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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미술 25/ 공동체적 방법론: ‘공동체적 협의체’ 구성의 실제(2)

심현섭

공공미술 25/ 공동체적 방법론: ‘공동체적 협의체’ 구성의 실제(2)

2. 수평적 역할분담

협의체 구성원 간에는 수평적 역할분담과 상호이해가 중요하다. 수평적 관계의 정도는 협의체 안에서 이루어지는 의견의 동등한 수용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 협의체 구성원끼리 수평적 관계에서 각자의 역할을 분명하게 설정하되 각 의견에 대한 비중도 수평을 이루어야 한다. 

구성원간의 만족을 충족하는 합리적 조정 결과는 먼저 관료나 전문가가 그 권위를 내려놓고 수평적 관계를 지향할 때 주어진다. 레이시는 수평적 관계를 위해 사업 수행의 주체들을 비위계적인 구도로 설정한다. 수평적 관계를 위해 전문가는 전체 의견의 방향을 잡아나가는 앵커 역할을 하되 불필요한 권위의식과 차별의식을 가져선 안 된다. 특히 작가는 공공미술에서 자신의 창의성, 실험성을 무리하게 관철하려해서는 안 된다. “공공미술이 공공장소의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인 한, 누구에게도 어떠한 절대적인 미학적 우선권이 주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박찬경, 양현미) 

공공미술의 의의는 작가와 공중이 함께 특정 장소와 시대에 최적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협업에 있다는 인식 아래 그 의의에 충실한 자세를 견지하여야 한다. 이 부분에 대한 다른 의견이 있는 것을 안다. 가령 공공성의 다른 이름은 다양성이라고 하면서 “낯설고 불편하고 짜증나게 하고 더군다나 난해하기 짝이 없는 공공미술 작품이라 하더라도 소통, 그 과정과 반성을 통해서 그 작품의 긍정성은 얼마든지 확보될 수” 있다고 하면서 “공동미술의 공공성은 전혀 공공적이지 않은 이질적인 형식도 담아내는 그러한 공공성이어야 할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임성훈). 그러나 이것은 켈리의 말대로 공공미술이 아닌 작가 개인, 적확하게는 자신의 투자로 확보해야 할 개인성이지 공공성이 아니다. 필자는 모든 걸 떠나 공적자금을 가지고 공공장소에 불특정 대중을 대상으로 만들어지는 공공미술에 있어서 협의과정에서부터 공중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형식, 혹은 형태라면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실질적으로 협의과정이 적절하게 진행되었다면 합리적인 작가라면 이러한 대중의 거부를 받아들일 것이라고 여긴다. 이는 뒤에 언급하겠지만 필자가 주장하는 사후 검증 단계에서 해체될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작가의 방어책이기도 하다. 

'행동하는 문화'를 기획했던 제이콥은 '예술과 삶, 작가와 관람자 사이의 간격을 좁히고, 공적 영역에서의 작가 역할을 재정의할 것'을 목표로 했다. 공공조각에서 미술인에게 자기표현을 위한 여지가 없다고 말하는 버지니아 막시모비츠(Virginia Masymowicz)와 같은 극단적인 주장까지는 아니더라도 전문가는 자신의 작업을 자기만족이나 배제의 논리에 의해 이끌어가서는 안되며 예술가와 ‘공공’을 이루고 있는 사람을 동등하게 놓고 각각의 차이를 인정하고 공유하는 ‘새로운 공동체주의’(박윤조)의 틀 안에서 협의체에 참여해야 한다. 

작가나 기획자를 포함한 미술 전문가가 권위의식과 차별의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면 협의체에 속한 관료는 권위의식과 함께 집단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관료들은 특성상 상명하달 식의 일사분란하고 획일적인 문화에 익숙하다. 다양한 의견이 난무할 때 더 훌륭한 안이 나올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협의체에 대해 직접적인 참견과 간섭보다는 재정을 지원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불간섭의 원칙을 유지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협의체에 속한 지역주민 등 타 구성원들도 관료나 전문가의 식견을 인정하고 수용하려는 긍정적인 태도가 필요하다. 특히 지역주민은 경제 활성화나 관광 상품 개발 등 경제적 이익에 더 관심을 가질 수 있다. 이와 같은 지역주민의 이익은 토의과정을 통해 작가의 예술성, 실험성, 전통과 정체성 보존, 예산 투입의 우선순위 등의 사안과 함께 조정해나갈 필요가 있다. 제이콥은 모든 사안을 공동체 구성원들이 상호 열린 마음으로 풀어갈 것을 제안한다. 

