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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보의 원형질 시리즈에 나타난 서사의 다중성

심현섭

박서보의 원형질 시리즈에 나타난 서사의 다중성


한영수, <서울 1956-1963>, ⓒ Han Youngsoo Foundation

한국사회는 1945년 해방 이후 좌우이데올로기의 국내외적 대립과 전쟁으로 국가기반을 닦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한국 사람들은 미래를 향한 희망을 1960년 4·19와 이듬해 5·16이라는 구체적인 사건으로 정치·경제·문화적 기반의 전복을 꾀함으로써 표출하였다. 두 사건은 부패한 기득권세력의 전반적인 교체 가능성을 보이며 사람들의 동의와 지지를 얻는데 성공하였다. 한국사회는 새로운 목표, 잘 살아보자는 공감대위에 변화의 물결을 탔다. 위 사진은 이를 잘 표현한다. 서울 중심가로 보이는 사진에는 노면 전차와 시발택시와 짐을 실은 손수레, 가방을 들고 부지런히 뛰어가는 사람이 있다. 오른쪽 위에는 자전거가 보인다. 훗날 한국의 대표기업으로 성장하는 현대자동차의 창업주 정주영의 포니자동차(1976)는 시발의 기술력 위에 만들어졌다. 사진은 전쟁의 폐허를 극복하고자하는 한국인의 의지와 때맞춰 밀려오는 기술문명을 보여준다. 자전거는 그 변화의 과정에 있는 중간 어딘가를 지시한다. 궁핍한 그 시기에 삶의 의지는 희망이라는 미래적이고 추상적인 언어에 의해 견인되었다. 사람들은 사회의 각 분야에서 미래를 향한 현재의 삶에 집착하였다. 긴 그림자는 현재의 시간에 집중하는 것이 일상이 된 사람들의 흔적으로 보인다. 

가난했으나 미래에 대한 희망과 열망이 사회적 분위기를 고취하던 시대, 청년들에게 이 시기는 혼란과 동요의 시대임과 동시에 기회였다. 그러나 기회는 혼란의 고통과 기득권세력의 저항을 견딘 후에야 찾아올 수 있는 선물이었다. 자연과 기술 문명의 충돌, 전후 폐허가 주는 황폐함, 어린 나이에 경험한 전쟁 중 죽음에 대한 기억, 전쟁의 당사자인 기성세대에 대한 불만과 저항으로 젊은 세대는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어지러운 내면은 분출할 곳을 찾아 숨죽이는 폭발 직전의 응어리였다. 역사에서 이러한 응어리가 가장 먼저 터지는 곳은 대개 미술이다. 이러한 뜨거운 응어리를 표현하는 데에 기존의 형식은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당시 젊은 작가들이 형식을 부정하며 비정형 즉 앵포르멜에 이른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날 것으로 난무하는 색들을 정서적 혼란을 그대로 드러낸다. 두텁고 울퉁불퉁한 표면은 절박한 시간을 축적한다. 화폭에 축적된 시간이 멈춰있는 사이 새로운 공간의 시간이 흐르면서 칠은 갈라지고 누렇게 변한다. 질서보다는 무질서, 해체의 제스처로 상처 입은 화폭은 애절하고 절박했던 삶의 의지를 충분히 반영한다.  

한국의 앵포르멜을 이끈 이는 박서보(1931- )다. 반국전, 단색화 운동 등 한국 현대미술을 주도하면서 뛰어난 작품을 세상에 내놓은 그이지만, 앵포르멜 시기 원형질 시리즈가 특별한 이유는 작품에 혼재하는 서사의 다중성 때문이다. 원형질 시리즈는 시대와 개인의 역사에 침전한 절망과 희망, 세속적 욕망과 예술적 욕망이 묘하게 얽혀있다.


박서보, <원형질(原形質) No.1-62>, 1962, 캔버스에 유채, 63×131Cm

원형질 시리즈에 나타나는 절망과 희망의 이중성은 전후 인간의 존재를 표현하고자하는 작가의 의도에서 비롯한다. 작가는 인간이란 무엇이냐는 존재론적 질문을 던진다. 전후의 황폐함, 죽음에 대한 기억, 기성세대에 대한 저항, 가난에서 오는 심리적 박탈감, 기술문명의 진입 등으로 혼란한 상황에서 던져진 실존에 대한 형이상학적 질문은 신체내부를 파헤치려는 실제적 행위로 나타난다. 물질적, 정신적 폐허를 암시하는 검은색과 인간 실존의 몸부림을 엑스레이로 투시하듯 재현한 <원형질(原形質) No.1-62>에는 개체 인간을 철저히 해명하려는 간절함과 그 결과로서 처절한 절망이 있다. 이것이 후에 서구의 이성주의에 대한 회의로 발전했는지는 모르지만 동서양을 막론하고 특히 전후 세대에 나타나는 인간에 대한 근원적이고 보편적인 질문임은 분명해 보인다. 

