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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이 있는 조선집의 역사가 필요하다

함성호

[사색의 향기/3월 19일] 생활이 있는 조선집의 역사가 필요하다

  • 함성호 시인·건축가
입력시간 : 2013.03.18 21:00:18
수정시간 : 2013.03.18 21: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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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살피는 데에는 그 집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생활이 어떠했는지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 집에 어떤 철학과 사상이 배어 있는지 읽어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집은 어디까지나 삶을 담는 그릇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삶 속에는 당대의 사회상과 철학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집은 철학이나 사상보다도 당대의 생활을 기능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차적인 목적을 우선으로 가진다. 비와 바람에 안전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거기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어떻게 먹고, 어떻게 자고, 무슨 일을 하고, 어떻게 쉬었는가 하는 기본적인 요구들을 공간적으로 풀어내야 한다. 만약 이러한 것들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그 집은 생명력을 가질 수 없다. 우리가 전통이라고 부르는 것에는 당대의 이러한 기본적인 요구들을 수용하고 해결했던 집의 형식들이 존재한다. 그 형식이 생명력을 가지고 오래 존속할 때 우리는 그것을 ‘양식(樣式)’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한 시대의 주거를 분석할 때는 반드시 그 시대의 생활상들이 먼저 연구되어야 한다. 복식이라든가, 식문화, 신분제도, 결혼과 상례 등이 연구되어야 비로소 한 시대의 주거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주거연구는 이러한 점을 간과한 것이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미시사에 대한 연구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고건축에 대한 연구는 반드시 주변 학문과의 연계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아니면, 단순히 구조와 형태에 대한 연구에만 그칠 뿐이다. 이는 단순히 옛날 집은 이러 이러한 생활을 담고 있었다는 고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대에 새롭게 적용해 볼 만한 가능성이 거기서 불거져 나오기 때문이다. “조선집은 불편하다”라는 말이 왜 나오겠는가? 그것은 조선집의 내용이 현대의 우리와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고민이 이루어지지 않는 데에 있다. 조선사람과 한국사람은 생활의 방식이 달랐다. 먹는 방식도 달랐고, 자는 방식도 달랐다. 결혼생활도 달랐고, 마당에 대한 관점도 달랐고, 정원에 대한 생각도 달랐다. 지금 우리는 단일한 공간에서 기능을 벽으로 분할하며 살고 있다. 그러나 조선사람들은 기능에 따라 공간을 나누었다. 그것이 ‘채나눔’이다. 남자의 공간과 여자의 공간, 집주인의 공간과 일하는 사람들의 공간을 각 채로 나누어서 분리했던 것이다. 여기에는 당대의 신분제도와 사회규범, 경제활동의 방식이 그대로 녹아 있다. 이러한 생활을 이해하지 못하고 조선집을 보는 것은 그야말로 빈 껍데기를 보고 자라를 거북이라고 판단하는 우를 저지르는 것과 같다.

그러나 아무리 조선시대의 생활사가 면밀히 밝혀졌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다시 건축에 적용하는 과정에는 빈 구멍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말하자면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쓰던 모자만 보더라도, 정자관, 유건, 탕건, 상투관이 있고, 조정에 나갈 때 쓰는 관모인 사모, 그리고 일상적으로 애용했던 흑립, 또 비막이용의 갈모가 있다. 이러한 모자들에 대한 다양한 종류와 그 기능이 다 밝혀졌다 하더라도 건축에서는 이런 문제가 남는다. ‘이걸 다 어디에 보관했지?’ 항상 상황에 따라 옷을 갈아 입어야 했고, 그에 따라 걸맞은 모자를 썼던 사람들이니만큼 손쉬운 곳에 형태가 변형되지 않게끔 보관했을 것이다. 건축은 그 공간을 찾아야 한다. 벽장일 수도 있고, 시렁일 수도 있고, 아니면 또 다른 곳일 수도 있다. 늘 사랑채에 머물렀던 남자들의 경우 옷은 어떻게 갈아 입었을까? 아내가 사랑채를 드나들며 그 날 입을 옷을 준비해 두었을까? 하인을 시켰을까? 항상 남자들은 그렇게 여자들이 내 주는 옷만 입었을까? 자신이 스스로 입고 싶은 옷을 찾으려 했을 땐 어떻게 했을까? 안채에서 갈아 입었을까? 사랑채에 나와서 갈아입었을까? 건축은 이러한 동선을 그려야 한다.

조선집은 이러한 생활사의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단순히 몇 칸에, 어떤 구조고, 안채와 사랑채의 구성이 어떻고 하는 식의 형식만 가지고는 진정한 양식사에 다가 갈 수가 없다. 이러한 생활사의 면밀한 고증이 이루어지고 건축에서 그 공간을 찾아낼 때 비로소 조선집은 우리 곁에서 입체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지금도 진행 중인 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때에야 비로소 조선집은 한국의 양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한국일보 2013.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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