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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공간 / 한국미술정보센터

심현섭

                                                 한국미술정보센터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은 언론 보도와 후원회 결성에 힘입어, 2009년 3층 옥상에서 경복궁 일부가 보이는 경관이 좋은 창성동으로 이전한다. 청와대 길목이어서 출입에 통제를 받아야하는 등 불편한 점도 있었지만, 3층 전체를 박물관으로 운영하고 뒤편 별관을 연구소로 운영할 수 있는 장소였다. 그러다가 박물관으로서 미술도서 자료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열람서비스 하겠다는 목적으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2010 예술전용공간 임차지원사업’에 지원하여 선정되었다. 홍익대 부근의 창천동에 있는 옛 전원미술학원 별관건물에 입주하여 1층은 주차장 2, 3, 4층 전관을 사용하였으며, 한 층에 25평씩 좌우로 구성되어 총 150평의 공간이었다. 전세보증금 10억은 정부지원금 8억2천7백만 원, 나머지 1억7천만 원과 시설비는 자부담으로 충당하였다. 1층에는 박물관 전시장, 1열람실, 2층에는 2, 3열람실, 3층에는 학예실, 수장고로 구성되었다. <김달진미술연구소>는 본관에 별도로 20평 공간을 사용하였다. <한국미술정보센터>는 국내외 미술관련 간행물, 기록물, 자료를 수집하고 제공하는 본격적인 미술정보 공간으로 자리하였으며, 한국근현대 미술 분야 단행본, 정기간행물, 화집, 학회지, 학위논문, 전시팸플릿, 작가개인파일, 신문기사, 기타 영상자료에 이르는 방대한 미술자료 열람서비스를 하였다. 공적 지원을 받은 공간에 개인사업자인 김달진미술연구소는 사용할 수 없다는 사유로 분리되였고 옆 건물 별도 공간에 임대료를 지불했다.



그러나 이 임차지원사업이 2년간 기간이라 2012년 만료인데 조건부로 2년이 연장되었다. 이후 공간 확보를 위해 2013년 3월, 김홍남 前 국립중앙박물관장의 주선으로 박원순 서울시장을 주말데이트에서 만나 공간을 요청하였고 유휴공간으로 노원구에 있는 구 서울북부지방법원, 강남 서울의료원, 은평구 옛 질병관리본부, 평창동 가스충전소 등이 거론되기도 했다. 서울시립미술관과의 협의도 있었으나 어려웠다. 그 외에도 안산 경기창작센터, 대구예술발전소, 청주문화산업진흥재단 등에서 공간제휴 이야기가 나왔지만 접근성의 문제, 아직은 문화가 서울 중심이라 자료 자체가 서울에서 활용되기를 원했다. 공간연장을 위해 청와대 모철민 교육문화수석, 용호성 국장,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야당 유기홍, 여당 주호영 국회의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권영빈 위원장, 문화융성위원회 김동호, 전용일, 유진상 위원 등을 만나 사안을 알리고 부탁했었다. 문화체육관광부에 예술정책과 김상욱 과장, 시각예술디자인과 서영길 과장,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김찬동 전문위원 등이 내방하기도 했다. 공간문제가 많은 언론기관에서 보도되는 등 여러 사람들과 함께 노력해 보았으나 허사였다. 김달진은 아카이브의 중요성이 이슈화된 시대에서 문화융성을 부르짖으며 존재하던 2010년 국립예술자료원이 4년 만에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합병되고 한국미술정보센터 지원이 끝나는 데 대해 아쉬움이 컸다. 이외에도 서울시립미술관(관장 김홍희)의 한 사이트로 운영하는 안도 검토했으나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 심각한 문제는 몇몇 신문에 보도되었지만 결국 국가지원금 8억2천7백만 원은 정부에 반환되었다. 



