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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대한문 앞 화재

김태익

서울의 고궁(古宮)들 가운데서도 덕수궁만큼 시민의 발길이 잦은 곳도 없을 것이다. 벚나무 은행나무 단풍나무 같은 가로수들이 계절 따라 꽃과 신록과 낙엽을 선사한다. 겨울에 눈이라도 내리면 중화전 앞뜰은 서울 도심 한가운데라 믿기지 않을 만큼 고즈넉하다. '이젠 모두 세월 따라 흔적도 없이 변해갔지만/ 덕수궁 돌담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다정히 걸어가는 연인들…'(이문세 '광화문 연가') 사람들은 덕수궁과 그 돌담길을 걸으며 나름의 추억을 떠올리고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간다.

▶덕수궁은 왕족의 개인 집이었다가 임진왜란 때 피란 갔던 선조가 돌아와 거처로 삼으면서 왕궁이 됐다. 구한말 경복궁에서 러시아 공사관으로 몸을 숨겼던 고종이 1년 만에 돌아온 곳도 덕수궁이었다. 1904년 덕수궁에서 일어난 큰불은 가뜩이나 실낱같던 왕조의 운명을 재촉했다. 불은 덕수궁 주요 건물과 담장을 삼키고 500년 왕실이 대(代)를 이어 쌓아온 고문서와 유물들을 태워버렸다. 그전까지 '대안문(大安門)'으로 불렸던 덕수궁 문은 다시 세운 후 '대한문(大漢門)'이 됐다.

▶지난 몇달 대한문 앞을 지날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조마조마했던 것은 이런 덕수궁의 불행했던 역사가 생각나서였을 것이다. 작년 4월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이 대한문 앞에 천막을 친 후 제주 해군기지 반대, 용산 참사 등 시위 단체들이 몰려들면서 이곳은 '불법 농성촌'이 됐다. 1999년 서울시가 '걷고 싶은 길' 1호로 지정한 덕수궁 돌담길은 꽹과리와 확성기 소리에 묻혀버렸다. 소음보다 더 큰 걱정은 극도의 무질서 속에서 시민의 사랑을 받는 국가 문화재에 무슨 해(害)나 닥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예 일이 터졌다. 3일 새벽 대한문 앞 농성장에서 불이 나 농성용 천막 세 곳 중 두 곳을 태웠다. 불은 덕수궁 담장 지붕에까지 옮아붙어 서까래를 열개 넘게 훼손했다. 현장에는 검게 그을린 가스통이 나뒹굴고 타다만 종이와 라면 봉지, 페트병들이 흩어져 있었다. 지나던 시민들은 '큰일 날 뻔했어' '이럴 수가 있나'라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붙잡힌 방화 용의자는 '덕수궁 앞이 너무 어지러워서 정리하려고'라고 횡설수설했다고 한다. 국보 1호 숭례문이 방화로 불타 무너져내리던 모습이 5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농성자들의 잘못이나 책임은 아니라고 하지만 그 불이 자칫 번졌으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해보면 아찔하다. 농성하는 사람들이나 관리 책임이 있는 관청이나 더 깊은 생각이 필요하다.

-조선일보 2013.03.04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3/03/201303030144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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