963년에 끝났으니 반세기 전의 일이다. 그는 이번 일을 마치고 스승에 대한 부끄러움과 부족감을 토로했다.

어처구니없는 방화로 소실된 숭례문의 기와 위에는 이제 또렷하고 튼실한 어처구니들이 자리를 잡았다. 복구된 것은 숭례문만이 아니다. 기와와 돌을 쌓고 개는 것은 물론 단청작업과 나무를 다루는 것을 모두 전통방식으로 했다. 불에 그을린 목재라도 쓸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살렸다.

숭례문이 불탔을 때 국민들이 그 가림막에 안타깝게 쓴 글귀 중에는 '역사는 장난이 아니고 문화는 장난감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었다. 문화의 중요성과 독자성을 일깨우는 말이었다. 이번 복구를 통해 우리는 문화재 중시의 메시지를 공유할 수 있었다.

이와 더불어 복원하거나 복구해야 할 것은 예술가에 대한 존경과 우대다. 남들이 보기에 평범한 것 같은 글씨의 획 하나, 음표 하나, 못질 하나에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혼과 열정이 담겨 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나태주의 시 '풀꽃')지만 우리는 자세히, 오래 보지 않는다. 그래서 모른다.

숭례문 복구 기념행사의 제목은 '숭례문, 문화의 새 문을 열다'이다. 진정한 예술가들은 스스로 자기 길을 가지 않고는 못 배기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그렇게 걸어갈 수 있게 귀하고 아름다운 예술가들을 위하는 문화의 문이 활짝 열려야 한다.

-한국일보 2013.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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