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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섭 / 빛으로 빚은 색의 풍경

심현섭




빛으로 빚은 색의 풍경


심현섭 | 미술평론가


화가는 그리는 사람이다. 그들은 무엇을 그리고 그림이 향하는 곳은 어디인가. 그림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으로 향한다. 화가는 대상을 보고 자기감정을 이입하고 조작하여 표현한다. 그 결과물에는 화가의 감정에 따라 움직인 손의 흔적과 점·선·면으로 이루어진 형태가 남아있다. 관객이 그 흔적과 형태에서 화가가 대상을 보면서 찾았던 ‘자기’를 발견한다면, 꼭 그렇지는 않더라도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일이 발생한다면 그림이 원하는 바는 어느 정도 성취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두섭의 스물여섯 번째 개인전 《앞의 언덕》(2024.4.17-22, 이즈갤러리)은 손의 흔적과 함께 면으로 구성된 작품을 선보인다. 그 면은 색으로 채워졌다. 색의 미세한 차이가 캔버스에 점과 선을 만들지만, 그의 그림에서 이 모든 것들은 색으로 수렴한다. 이두섭은 이번 전시에서 “작품에서 보이는 외적내용과 현실 재현능력의 기대 등을 저버리고 오롯이 색의 긴장을 통해 꿈을 꾸려 노력“했다고 말한다. 그는 색면의 형상을 끄집어내기 위해서 작품에서 보이는 외적내용과 현실 재현능력을 포기했다. 그러나 화가는 어떤 구상적인 것으로부터 형상을 추출해내는 사람이다. 따라서 작가의 말은 작품의 주제를 잊어버리고 현실, 즉 눈에 뵈는 대상을 오롯이 자신의 감정에 맞춰 조작했음을 의미한다. 대상의 형태는 이두섭의 감정 속에서 헝클어지고 뭉뚱그려져 색으로만 남는다. 이두섭은 거기에서 발생하는 색의 긴장만으로 작품이 관객에 다가가 그리는 자의 ‘자기’와 관객의 ‘자기’가 발견되기를 소망한다. 



이두섭, <MISTY>, 65.1×90.9cm(30P), oil on canvas, 2024


그렇다면 이번에 선보인 작품의 핵심은 색의 긴장일터, 그 긴장을 발견하는 일은 감상의 중요한 포인트다. 이두섭의 그림은 점과 선을 해체하여 색으로 캔버스를 채웠지만 다양한 색을 겹겹이 쌓으며 배경을 뒤로 밀어낸다. 그러나 배경을 뒤로 밀어내는 것만 같은 화면은 불현듯 거칠게 칠을 긁어내면서 밀려난 배경을 전면으로 당겨오려고 몸부림치기도 한다. 이두섭의 색의 긴장은 이와 같은 배경의 은폐와 드러남의 반복으로 이어지는 색의 변화와 캔버스 하단에 이르러 그 배경을 속절없이 드러내는데서 발생한다. 이런 배경과 전면의 반복과 중첩은 이두섭이 오랫동안 몇 개의 아크릴에 형상을 겹쳐 만들었던 작업의 연장선에 있다. 그때는 기계적 중첩이 다소 차갑게 느껴져 상대적으로 긴장이 약화하였다면, 이번 작품들에서는 색에 담긴 감정의 층들이 하나의 캔버스 안에서 위에서 아래로 감춤과 드러냄을 반복하며 색의 변화를 이끌다가 급기야 바닥에 흘러내리며 긴장을 불러일으킨다. 이와 같이 감정선의 중첩으로 읽히는 색의 변화와 은폐와 드러냄의 반복이 감상자의 시선과 감정을 밀고 당긴다.  



이두섭, <금지의 지점>, 72.7×100.0cm(40P), oil on canvas, 2024


이두섭의 색의 긴장은 빛에 대한 인상으로 나타난 대상의 흔적과 관련 있다. 이것은 이두섭의 작품을 추상색면회화라고 선뜻 말하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한데, 그의 그림에는 끝내 포기하지 못하는 대상의 흔적이 남아있다. 이런 점에서 이두섭의 색은 뉴먼이나 로스코의 색과 결이 다르다. 그들의 색이 시각, 즉 대상에 반사되는 빛에 대한 인상을 배제하고 주관적 개념에 치중한다면, 이두섭의 색은 대상에 비친 빛이 제공하는 시각적 인상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빛이 제공하는 색의 향연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다양한 색들이 연이어 배열한 캔버스는 물론이고, 하나의 캔버스 안에도 끊임없이 이어진다. 색들의 차이가 캔버스에 점과 면을 만들어 아련한 형태를 갖추는가 하면 공중에 불쑥 하나의 사과가 떠오르기도 한다. 그리고 빛에 대한 그때그때의 지각과 인상을 축적하려는 양, 물감이 흐른 층의 흔적을 캔버스 하단에 그대로 남긴다. 미술의 역사에서 색이 빛에 비친 대상에 대한 감정적 혹은 직서적 표현과 대상을 배제한 인간 주체의 이성 혹은 개념의 표현 사이의 갈등 끝의 산물 중 어느 하나로 캔버스에 남았다면, 이두섭의 색은 전자에 가깝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색은 ‘날 것’이다. 



