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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불확실한 미래를 향한 또 한 번의 도전

심현섭

3. 불확실한 미래를 향한 또 한 번의 도전

 

코흘리개 시절부터 수집에 광적으로 몰입한 소년이 여성 잡지에서 발견한 그림을 보고 본격적으로 미술자료를 모으기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김달진에게 내일이 확실한 적은 없었다. 늘 다음을 걱정해야 했고, 간혹 찾아오는 보람과 기쁨이 주는 위로와 힘으로 밀물처럼 밀려오는 불안을 이겨내면서 걸어왔던 시간들이었다. 가족의 생계를 짊어진 가장으로서, 가치 있는 미술 자료를 선정하고 수집하여야 하는 수집가로서, 직원들의 월급을 책임져야 하는 한 회사의 경영인으로서 김달진의 삶은 누구보다 파란만장했다. 다른 어떤 집단보다 우월감이 강한 미술계에서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비전공자가 겪었을 정신적 고통은 겪어보지 않은 이는 섣불리 예측할 수 없다. 다만 그의 신에 대한 믿음과 가족에 대한 사랑, 미술에 대한 애착과 집념이 그가 느꼈을 좌절, 때론 모멸과 수모를 견디게 했을 것이라고 예상할 뿐이다


언제나 동안이라는 소리를 듣던 그의 얼굴에는 어느덧 주름이 깊어지고, 해맑은 웃음은 여전하나 머리는 희끗하다. “금요일의 사나이로 불리며 인사동이며 사간동의 갤러리를 휘젓던 김달진의 어깨는 당시 도록을 담은 가방의 무게로 인해 지금은 두 번의 수술을 받고서도 정상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월간 전시계 사원 시절, 이건용의 퍼포먼스를 제일 앞줄에서 팔짱을 끼고 심각히 바라보던 더벅머리에 나팔바지를 입은 작은 체구의 김달진은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미술박물관의 관장이 되었고 미술연구소의 소장이 되었다. 한국 박물관협회 이사, 서울특별시 박물관 협의회 이사, 종로구 박물관 협회 회장 등이 직함이 그의 이름 앞에 붙었다. 수많은 언론들이 그의 삶을 조명하였고 홍진기창조인 상을 수상하고, 자신의 취미를 직업으로 삼은 대표적인 인물로 2013년 중학교 도덕 교과서(금성출판사)에 실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무슨 보상이라도 되었을까. 그가 운영하는 박물관은 여전히 자료를 보관할 공간 문제에 시달리고 운영자로서 그는 매달 대출 이자와 직원들 급여를 책임져야 하는 막중한 책임아래 있다. 상황은 여전히 지난날처럼 꿈과 희망으로 버텨야 할 상황이지만, 몸과 정신이 쇠퇴해가는 김달진은 지난날의 자신감 대신 자괴감이 밀려오고, 때론 모든 걸 그만두고 싶은 유혹을 느끼기도 한다.

 

이제 나이가 느껴져요. 환갑의 나이를 넘기니 의욕이 감소하는 거죠. 몸도 정신도. 노후도 걱정돼요. 광고수입은 줄어들고 직원 월급 등 지출은 증가하고. 사회적 명성은 얻었지만 개인적인 갈등은 더 깊어져요. 이 사업을 유지할 수 있을까. 정말 경제적 부분으로 그만 두고 싶기도 하죠.

 

그렇다고 그는 포기할 사람은 아니다. 김달진은 무엇보다 자신의 일이 개인의 일이 아니라 공적인 일로 공적재산에 속하는 직업이라는 분명한 신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제가 김달진이라는 이름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가 있어요. 자료수집이든 뭐든 모든 일은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에요. 사람의 이름을 내걸고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어떤 조직에 속해서 어쩔 수 없이 하는 사람이 아니라 의지, 소명, 사명감과 애정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사람. 지금 나의 일은 김달진의 이름을 걸고 하는 공적인 일이고 공적인 재산이라고 생각해요. 정보, 자료보존에 대한 필요성을 더 느끼기도 하고요. 보이지 않는 문화에 대한 중요성 같은 거요.

