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산을 향하여 ≪27회 이상조전≫

심현섭

산을 향하여 
≪27회 이상조전≫(2019.9.26-10.9, 우진문화공간, 전주)

이상조의 산 그림은 산을 온전히 객관화할 수 없는 대상화의 보류 혹은 불가능성을 담고 있다. 원래 산은 인간에게 범접할 수 없는 숭배의 영역이었다. 기술 문명의 발달에 따라 강화한 인간주체의식이 자연에 대한 도전과 개입을 본격화하면서 산은 인간이 다가갈 수 있는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이상조의 산은 기술 문명 이전의 원초적 감각에 기초한다. 이와 같은 인식은 이상조가 겪은 산과 무관치 않다. 그는 1998년 아직 인간의 발길을 허락하지 않은 인도의 거대한 탈레이사가르 북벽에서 후배들의 죽음을 맞는다. 그의 상심과 좌절은 인간을 받아들이지 않는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자신과 일체를 추구하게 하는 강력한 산을 절감하는 정조였다. 산의 수용과 거부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 그 크고 감당할 수 없는 자연과 인간의 차이를 죽음의 고통으로 체험한 이상조의 산에는 재현의 욕망 앞에서 머뭇거리는 갈등의 페이소스가 흐른다.

사각의 캔버스에 선, 면, 색으로 자신의 표현욕망을 압축해야 하는 숙명을 안고 살아가는 작가 이상조의, 산을 객체와 대상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머뭇거림과 갈등은 평면에 그대로 침잠한다. 그는 산의 형상을 예측하거나 미리 구상하지 않은 채 평면의 캔버스에 물감을 바르고 덧입히고 긁는 행위를 반복한다. 이 무의식의 과정이 생성한 비정형적인 두터운 질감과 굴곡은 그의 갈등을 드러낸다. 이런 점에서 그의 산은 유영국의 산과 구별된다. 유영국의 산은 대상화한 객체를 관조하고 평정을 유지한다. 이일의 평대로 유영국의 산이 “범신화”라는 정신성을 내포한다면 그것은 관찰자로서 객관적인 태도에서 기인하는 듯하다. 그러나 이상조의 산은 체험에서 오는 갈등과 그 표현을 위한 몸짓의 결과로 관조의 대상을 넘어서 엄연한 주체로 뜨겁게 다가온다. 권순철의 산 또한 뜨겁지만 인간의 고통을 대리한다는 점에서 주체로서 이상조의 산과는 인식론적 차이를 보인다. 이 차이는 이상조와 산의 관계에서 비롯한다. 그에게 산은 몸으로 부딪혀야 했던 실체이고 좌절이며 운명이다. 관조의 자세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숭고미나 아우라를 논하기에는 이상조에게 산은 삶과 죽음이 순환하는 신성한 실체요 절대적인 존재이다. 그가 최근 산을 그리는 대신 사진, 영상, 설치 등의 작업에 몰두한 데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존재론적 갈등과 함께 산의 실체를 향한 경외가 작동했을 것이다.

이상조는 자신의 산이 마음속에 존재하는 산이라고 한다. 따라서 그의 산은 경험에서 형성된 머뭇거림과 갈등으로 이루어진 산의 본질을 재현하는 추상적인 산이다. 그러나 그의 산은 갈등의 침잠, 정신의 투여에도 불구하고 온전한 추상에 이르지 않는다. 회화에 있어 추상은 사각의 평면에 인간의 정신과 개념을 압축하여 표현함으로써 대상의 본질의 의미를 최대한 확장한 결과물이다. 이로써 이상조의 산이 추상에 이르지 않는 이유는 분명해진다. 그는 산을 인간의 개념과 정신으로 오롯이 대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산은 산대로 형태가 있고 그대로 정신이 있다. 어느 정도의 선까지는 인간의 재현 욕망이 개입하지만 산의 형태와 보이지 않는 정신을 온전히 타자화하여 해체할 수는 없다. 이것이 그가 물감을 바르고 뿌리고 덧입혀 그 물질이 자연스럽게 흐르고 점착하기를 기다리지만 어느 순간 개입하여 경계를 짓고 음영을 입혀 산의 형태를 잡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나는 이러한 이상조의 태도에서 관념적으로 떠도는 자연과 합일, 주객일체의 진정성과 현실적 대안을 발견한다. 안으로 들어가고 싶지만 그 문턱에서 머뭇거리는 갈등의 순간이야말로 인간이 자연을 평등한 주체로 인식하는 가장 겸허한 시간이지 않을까. 이 과정을 생략한 합일은 결국 인간중심적 사고의 틀에서 이루어지는 수사거나 시혜일 수밖에 없다. 

이상조의 산은 대안 혹은 미완의 산이다. 그러나 산과 사람이 합일에 이르는 가장 적절한 과정에 위치한다는 점에서 그의 산은 누구보다도 일체에 근접한 산이다. 이상조의 머뭇거리고 갈등하는 산이 이후 완전한 추상에 이르거나 아니면 지금의 형태를 유지하거나 다른 어떤 방향으로 변화해갈지는 미지수다. 가시적으로 그것은 스카이라인과 색의 운용, 마지막 붓질의 변화로 나타날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가 무엇이든 그가 평면의 캔버스에 압축한 산은 한국미술이 지금껏 보지 못한 독특한 형상과 정신성을 창출할 것은 분명하다. 이상조만큼 육체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산과 밀접한 상태에서 산을 향해가는 화가는 드물기 때문이다.  (2019.10.18)


<산을 향하여>, 혼합재료, 390.9cm x 193.9cm, 2008.

<문화저널 11월호 게재>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