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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빈 콜트·콜텍 공장서 벌어진 예술파괴

김준기

인천 부평의 콜트·콜텍 기타악기 공장에서 야만적인 예술파괴가 벌어졌다. 법원의 부당해고 판결 이후 사업주에 의해 버려진 공장에서의 일이다. 이곳에서 생존권 투쟁을 벌여온 노동자들과 예술가들이 함께 꾸려온 콜트·콜텍 ‘기타 노동자의 집’이 야만적인 폭력에 의해 처참히 짓밟혔다. 지난 2월1일 아침, 법원 집달관과 용역업체 직원 160여명이 공장에 들이닥쳐 대체집행을 강행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현장에 온 경찰은 파괴의 현장을 방관했다고 한다. 다음날 다시 공장에 진입한 노동자들과 예술가들은 처참한 파괴 현장을 보고 깊은 좌절 속에서도 사태를 수습하려고 했지만, 2월5일 새벽에 다시 경찰에 게 모두 연행되었다가 풀려났다.

공장에 입주해서 작품활동을 해온 리슨투더시티, 상덕, 성효숙, 전진경, 정윤희 등의 예술가들은 예고없이 들이닥친 용역들에게 쫓겨났고, 이들의 작품은 짐짝처럼 내동댕이쳐져 파손과 훼손 상태가 심각하다. 용역이 휩쓸고 간 후 현장에 들어간 예술가들은 눈물을 흘렸다. 전진경은 지난해 5월 이후 반년 이상을 공장에 차린 작업실에서 지냈다. 그는 그림과 더불어 철사와 마네킹을 이용한 작품들을 제작했는데, 이번 사건으로 파손과 훼손이 심각해 예정된 전시에 차질을 빚게 생겼다. 작업실 입구에 작품을 설치한 정윤희의 작품도 심하게 훼손됐다.

 

공장 노동자들이 사용하던 물건들을 이용해서 건물 외벽에 설치한 설치예술가 상덕의 작품 ‘기타 노동자 밴드’도 뜯겨 나갔다. 2012년 부산비엔날레 출품작인 성효숙의 ‘새벽 세시’ 연작은 콜트·콜텍의 노동자들과 삼성과 한진중공업 노동자와 유가족, 부산비엔날레 배움위원 등이 함께 만든 뜻깊은 작품인데, 그중 일부는 심지어 불태워지기까지 했다. 공장건물은 이미 철거됐다. 예술가들이 펜스에 남긴 그래피티는 물론 건물 안의 벽화들도 속절없이 사라졌다.

이번 일은 예술에 관한 몰이해에서 비롯되었다. 입주 작가들의 활동은 스쾃이라는 개념으로 해석할 수 있는 예술행동이다. 스쾃은 가난한 사람들이 빈 건물에 입주해서 임시거주하는 행위이다. 예술가들이 스쾃을 통해 작업실을 확보하고 예술활동을 벌이는 일을 사회적 관용으로 끌어안는 것이 문화선진국에서의 일반적인 관행이다. 사회적 약자들의 외로운 투쟁에 연대하는 차원에서 실행한 예술가들의 스쾃을 자본의 논리에 따라 일방적으로 퇴거시켰을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예술파괴를 벌인 것은 대한민국의 문화적 수준을 드러내는 부끄러운 일이다.

예술이란 사회적 소통기제이다. 그것은 국가와 자본이 만들어 놓은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액세서리가 아니다. 예술이 전시장이나 극장과 같이 제도화한 공간에만 존재한다는 생각은 낡은 것이다. 동시대의 예술은 거리와 광장에서, 학교와 병원에서, 그리고 마을과 공장에서 전시장 관람객이 아닌 생활 속의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삶의 예술을 만들어 가고 있다. 사회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예술은 상징투쟁의 장이다. 그것은 서로 다른 생각과 정서가 만나는 가치경쟁의 장이며, 충돌하고 갈등하는 이들 사이에서 사회적 의제를 발굴해 내고 그것을 공론의 장으로 이끌어내는 소통의 장이다.

예술가들이 추구하는 공공성은 거대한 힘의 질서에 의한 기득권을 지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약한 사람들의 소수자성을 옹호하는 데 있다. 부당하게 해고당한 노동자들과 함께 하기 위해서 빈 건물에 입주한 예술가들의 작품을 이처럼 무참히 짓밟은 행위가 다시 일어나서는 안된다. 노동과 자본의 갈등이 예술과 야만의 대결로 번지고 있다. 집행목록에 없는 예술작품들이 용역에 의해 파괴된 상황이어서 이 문제에 대한 법정 소송이 시작됐다. 벼랑 끝에 내몰린 노동자들과 연대하려고 현장에 뛰어든 이들의 예술행동을 지키는 일, 우리 사회가 나눔과 섬김의 공동체로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 중요한 이정표를 만드는 일이다.
 

-경향신문2013.02.21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2202059415&code=99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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