 

윤진섭에 의하면 인간사회의 기저를 이루는 각종 제도가 한 인간의 열정을 이길 수 없는 이유는 제도가 익명적이고 추상적인데 반하여 열정을 가진 한 인간의 노력은 실명적이며 구체적이기 때문이다. 12)


한 인간의 열정이 담긴 김달진이라는 이름은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후원회 감사를 맡고 있는 김용수 변호사의 말대로 하나의 브랜드요 역사인 것이다. 이러한 의미와 가치를 자신의 이름과 일에 부여할 줄 알고, 시간이 갈수록 더욱 정보와 자료 활용과 같은 보이지 않는 문화의 중요성을 느끼는 김달진이 이제 와서 자신의 소명을 포기한다는 것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다만 본인이 느끼는 개인적 갈등을 지속가능한 박물관을 위해 무엇인가를 준비해야 할 때가 왔음을 알리는 신호로 인식하는 일이 중요할 것인데, 김달진은 이를 충분히 알고 있다.

 

박물관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대략 두 부류가 있어요. 기업의 지원, 문화재단 설립으로 재원이 충분한 곳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죠. 재원이 충분한 사람들은 별 어려움 없이 대를 이어 운영해가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박물관을 지속하기 어려워요. 그런데 나는 재원이 부족하지만 자료의 활용이라는 측면에서 지속해야 하는 의무를 느껴요. 그래서 가업으로 이을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현재 자료실 대리로 근무하고 있는 아들, 김정현을 후계자로 지목했다. 김정현은 군 제대 후에 박물관 일을 시작했는데, 자료 관리나 검색관리 뿐 아니라 잡지 배포 등 밑바닥 일까지 두루 경험하고 있다. 김달진은 현재 사업의 방향 설정과 같은 미래에 관한 부분은 후계자에게 일임하고, 자신은 경험을 전달하는 수준에서 개입하고 있다. 따라서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등의 미래에 대한 사업 구상은 후계자인 김정현과 나눈 대화를 통해 가늠할 수 있다. 그와 나눈 대화 속에 <김달진미술박물관>이 풀어야 할 숙제가 있고, 그 숙제를 풀어가는 과정이 곧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의 미래가 될 것이다. 김정현과 나눈 대화 내용을 싣는다.

 

심현섭(이하 심): 현재 박물관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가?

김정현(이하 김): 나는 정원사이다. 아직 의사결정권자는 관장님이시다(김은 아버지 대신 관장님이라 호칭했다) 나는 건물관리, 잔디정리, 월말에 200군데 정도 잡지배포를 한다. 잡지 기획 등 거의 모든 잡일에 관여한다. 공식 직함은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대리이다.

 

: 현재 박물관의 직원 규모는 어떤가?

: 정식직원은 13명이고 책을 등록하는 일에 관련하여 2명이 비정규직으로 일한다. 잡지팀 8, 학예팀 3, 자료팀 3명이다. 남자 직원은 2명이다.

 

: 어릴 적 기억에 남는 장면은?

: 자료가 쌓여있는 집, 크리스마스 선물을 숨겨놓던 박스 사이, 박스 위에 매트리스를 올린 침대가 떠오른다. 관장님은 거의 밤 11시에 귀가하셔서 함께 시간을 보낸 기억이 별로 없다. 함께 교회 가던 일, 가끔 등산 같이 간 일 빼고는. 관장님은 오래 전에 친척보증을 잘못서는 바람에 내가 중학교 때부터 2014년 초까지 15년 동안 신용불량자였던 기억이 있다.

 

: 관장님 사업에 대해 인식하기 시작한 시기는?

: 2012년 회사에 들어오면서 인식하였다. 물론 경기대에서 미술경영학을 전공했지만, 그것은 관장님의 영향이라기보다, 누나가 글쓰기를 좋아하고 역사에 관심이 있던 나에게 권유한 것이었다. 누나(김영나)는 지금 잡지팀 팀장으로 일한다.

 

: 회사에 개선할 부분은 무엇인가?

