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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1조원 그림 기부

김태익

'돈 쓰는 법을 알 때까지는 아무리 부자라도 재산을 자랑해선 안 된다.' 소크라테스가 2500년 전 한 말이다. 진짜 부자는 돈 쓰는 걸 보면 알 수 있다는 뜻이다. 비슷한 얘기를 얼마 전 미국 최대 금융그룹 시티은행 회장이었던 샌디 웨일도 한 일이 있다. '내가 진정 미국 상류층 일원이 된 건 시티은행 CEO가 아니라 카네기홀 이사회 멤버가 됐을 때였다.' 웨일은 창립자 앤드루 카네기 다음으로 카네기홀에 기부를 많이 한 사람으로 꼽힌다.

▶미국이 자랑하는 뉴욕 현대미술관(MoMA),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는 모두 부자들 기부로 세웠다. 세계 최고 현대미술관으로 꼽히는 MoMA는 미국 대공황 때 세 명의 부호 부인이 내놓은 돈으로 만들었다. 그중 석유왕 존 록펠러 부인 애비는 금싸라기 맨해튼 땅을 미술관 부지로 내놓고 거액의 건립비를 댔다. 아들 데이비드 록펠러도 2005년 아흔 살 때 '죽으면 1억달러를 MoMA에 기증하겠다'며 가문의 기부 전통을 이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역사는 곧 기부의 역사다. 메트 미술관은 1870년 철도 부호 존 테일러 존스턴이 기증한 작품 174점으로 문을 연 이래 300만 점을 소장하며 세계 3대 미술관에 들었다. 그 사이 금융재벌 JP모건과 로버트 레만, 백화점재벌 벤저민 알트먼을 비롯해 수많은 사람이 메트 미술관을 미국의 문화적 자랑으로 키우는 데 힘을 보탰다.

▶미국의 크고 작은 미술관들을 둘러보면서 작품의 감동 못지않게 작품 옆에 붙은 이름표에서 깊은 인상을 받는다. 그 전시작을 기부한 사람의 이름을 새긴 명찰들이다. 한 전시실에 걸린 거의 모든 작품에 이름표가 붙은 경우도 많다. 중세까지 왕실이나 성직자 몫이었던 예술 후원은 이제 기업가들이 해내고 있다. 피나게 경쟁해 모은 돈을 공동체 사람들이 고루 문화를 누릴 수 있도록 아낌없이 내놓고, 공동체는 그들을 명예롭게 대접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화장품 회사 에스티 로더의 레너드 로더 회장이 피카소·브라크를 비롯한 입체파 화가 작품 78점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기증했다. 그가 37년 심혈을 기울여 모은 걸작들이다. 액수로 치면 10억달러(1조1300억원가량), 전 재산의 13%에 해당한다. 그는 처음부터 '최고의 입체파 미술관'을 만들어 기증할 생각으로 후한 값을 쳐주며 빼어난 작품만 사 모았다고 한다. 우리 재벌들이 이런 사람 반만 닮는다면 누가 그들이 그림 사는 것을 이상한 눈으로 보겠나 싶다. (김태익 논설위원)

- 조선일보 2013.04.12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4/11/201304110304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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