한국미술정보센터와 박물관의 공간문제는 지난 국민대총동창회 지하실 문제보다 더 심각했다. 넓은 공간에 소장한 자료들의 양이 많았는데 당장 이 자료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한 지경이었고, 시설비 등으로 투자한 자금도 회수 불가능하였기에 여러 가지로 큰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김달진은 공간을 얻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고, 그 필요와 명분에 공감한 언론에서도 적극 박물관의 위급한 상황을 알렸다. 당시 한국미술정보센터의 공간문제를 다룬 기사로는 [한겨레신문 2013.4.12] 미술자료 5만6천여점 맡아줄 곳 어디 없소 / 임종업 기자, [한국일보 2013.5.2 기자의 눈] ‘걸어 다니는 미술사전’의 마지막 꿈 / 이윤주 문화부 기자, [조선일보 2013.5.7 김태익의 태평로] 김달진 씨가 잠 못 이루는 사연 / 김태익 논설위원, [월간 퍼블릭아트 2013.5월호] 김달진박물관 운영자금 난항 “공공기간 나선다면 기증할 것”, [월간 미술세계 2013.5월호] 위기를 맞이한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김달진 박물관장, [경향신문 2013.6.4] 김달진 미술자료관장 “평생 모은 ‘보물’ 전시할 공간 필요” / 김윤숙 기자, [인천일보 2013.6.18] 인천에 한국미술 아카이브를 만들자 / 김재열 인천예총 회장, [서울문화투데이 2014.5.9 윤진섭의 비평프리즘]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의 위상과 존재의 이유 / 윤진섭 미술평론가, [조선일보 2014.6.23] “3개월 남았네요, 길바닥에 쫓겨날지… 잠 못 이루는 날이 계속 되네요” / 최보식 선임기자 등이 있다. 



최보식 기자에게는 김달진이 당시 급박한 심정을 담은 이메일을 보냈다. 


23일 제가 '김세중기념사업회'에서 시상하는 한국미술저작출판상을 받습니다. 그런데 저희 공간 문제가 3개월 남았네요. 정말 길바닥에 쫓겨나게 되는지, 잠 못 이루는 날이 계속되네요. 이번 수상을 계기로 기사화를 해주시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저희 문제는 김달진 개인의 문제가 아니랍니다. 



이렇게 이루어진 인터뷰의 일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김달진씨는“오늘의 정확한 기록이 내일의 역사로 남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측에서는 이런 사정을 고려해주지 않나요?



'작년부터 이 문제 해결을 위해 다리품을 팔았어요. 박원순 시장, 국회의원, 문화관광부 장관, 문예진흥위원장, 청와대 ○○○수석, ×××국장 등도 만났고…. 정말 해볼 수 있는 일을 다 했어요. 한편으로는 '내가 이렇게 구걸을 해야 하나' 싶어요. 이런 자료들이 김달진 개인의 것이 아닌데.'



―이대로라면 석 달 뒤에는 어떻게 되죠? 



'지금으로서는 길바닥에 나앉는 수밖에 없어요. 지인들은 '수집 자료를 몽땅 불태우는 퍼포먼스라도 벌여라'고 합니다.' 



―아까 한 바퀴 돌아보니까 자료 열람자가 딱 두 명이 있더군요. 공공 이용도가 이렇게 낮다면 정부 지원 순위에서 밀리지 않을까요? 



'그렇지요. 사람들이 모이는 전시회장이나 가시적인 것에 지원해야 생색이 나지, 미술 자료 보관에 지원하는 건 주목을 못 받죠. '몇 명이나 그걸 이용하느냐'며 경제적 효용성을 따집니다.' 



―그게 우리 상식이지요. 



'하지만 여기에 오는 사람들은 여기에 오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들입니다. 여기 말고는 전국 어디에도 이런 자료들이 보관된 곳이 없기 때문이죠.'





―이쯤 했으면 개인으로서 할 만큼 했는데, 이제 그만둘 생각은? 



'차라리 그만 손 떼라는 말도 들었어요. 저도 압니다. 아집(我執)은 망하는 지름길이라는 걸. 욕심보다 더 무서운 거죠.' 



―공공 도서관이나 박물관에 자료 기증을 해버리는 것도 현명한 선택일 수 있지요. 



'이걸 맡아서 관리해주지 않아요. 아마 쓰레기 취급을 받겠죠. 일은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자료 보관의 필요성을 알고 애정을 갖고 해내느냐에 달린 겁니다. 제게는 천직이었지만요.'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했는데 공익에도 부합했다. 이는 정부나 공공기관이 해야 할 일이었으나 못 했던 일이었다. 그는 별 의심 없이 평생을 바쳐 이 일에 몰두했다. 한 작은 개인의 헌신에 대해 우리 정부도 응답의 의무가 있다고 본다. 설령 대형사건 뉴스로 경황이 없어도 말이다.  10)