이두섭, <MISTY>, 80.3×116.8cm(50P), oil on canvas, 2024


이와 같은 이두섭의 색의 특징은 그의 바람 같은 방랑벽에서 비롯한다. 그는 지금껏 그림을 그리면서 떠돌았다. 아니 떠돌면서 그렸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흐르는 사람이라 하고, 내가 모르는 나를 찾아가는, 어디에도 머무르지 못하는 경계의 사람이라고 한다. 

바람에 의해 나부끼는 여린 풀잎의 움직임. 문득 가던 길 멈추게 해 ‘나’를 깨운다. 인연과 우연. 바람을 타고 온 꽃향기가 나를 이끈 것일까. 파스텔 톤으로 묘사한 화면엔 꽃무더기 벌판위로 아스라이 흰 구름이 지나가고 있다. 자연에의 외경심(畏敬心). 인간과 공명할 때 자연은 위대한 잠언으로 다가오나 보다.

이 방랑이 나는 누구인가를 찾는 화가의 길을 따라 이어졌다는 점에서 정신적인 방랑일 수도 있지만, 여기에서 방랑은 실제로 자연을 찾아 이리저리 옮겨 다닌 지리적 떠돎을 가리킨다. 중2때부터 그리기 시작하여 군대에서도 막대기를 들고 땅에 쉬지 않고 무언가를 그릴만큼 그리기에 집착했던 이두섭이 방랑에서 겪은 빛의 경험과 감정을 그리지 않을 재간은 없었을 것이다. 이처럼 이두섭의 색은 인간의 개념에 머물기에는(혹은 나아가기에는) 너무 많은 빛을 경험한 색이다. 이 경험이 만든 생생한 빛의 색이 관객의 감정을 팽팽하게 끌어당기며 진동을 일으킨다.  

방랑 가운데 빛의 경험으로 이루어진 이두섭의 원초적 색은 풍경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1983년 이래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그의 작업과 2010년 이후 조립과 중첩으로 이루어진 작업에서도 들풀, 하늘, 강, 바다 등 길에서 본 풍경이 꾸준히 맥을 이어오고 있는 점에서 잘 나타난다. 작가의 풍경에 대한 미련과 애착은 2018년 전시 《Spring & Another Gesture》의 Another Gesture 부분으로 이어지다가, 2023년 전시 《길에서 만난 풍경》에서는 분명히 드러난다. 차이가 있다면 그동안의 작업이 형태가 남아있는 풍경이고, 이번 풍경은 선과 면이 축약과 확산을 오가며 색으로 드러난다는 점이다. 

     

이두섭, <가는 길 1>, 60×40cm, mixed media on canvas, 2012



이두섭, <중도>, 18×26cm, watercolor on paper, 2022



이두섭, <스치는 것(들)> 60.6×80.3cm(25M), oil on canvas, 2024


제목이 없으면, 이번 전시의 작품을 보는 관객은 색의 미세한 변화와 때론 형태의 흐트러짐 속에서 하늘, 노을, 수평선, 바다를 무심히 떠올릴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두섭의 색과 풍경은 구상적이다. 작가 스스로 밝히듯 “뚜렷한 형체보다 감정과 감상에 초점을 맞춰 왜곡을 결정한다”고 한 것처럼 뚜렷한 형태는 없으나 어떤 변형된 윤곽과 형태를 떠올리는 여기에, 이두섭의 색과 풍경이 갖는 독특한 성질이 있다. 이것이 자연과 인위, 빛과 개념의 혼합이거나 갈등, 그 어느 중간쯤에 위치한 이두섭의 색이 주는 매력이다. 이는 어쩌면 2018년 “햇빛 아래 정렬된 대상들을 나만의 방법으로 재배열하였다”는 그의 작업 노트와 약간 어긋나있던 당시 작업들이 미처 성취하지 못했던 색의 뒤늦은 현전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지연은 지금, 이두섭의 색을 위해 ‘빛의 풍경’을 따라간 작가의 긴 여정이 채워진 시간이었다.

그는 왜 색의 긴장만으로 대화하기를 원했던 작품들에 제목을 붙인 것일까. ‘감각하는 발’, ‘그(녀)와의 하루’, ‘새처럼 감각(하며)’, ‘허공에 머무는 말’과 같은 제목으로 색의 애매함을 보완하거나 상쇄하려던 것이었을까. 아니면 색의 긴장을 더하기 위해서였을까. 그것도 아니면 색이 가져오는 작품 자체에 대한 변형과 왜곡, 나아가 관객에게 전달될 때 발생하는 왜곡을 우려하는 작가의 마음이 드러난 것일까. 그러나 그의 색은 이미 모든 걸 말한다. 나의 주관적인 감상일지 모르지만, 이두섭의 색의 풍경은 빛이 빚은 색과 그 긴장 끝에 나타나는 대상의 흔적으로 “내안에 있는 미친 나를 꺼내어 치유하고 평화스러워지려는” 마음과 “세상의 모든 갈등을 긍정으로 끝마치려는” 작가의 애틋함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작가의 말대로 비교는 본질에 접근하지 못한다. 떠도는 자에게 지금은 언제나 출발이고 시작이다. 자신의 색으로 날마다 언덕 너머 새로운 풍경을 향해 나아가는 이두섭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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