'지역 공동체에서 공공미술은 여러 방법으로 다양하게 진행돼야 합니다. 각 공동체마다 성격과 환경이 다르기 마련이라 어떤 수학적 공식 같은 방법은 없습니다. 프로젝트를 단기적으로 할 것인지, 장기적으로 할 것인지,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어떤 이득이 있을 것인지, 수많은 소통 과정이 단계적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작가와 전문가, 공동체 구성원 사이에 얽혀 있는 관계망을 열린 마음으로 풀어내야 합니다.'

3. 이상적 담화 상황 

상호 열린 마음의 공동체적 협의체는 무엇보다 서로의 대화가 자유로운 상황이어야 하는데 하버마스가 제안한 ‘이상적 담화 상황’이 그것이다. 협의체 구성원은 각자의 위치에 따라 이해관계가 틀리고 지향점이 다르다. 여기서 발생하는 갈등을 조절하는 것은 건전한 토론문화다. 심상용은 공공미술이 경험하고 있는 혼돈과 한계의 근원적인 이유로 공공미술 담론이 그 자신이 관계할 ― 놓이고 위치되고 개입하고 대화하고 교류할 ― 세계를 죽은 사물과 동일한 하나의 대상으로 취급하는 오랜 습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수전 손택(Jusan Sontag)은 이러한 인간에 대한 사물화 시선을 시몬느 베이유(Simone Adolphine Weil)의 표현을 빌려 ‘폭력’이라고 한다. 

이러한 폭력의 시선을 교정하기 위해서는 ‘나-그것(Ich-Es)’의 관계에서 ‘나-너(Ich-Du)’의 관계로 나아가야 한다. 마틴 부버(Martin Buber)에 의하면 ‘나-너’의 관계는 세 개의 영역으로 나뉜다. 첫째는 자연과 더불어 삶, 둘째는 사람들과 더불어 삶, 셋째는 정신적 존재들과 더불어 삶이다. 이러한 관계형성은 너 혹은 나는 어느 누구와도 다르다는 ‘다양성’과 ‘다원성’을 인정하여야 가능하다. 협의체 안에서 이루어지는 상호간 토론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토론장에서 나-너의 인격적인 만남이 이뤄질 때, 서로 간 이해와 공감의 폭이 넓어지고 실제적인 협력을 이루어냄으로써 공공미술의 질은 향상될 것이다. 

하버마스는 토론장에서 행해지는 행위를 ‘목표지행적 행위’와 ‘의사소통적 행위’로 구분한다. 목표 지향적 행위는 인지적-도구적 합리성 개념을 선호하는 행위로서 비의사소통적이다. 이는 좁은 의미의 합리성으로 주관적 견해를 극복하지 못한다. 그러나 의사소통적 행위(話行)는 로고스 개념에 연결되는 좀 더 넓은 의미의 합리성 개념을 선호하는 행위로서 논증적 대화를 통해 주관적 견해를 극복하고 객관적 세계의 통일성과 함께 삶의 상호주관성을 동시에 확인하게 한다. 

하버마스는 토론에서 행해지는 발언의 합리성은 비판가능성의 여부로 확인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어떤 표현의 합리성은 비판가능성과 근거제시 가능성에서 비롯한다고 보고. 표현의 타당성 또한 청자에 의해 수용되거나 혹은 반박될 될 수 있는 비판 가능성에서 획득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상대를 존중하고 열린 마음으로 발전적 비판과 수용이 허용되는 이상적 담화 상황에서 모두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길로 들어선다. 

“실패로부터-가설의 반박과 개입의 좌절로부터-배우는 능력과 결합되지 않을 경우 그 합리성은 우연적인 것에 불과하다. 이런 부정적 경험이 생산적으로 처리될 수 있는 매체가 이론적 토의, 즉 문제가 되는 진리 주장을 주제화하는 논증의 형식이다.”(하버마스) 

물론 하버마스의 담화적 상황에 대한 반론은 만만치 않다. 이런 상황이 결국 위계의 다른 모습일 뿐으로 여기에서 도출한 합의는 위계 상 높은 위치의 입장을 대변한다는, 특히 페미니스트들의 반론이 그 하나다. 다른 반론은 하버마스의 담화상황이 보편적, 전체적인 합의를 강요함으로써 개인의 의사를 억압하는 구조라는 지적이다(리오타르와 포스트모더니스트). 이는 누구를 위한 미술인가라는 미술의 사회적 역할, 나아가 정파성이나 공동체-내 상호 차이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라는 문제로 나아가는 존재론적 논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논의를 뒤로 미루고 하버마스의 토론장이 갖는 의사소통적 도구, 또 합의의 과정으로서 기능의 차원에 주목하자면, 다른 사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서로의 주관성을 확인하는 대화 행위가 모두의 이익을 조정하는 가운데 공공미술의 목적에 도달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점은 유효하다(레이시). 

다음: 공공미술 26/ 공동체적 방법론: ‘공동체적 협의체’ 구성의 실제(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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