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
공장 노동자들이 사용하던 물건들을 이용해서 건물 외벽에 설치한 설치예술가 상덕의 작품 ‘기타 노동자 밴드’도 뜯겨 나갔다. 2012년 부산비엔날레 출품작인 성효숙의 ‘새벽 세시’ 연작은 콜트·콜텍의 노동자들과 삼성과 한진중공업 노동자와 유가족, 부산비엔날레 배움위원 등이 함께 만든 뜻깊은 작품인데, 그중 일부는 심지어 불태워지기까지 했다. 공장건물은 이미 철거됐다. 예술가들이 펜스에 남긴 그래피티는 물론 건물 안의 벽화들도 속절없이 사라졌다.
이번 일은 예술에 관한 몰이해에서 비롯되었다. 입주 작가들의 활동은 스쾃이라는 개념으로 해석할 수 있는 예술행동이다. 스쾃은 가난한 사람들이 빈 건물에 입주해서 임시거주하는 행위이다. 예술가들이 스쾃을 통해 작업실을 확보하고 예술활동을 벌이는 일을 사회적 관용으로 끌어안는 것이 문화선진국에서의 일반적인 관행이다. 사회적 약자들의 외로운 투쟁에 연대하는 차원에서 실행한 예술가들의 스쾃을 자본의 논리에 따라 일방적으로 퇴거시켰을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예술파괴를 벌인 것은 대한민국의 문화적 수준을 드러내는 부끄러운 일이다.
예술이란 사회적 소통기제이다. 그것은 국가와 자본이 만들어 놓은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액세서리가 아니다. 예술이 전시장이나 극장과 같이 제도화한 공간에만 존재한다는 생각은 낡은 것이다. 동시대의 예술은 거리와 광장에서, 학교와 병원에서, 그리고 마을과 공장에서 전시장 관람객이 아닌 생활 속의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삶의 예술을 만들어 가고 있다. 사회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예술은 상징투쟁의 장이다. 그것은 서로 다른 생각과 정서가 만나는 가치경쟁의 장이며, 충돌하고 갈등하는 이들 사이에서 사회적 의제를 발굴해 내고 그것을 공론의 장으로 이끌어내는 소통의 장이다.
예술가들이 추구하는 공공성은 거대한 힘의 질서에 의한 기득권을 지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약한 사람들의 소수자성을 옹호하는 데 있다. 부당하게 해고당한 노동자들과 함께 하기 위해서 빈 건물에 입주한 예술가들의 작품을 이처럼 무참히 짓밟은 행위가 다시 일어나서는 안된다. 노동과 자본의 갈등이 예술과 야만의 대결로 번지고 있다. 집행목록에 없는 예술작품들이 용역에 의해 파괴된 상황이어서 이 문제에 대한 법정 소송이 시작됐다. 벼랑 끝에 내몰린 노동자들과 연대하려고 현장에 뛰어든 이들의 예술행동을 지키는 일, 우리 사회가 나눔과 섬김의 공동체로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 중요한 이정표를 만드는 일이다.
-경향신문2013.02.21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2202059415&code=990304
FAMILY SITE
copyright © 2012 KIM DALJIN ART RESEARCH AND CONSULTING. All Rights reserved
이 페이지는 서울아트가이드에서 제공됩니다. This page provided by Seoul Art Guide.
다음 브라우져 에서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This page optimized for these browsers. over IE 8, Chrome, FireFox,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