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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게티센터의 교훈

김진각

미국 로스앤젤레스 산타모니카마운틴 기슭에 둥지를 튼 게티센터는 미국인들한테 가장 사랑받는 미술관 중의 하나다. 석유재벌 J. 폴 게티(1892~1976)가 사재 1억3,000만 달러를 기부해 지었다. 세계 최고의 건축가 리차드 마이어가 12년 이상 걸려 1997년 12월 완성한 역작이다. 게티 센터엔 '자연과 문화의 최적 조합'이라는 평가가 따른다. 산타모니카마운틴 정상에서 보이는 태평양과 가브리엘마운틴, 여기에 거대한 격자 거리의 도심으로 흩어지는 주변 환경을 절묘하게 버무려 탄생시킨 결과물이다.

게티센터는 거대한 문화 공간이다. 컴퓨터로 작동되는 트램(노면전차)을 타고 언덕을 오르면 280만㎡가 넘는 매머드 단지가 눈앞에 펼쳐진다. 연대기별로 각종 작품들을 비치한 4곳의 미술관이 중심이지만, 센터 안에 들어있는 게티연구소에 들러 희귀서적과 인쇄물, 미술사 서적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센터 곳곳은 배려에 대한 흔적으로 넘쳐난다. 장애인용 통로가 별도로 설치돼 있고, 가족들이 쉬면서 관람했던 작품을 실습할 수 있는 패밀리 룸도 있다. 이 정도 시설이라면 적당한 입장료도 받을 법하지만 공짜다. 외국인들 역시 예외가 아니다. 주차료만 10달러(1일 기준) 내면 된다. 

게티는 7억 달러를 재단에 내놓았다. 이 돈이 게티 센터의 운영 자금이자, 관람객이 입장료 한 푼 안 내고 21세기를 대표하는 건축물과 세계 유명 작품들을 마음껏 보고 즐길 수 있게 하는 밑천이다. 

게티센터를 언급한 건 황량하기 짝이 없는 우리 재벌의 현실이 떠올라서다. 회사 돈을 빼돌린 죄로 법정구속되거나, 선친 재산을 둘러싼 상속 분쟁 같은 '재벌 총수의 수난'이 해를 넘겨 계속되고 있는 장면을 목도한 뒤부터 더욱 그렇다. 

대한민국에 게티센터 처럼 재벌이 지어 사실상 공공시설로 무료 운영하는 미술관은 단 한곳도 없다. 게티센터와 성격은 다르긴해도 굳이 비교할 만한 공간이 있긴 하다. 이병철 삼성창업주의 호를 따 만든 호암미술관과 이건희 삼성 회장의 열정이 녹아 있는 리움미술관 정도일 게다. 규모만 놓고보면 게티센터가 훨씬 크지만, 호암ㆍ리움미술관은 왠지 거리감이 느껴진다. 두 미술관은 입장료가 있다. 호암미술관은 일반 4,000원, 청소년 3,000원, 리움미술관은 일반 1만원, 청소년은 6,000원을 받는다. 돈 없는 가정이 공원처럼 편하게 찾기란 힘든 장소들이다. 

한국 재벌의 대표 주자가 삼성이라는 사실쯤은 초등학생도 안다. 재벌의 사회적 기여란 폼을 잡아야 빛나는 게 아니다. 기업이 국민들 호주머니에서 나오는 돈으로 부를 축적한만큼 어느 정도의 환원은 당연한 이치다. 대기업이 사회적 요구에 부응한다는 거창한 명제를 내세워 메세나, 사랑의 집짓기, 장학사업 따위의 사회 공헌 활동에만 목을 매는 건 뭘 한참 모르는 아마추어 같은 행동이다. 수혜자가 제한된 때문이다.

재벌과 재벌 총수가 존경받지 못하는 이유는 셀 수도 없이 많다. 글로벌 기업의 정상을 향해 달리고 있는 삼성의 리더 이건희 회장이 회사의 높은 위상만큼 존경받지 못하는 건 어찌보면 아이러니다. 

해법은 멀리 있지 않다. 게티센터를 타산지석 삼으면 된다. '이윤 추구와 부 세습에 골몰한다'는 고착된 재벌 이미지를 쉬운 것부터 깨는 것이다.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호암ㆍ리움미술관을 무료로 개방하는 게 시작일 수 있다. 서울시 한해 예산을 넘어서는 천문학적 순이익을 매년 내고 있는 삼성이 미술관 입장료를 받는 건 어울리지 않는다. 

영국의 경제학자 존 케이는 '큰 사업을 이룬 위대한 기업인은 이익을 목표로 삼지 않는다'고 했다. 이익은 훌륭한 경영활동의 결과이지 목표가 될 수 없다는 의미다. 눈을 조금만 돌리면 재벌이 박수 받을 무대는 마련돼 있다고 본다. '리세스 오블리주'(부자들의 도덕적 의무와 사회적 책임). 반재벌 국민 정서를 진정시킬 답이기도 하다.


- 한국일보 2013.02.18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302/h2013021721073911870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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