: 먼저, 조직문화를 개선해야 한다. 관장님과 직원의 갭이 크다. 2011년 창립멤버 윤기섭의 퇴직으로 중간관리를 해주는 사람이 없다. 현재 조직의 갈등이 큰 상황이다. 빨리 중간관리자 역할을 할 사람을 영입할 필요가 있다. 두 번째로 콘텐츠의 영문화를 이뤄야한다. 이는 곧 박물관의 글로벌화인데 현재 우리는 외국인의 필요를 채우지 못하고 있다. 마케팅 자료나 중요한 컨텐츠의 영문화 작업이 급선무이다. 현재 20권정도 번역했으나 앞으로 300권 정도의 번역이 필요하다. 세 번째는 재원확보다. 현재 9억 원의 부채가 있다. 한 달 이자만 500만원이 나간다. 2010년을 기점으로 잡지 수입이 감소하고 있다. 현재 수입구조는 잡지광고 80%. 정부 지원금 15%, 후원회5%이다. 재원확보를 위해 중고책 서점을 운영하지만 200만 원 정도의 수입을 올릴 뿐 역부족이다. 서울아트가이드 운영방안을 모색하는 등 재원확보를 위한 연구가 필요하다. 네 번째는 관장님 이후 연결망을 확보하는 문제다. 현재 우리 박물관은 동시대성을 놓치고 있다. 서도호, 이불, 정연두와 같은 중견 작가의 자료가 없다. 타개책은 내가 40대 작가나 큐레이터를 접촉해야 하는데 솔직히 아직 자신이 없다. 이를 보완할 경영자를 영입할 의사가 있다. 내가 준비될 때까지 회사를 운영할 책임자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사업의 선택과 집중이다. 미술관 공간이나 재원 문제로 인해 지금까지처럼 모든 것을 모을 수는 없다. 자료의 범위를 선택하여 집중하고자 한다. 해방 이후부터 2000년대 말까지 조형예술과 관련한 한국 미술사와 관련한 종이자료(서지)에 집중할 예정이다. 오늘날 유행하는 디지털 영상 자료는 포기할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박물관의 성격에도 맞지 않는다고 본다.

 

김정현이 서지에 집중하기로 한 데는 재원이나 인력, 개인적 흥미여부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그 결정은 시의적절하다고 본다. 2010년 이후, 서울아트가이드의 매출을 감소추세에 있다. 매출 뿐 아니라 언론매체의 범람이 이룬 정보의 홍수는 양질의 정보를 추려내는 일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어 인력의 보완이 없으면 감당하기 힘든 지경이다. 게다가 정부의 연구 프로젝트 등 지원금이 활자매체 대신 온라인에 집중되면서 연감 등 종이매체 자체의 존재감이 상실하고 지원이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김달진은 이런 식으로 변화한 환경을 우려한다. 특히 인터넷에 고장이 생길 경우, 자료가 과연 온전할 수 있는지 걱정한다. 자료보존의 문제 뿐 아니라 오늘날 출판업계는 인터넷과 종이매체로 갈라져 매우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특히 종이 매체는 14세기 직지심경 이후 가장 심각한 위기라고도 할 수 있다. 새로운 전자 매체의 홍수 속에서 한때 그 생명력이 다했다는 진단을 받을 정도였다. 그러나 전자책이 가지고 있는 접근성의 한계, 특히 미술과 같은 전문서적의 경우 정보량과 분류의 한계, 종이책이 주는 질감과 같은 감각적인 재미 등으로 인해 오히려 그 중요성이 재부각하였다. 따라서 김달진/서울아트가이드가 집중하기로 한 서지의 수집, 출판, 보존은 적절한 판단이다. 경제적 압박을 이겨내고 미술사의 관점에서 미술계의 요구를 정확하게 읽고 그 내용을 채우는 기획력에 초점을 맞춘 상태에서 표지나 제목 등을 매력적으로 만들어 가면, 그동안의 축적된 역량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도약을 맞을 것이라 여긴다.


 

12) 윤진섭, 혁신과 창의, 도전정신으로 가득 찬 미술자료의 산실, 아카이브스토리, 201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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