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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민의 동서남북] 10년 꼬인 '반구대 암각화' 매듭 풀기

이선민

우리는 세계적인 문화재조차 사회적 합의를 통해 보존할 수 있는 역량을 갖고 있지 못한 것일까? 최근 다시 불붙고 있는 '반구대 암각화 논란'은 대화와 타협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인의 고질병을 또 한 번 드러내고 있다.

10년 동안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 반구대 암각화 문제는 이 암각화 보존 운동을 열정적으로 이끌어온 변영섭 고려대 교수가 문화재청장에 임명되고, 박근혜 대통령이 특별한 관심을 표명하면서 급물살을 타고 있다. 문화재청은 고위 간부들이 참여하는 전담 TF를 꾸렸고, 암각화 주변 일대를 국가가 관리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자 울산광역시는 문화재청의 주장대로 할 경우 오히려 암각화의 훼손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는 용역 결과를 제시하며 역공을 펴고 있다.

반구대 암각화 문제는 그동안 논거들이 추가되긴 했지만, 기본 대립구도는 문제가 처음 제기됐던 2003년에서 달라지지 않았다. '문화재 보존'과 '식수(食水) 확보' 중 어느 것이 우선하느냐는 논란이다. 문화재청은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는 암각화가 1년에 절반 이상 물에 잠기는 것을 막으려면 하류에 있는 사연댐의 수위를 낮춰야 한다는 것이고, 울산시는 그럴 경우 울산 시민의 식수 공급에 큰 차질이 생기니 암각화 앞에 생태제방을 만들어 보호하자는 것이다. 양쪽이 팽팽하게 대립하자 국무총리실이 조정에 나서 2009년 다른 곳에서 식수를 끌어오고 사연댐 수위를 낮추는 방안에 합의했지만 대체 수원 확보가 무산되면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워낙 오랫동안 같은 논란을 되풀이하다 보니 양쪽은 상대방에 대한 불신과 감정 대립까지 보인다. 문화재청이 '국민과 함께하는 암각화 보존'을 내걸고 대대적인 홍보와 전시회 등을 통해 여론에 호소하고 나서자 울산시는 '울산 시민을 문화재 파괴주의자로 몰아간다'고 반발하고 있다.

문화재청과 울산시는 협의를 통해 문제를 풀겠다고 말하지만 양자가 보여온 모습은 이와 거리가 멀다. 원래 입장에서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자기주장을 뒷받침하는 우군(友軍)을 모으는 데만 열심이지 자기 쪽에 불리한 연구 결과나 전문가 발언은 무시하는 바람에 제대로 된 토론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문화재청은 열린 자세로 세계유산 등재가 가능한 암각화 보존 방안을 국내외 전문가들과 함께 다각도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 울산시도 관련 부처 간 분석이 엇갈리는 식수 문제의 실태를 솔직하게 공개하고 현실적인 대책 마련을 정부 등과 협의해야 한다.

반구대 암각화의 보존에만 초점이 맞추어지면서 연구가 소홀히 되고 있는 점도 문제다. 정부는 2010년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오른 암각화의 세계유산 지정을 2017년까지 마친다는 계획이다. 세계유산이 되기 위해서는 보존과 함께 문화재적 가치에 대한 학술적 입증이 중요하다. 하지만 암각화는 세계 학계의 관심은 높아져가는데도 국내에서는 보존 논란에 치여 연구는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문화재청과 울산시가 치킨 게임을 계속하는 가운데 올해도 우기(雨期)가 되면 반구대 암각화는 침수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그러나 암각화의 운명이 국가적 관심사가 된 지금이 그동안 꼬인 매듭을 풀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이제 '모 아니면 도'라는 이분법적인 공방을 멈추고 '지루한 소모전 속에서 암각화는 도대체 얼마나 더 물에 잠겼다 나왔다 해야 하느냐'는 국민의 탄식에 응답할 차선책(次善策)을 함께 찾아야 할 때이다.  

 

-조선일보 2013.04.22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4/21/201304210168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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