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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잡지 ‘공간’을 살려야 하는 까닭

정재숙

“호연지기(浩然之氣)가 이 나라 다 망친다”고 개탄했던 좀팽이가 있다. 한국 잡지의 한 완성을 이룬 한창기(1937~97)다. 좀팽이란 매사에 시시콜콜 꼼꼼했던 그에게 후배들이 붙인 별호로 큰 소리가 주로 이기는 한국 사회의 진부함을 못 견뎌 했던 그의 성정이 잘 드러나 있다.

 평생을 독신으로 보낸 고인에겐 정신적 혈육으로 1남1녀가 있었는데 1남은 종합지 ‘뿌리깊은나무’요, 1녀는 여성지를 표방한 ‘샘이깊은물’이다.

두 잡지는 한국현대사를 설명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매체인데 언론학자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특이하게도 한창기를 박정희(1917~79) 전 대통령과 대비해 설명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언제부턴가 ‘민족주체성’을 역설하기 시작했다. 이순신과 세종대왕 찬양을 국책사업으로 추진하더니, 방종마저 ‘민족주체성’으로 흘러넘치게 하겠다고 결심했다. 위에서부터 아래로 군사작전 식으로 추진된 ‘우리 것 사랑하기’는 실로 ‘우리 것’에 대한 모독이었다. 한창기의 ‘뿌리깊은나무’가 출현한 건 바로 이런 상황이었다. 그건 박정희식 ‘우리 것 모독’에 대한 소리 없는 저항이었다.”

 지난 4일 최종 부도 처리된 공간종합건축사사무소는 건축설계사무소였지만 문화인들에겐 건축미술도시환경 전문잡지 ‘공간(空間)’ 발행처로도 유명하다. 1966년 11월 창간된 월간지 ‘공간’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통치이념으로서 ‘우리 것’을 주장하기 이전에 전통문화의 가치를 알아채고 현대적 예술 흐름과 동행할 수 있는 이론적 바탕을 담아냈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오광수 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등 오늘 한국문화계의 핵심 인물로 일하는 많은 인사가 ‘공간’의 실무자였다는 건 그 한 방증이다.

 ‘공간’을 만든 건축가 김수근(1931~86)은 ‘뿌리깊은나무’의 한창기와는 또 다른 지점에서 우리 문화의 바탕을 일군 선각자다. 그가 씨 뿌려 반세기 가까이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일에 이로운 전통문화의 시대정신을 우리에게 전해준 ‘공간’이 모기업의 돈 문제로 폐간 위기에 놓였다는 건 불행한 일이다.

한 달에 7000부를 찍고 그 대부분이 정기구독자에게 배달된다는 사실은 김수근이 함께 누리고자 애썼던 한국미의 원형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여전히 많다는 증거다. 한국 문화의 원형을 탐구했던 수많은 논문들, 자료와 사진들이 생물처럼 살아숨쉬던 ‘공간’은 막막하고 답답했던 한 시절을 견디게 한 통풍구였다.

 죽어가는 문화재급 잡지를 살리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람다운 세상살이를 꿈꾼 ‘공간’을 살리는 건 이제 사회적 책임으로 번져간다.



- 중앙일보 2013.01.11
http://joongang.joinsmsn.com/article/aid/2013/01/11/10001869.html?cloc=olink|article|defa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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