경제적 효율성만을 내세워 사용자 수와 같은 가시적인 성과를 평가 기준으로 삼고 생색나는 지원에만 관심을 갖는 정책에 대한 섭섭함과 공공도서관, 박물관 등 공공기관에서조차 자료 보관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한 인터뷰의 결론으로 최보식 기자는 “한 작은 개인의 헌신에 대해 우리 정부도 응답의 의무가 있다”고 마무리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국민의 입장에서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개인의 헌신에 대해 정부가 무책임한 것은 익히 경험해온 터라 더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 그러나 김달진의 증언에 의하면 서울시와 협의하는 과정에서 일정기간 후에 자료를 서울시에 기부 체납하는 조건으로 박원순 시장의 공간지원을 약속 받았고 교통방송에도 나왔다.  이 약속이 실무 차원에서 무산된 사실은 국가를 이루고 있는 직업정치인과 관료와 국민의 관계를 재고하게 한다. 박원순 시장은 국민의 직접 투표로 선출된 직업정치인이다. 정부 혹은 정부의 지도자 격인 직업정치인은 국민을 예속하는 도구로서든, 원활한 통치를 위해서든, 봉사의 직으로서든 국민과 매개로서 관료를 둔다. 그런데 김달진의 경우, 직업정치인이 국민을 위해 결정한 사항을 중간 매개자인 관료들이 각 실무팀 간의 조율과 같은 지극히 편의주의적인 구실을 내세워 방해하고 나선 것이다. 



국가 내 ‘관료 카스트’의 현주소를 보는 듯하다. 국민의 심부름꾼으로서 국민의 세금으로 살아가는 관료들이 거꾸로 국민 위에 군림하는 국가의 실질적인 지배권을 행사하는 권력자로 둔갑하는 이치의 전도가 아닐 수 없다. 국가 권력의 중심으로 자라버린 관료, 이를 통제하지 못하는 직업정치인, 그 사이에서 피해를 당하는 국민. 이 틀이 개선되지 않는 한 제2, 제3의 김달진은 계속해서 나오지 않을까. 이것은 단지 한 개인의 가치 있는 헌신이 사장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 뿐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다양한 영역에서 헌신하고자 하는 개인들의 도전역량을 사전에 봉쇄하여 사회의 역동성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한다는 점, 이런 현상의 축적은 결국 관료들에게 복종하는 국민을 키워내고, 일의 가치와 의미를 기준으로 한 지원보다는 경제적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겉이 화려한 생색나는 일에 지원하는 쪽으로 정책이 흘러갈 수 있다는 점,  그 판단 기준에 혈연, 지연, 학연 등이 끼어들 위험이 커진다는 점, 그로 인해 사회가 획일화·보수화하는, 한마디로 재미없고 메마른 사회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는 점에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임차지원사업의 기간만료일이 다가오는 2014년 7월 30일, 김달진은 국립현대미술관 정형민 관장과 미술자료 기증협약식을 갖고 1차 9월 29일, 2차 11월 3일에 거쳐서 한국미술정보센터에서 열람서비스 하던 미술자료를 기증하였다. 기증자료 내용은 단행본 12,232권, 미술잡지 1,698권, 경매도록 443권, 학위논문 197권, 학술지 56권으로 도서 14,626권과 팸플릿 9,353부로 총 23,979권(부)였다. 김달진이 국립현대미술관에 자료를 기증한 데는 국립기관이 가지고 있는 자료개방 효과, 국립현대미술관에 대한 개인적인 애정이 작용하였다. 

  

결국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은 마포구 창전동을 떠나, 2014년 11월 종로구 홍지동에 대지 76평, 건평 82.6평 건물을 매입하였다. 신축하기에는 자금과 입주시기의 문제로 어려운 점이 많아 광장건축의 김원 소장의 아이디어를 얻어 리모델링을 하였다.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한 자료 외에 채 보관하지 못한 자료는 여주에 있는 7평짜리 컨테이너와 자택에 쌓아두었다. 2001년 가나화랑에서 시작한 <김달진미술연구소>는 박물관, 정보센터 등으로 영역을 구축하여 왔으나, 여전히 물리적인 공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2015년 3월 홍지동으로 공식으로 이전한 열람서비스를 예약제로 바꾸어 미술정보를 제공하고 자료수집의 한계와 범위를 모색하는 등 박물관의 기본적인 기능인 자료수집과 교육, 대중 및 전문가의 필요를 채우기 위한 정보제공의 기능과 기록 보존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이 그동안 해온 대표전시로는 2008 <미술 정기간행물 1921-2008>전(10.222-1.31), 2011 <한국 현대미술의 해외진출_전개와 위상>전(5.26-7.23), 2012 <외국미술 국내전시 60년>전(4.24-7.14), 2013 <한국미술단체 100년>전(6.27-10-31), 2014 <한국근현대 미술교과서>전(1.9-5.31), 2015 <한국미술 전시공간의 역사>전(7.24-10.24), 2017 <20세기 ‘한국화’의 역사>전(7.7-11.11> 등이 있다. 

  



10) 최보식이 만난 사람 '3개월 남았네요, 길바닥에 쫓겨날지… 잠 못 이루는 날이 계속 되네요', 조선일보, 2014.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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