박서보가 1962년 원형질 시리즈로 개인전을 열었을 때 ‘절규하는 인간의 영상’이라는 평을 들었다. 작가 역시 “전쟁에 대한 경험, 전쟁의 비극, 단말마의 비명을 내지르는 창백하고 지친 인물들”을 표현하고 싶다고 했다. 전쟁과 죽음, 궁핍으로 범벅이 된 절망스러운 상황에 처한 인간이 내지르는 절규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부조리한 인간실존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이었을 것이다. 왜 인간은 전쟁을 하며 서로 짓밟고 죽이는가. 인간의 지배욕과 권력욕의 근원은 무엇인가. 이러한 물음이 인간의 원형을 들여다보려는 욕구를 불러일으켰으며 그 재현이 원형질 시리즈이다. 


박서보, <원형질 NO. 21-65>, 캔버스에 유채, 1965

원형질 시리즈는 전쟁과 죽임의 주체인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일차적으로 절망한다. 그러나 그 집요한 탐구 시리즈는 절망의 끝에 이르러 자기성찰과 희망을 제시한다. 실존적 고민 끝에 해답을 찾지 못하고 여기에서 나를 구할 이는 누구인가라고 절규했던 기독교의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 관객을 자기성찰로 나아가게 한다. 이러한 자기성찰이야말로 희망의 맹아이다. 박서보의 원형질 시리즈는 인간에 대한 절망과 좌절,성찰과 희망의 다중성을 면과 색의 변화를 통해 보여줌으로써 관객에게 구원의 서사를 제공한다. 미술의 우선하는 역할은 안식의 거처, 구원의 예비처를 제공하는데에 있다. 근래 자율적 인간이 강조되면서 미술의 안식과 구원의 역할은 어느덧 사라져갔다. 그러나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을 때 엄연한 현실인 절망의 늪에서 빠져나올 희망은 어디에 있을까. 궁극적으로 어디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냐는 개인의 문제겠지만 인간의 부정적 실체와 낙관적 구원을 동시에 제시하는 원형질 시리즈는 동시대 사회적, 개인적 요구에 성실하게 반응한 미술이다. 

인간 실존은 시간과 공간 속에 거한다. 따라서 박서보의 원형질 시리즈는 동시대 인간들의 사회적 상황과 배경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한다. 그들은 어떤 시대에 살면서 그렇게 느꼈는가. 관객은 자연스럽게 제작년도를 확인하고 그 배경에 대해 헤아리는 기회를 갖는다. 서두에 소개한 바, 내가 당시 상황에 대한 사진을 찾아보게 된 것도 박서보의 원형질 시리즈를 본 후 떠오른 시대상황에 대한 궁금증이 한 원인이었다. 이 과정에서 관객은 작가와 마찬가지로 현재 자신이 살고 있는 상황에 대해 돌아보고 개인과 시대의 미래를 반추한다.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한 호기심, 즉 시대에 대한 관심을 유발하는 이 힘이야말로 작품의 사회적 책무이지 않을까. 박서보의 원형질 시리즈는 사실주의 그림과 다른 방식으로 역사성과 사회성을 내포한다. 

알려진대로 박서보의 앵포르멜은 반국전 운동과 맥이 닿아있다. 해방 후 창설된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는 일제강점기의 <조선미술전람회>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채 구세력으로 정체하였다. 젊은 미술인들은 반국전세력을 이루어 집단적으로 저항하였고 그 중심에 박서보가 있었다. 암울한 시대적 상황을 재현하기 위해 추상이라는 양식을 수용하여 이를 주류로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보인 박서보의 리더십과 열정을 예술적 욕망만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 5.16으로 형성된 세대교체라는 시대적 요구에 대한 반응과 세대교체의 공백을 차지하기 위한 세속적 욕망, 미술의 변화를 선도하는 판단력과 낙관성, “나의 개척은 곧 세계의 제패로 이어진다”는 선언에 읽히는 세계진입을 향한 강한 자신감으로 얽힌 복잡하고 다양한 심적 양상이 예술적 욕망으로 승화한 과정에 대한 탐구야말로 박서보의 미술과 미술사적 업적을 이해하는 길이다. 


박서보, 원형질 시리즈 섹션전시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박서보-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전(5.18~9.1.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 선보인 원형질 시리즈는 전후 세대의 절망과 희망을 여실히 보여준다. 한 작가의 작품세계에 이처럼 예술적 욕망으로서 미술양식의 변화와 세계미술에 편입하려는 거침없는 도전과 기성세대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세속적 욕망, 절망과 구원이라는 종교적 서사가 뒤섞여 나타난 경우는 드물다. 원형질 시리즈는 또 하나의 방식으로 주어진 역사에 천착한 작가가 빚은 의미있는 서사물이다.  
2019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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