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2. 김달진의 도전과 결실 1) 자료수집: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심현섭

2. 김달진의 도전과 결실

 

1) 자료수집: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김달진미술연구소>에서 시작하여 발전한 결과물이다. 이후 <한국미술정보센터>를 설립하는 등 여러 조직이 공존하면서 각기 특색을 갖추고 운영되고 있지만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있다.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에서 외부 연구기능 수주는 <김달진미술연구소>가 분업화하여 수행하고 열람 등 정보제공은 <한국미술정보센터>가 담당하는 구조다. 따라서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등의 역사는 <김달진미술연구소>로부터 시작한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200111, 가나미술문화연구소를 그만 둔 김달진은 200112,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한 편에 <김달진미술연구소>를 연다. 예기치 못한 사직권유로 인생의 위기랄 수도 있는 상황에서 언제나 그랬듯 김달진은 미술자료수집이라는 일관된 의지를 따라 망설임 없이 연구소를 개설한다. 11월에 가나화랑을 그만두고 12월에 곧장 연구소를 개설한데서 보이는 급박한 변화 속에서 김달진에게 어찌 고뇌가 없으랴마는 그 복잡한 배경과 심경을 자신이 추구한 미술자료수집이라는 인생의 대전제와 그를 향한 집념을 바탕으로 축약해나간 시기로 보인다


그러나 훗날 돌이켜보면 그것은 김달진이라는 인물 속에 흐르고 있는 유전인자의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는지 모른다. 2008년 한국박물관협회 명예회장 김종규는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개관 축사에서 이와 같은 김달진의 DNA를 이경성과 김달진의 관계를 들어 설명한다. 김달진의 철학과 행위에는 이미 오래 전부터 박물관의 DNA가 내포되어 있었으며 그 가시적 실천이 다름 아닌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이라고 규정한다.1)  김달진은 우리나라 박물관사의 산 증인라고 할 수 있는 원로 미술사학자겸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인 이경성과 끈끈한 연으로 맺어있다. 김달진이 국현에 처음 발을 들여놓을 수 있는 디딤돌 역할을 한 이도 이경성이었고, 긴 세월 김달진의 미술자료수집과정을 지켜보고 격려한 이도 그였다. 이경성이 세상을 뜨는 마지막 순간에 함께 한 이도 김달진이었다


이런 과정을 잘 알고 있는 한국박물관협회 명예회장 김종규는 김달진을 잠재적 유전인자를 이어받은 인물로 평가한다. 이것은 단지 개인적인 유대나 유산의 전수를 가리킬 뿐 아니라 한국 미술관사의 핵심적인 사람들의 이론과 실제의 전이를 의미하는바, 한국 미술관의 역사의 한 부분을 지탱해온 주체들의 역사적 징검다리의 한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동갑내기 동료이자 동지로서 오랜 시간 김달진의 곁에서 도움을 주고받은 국제미술평론가협회 부회장 윤진섭은 역사는 결국 인간의, 인간에 의한 역사란 점에서 어떤 현상이나 사건의 원인이 되는 인간을 논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면서 인간의 땀과 노력, 그리고 열정으로 이루어지는 역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2) 이런 점에서 이경성과 김달진은 땀과 열정으로 한국 미술사를 이끌어온 인간들이었으며 그들의 만남은 그 열정을 배가하여 한국 미술사에 기여한, 들뢰즈가 사태와 구분하여 말한 문화적 차원의 층위에서 일어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김달진미술자료미술관>의 필연성은 선화랑 대표 김창실의 언급에도 나타난다. 여기에는 김달진과 이경성의 관계, 김달진의 인간됨과 성실한 수집활동의 단면 등이 진솔하게 드러나 있다.

 

어느 날, 나는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이시던 이경성 관장님께 김달진씨에 대해 물어보았다. 관장님께서도 얌전한 그가 마음에 들고 성실한 직원이 될 것이라 믿어 능력을 다 할 수 있도록 그의 희망대로 직접 자료실 직원으로 채용하셨다고 했다. 그리고는 그가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잘하고 있다고 그를 평했다. 그때부터 시작된 이경성 관장님과의 인연을 김달진씨는 먼 훗날이 되어버린 지금까지도 어긋남이 없이 마치 부자지간처럼 이어가고 있으니 그 관계 또한 특별한 인연이라고 할까, 김달진 씨의 인감됨됨이를 우리는 모두 찬양하고 있다. 그 당시 으레 미술관에는 모든 미술계의 화랑들이나 작가들에게서 그들의 작품전을 소개하기 위해서라도 직접 전시 자료들을 보내기 마련이여서 그가 굳이 발품을 팔아가며 직접 수집해 오지 않아도 되었었다. 하지만 그는 오늘의 커다란 꿈을 마음속에 깊숙이 품고 있는 터여서 물 만나 물고기마냥 못나가게 하는 동료들을 설득하여 밖으로 나가 전시장을 찾아다니며 자료들을 수집해오곤 했다고 했다. 그가 국립현대미술관에 근무하고 있는 동안, 나에게 그는 이미 마치 자료수집의 대명사요 간판처럼 느껴져서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자료가 급히 필요하여 김달진씨에게 전화 한통화만 걸면 언제나 그 다음날로 부탁한 자료들을 찾아 복사하여 보내주곤 했다. 그때부터 이미 그의 마음속에는 김달진미술연구소와 박물관이 세워져 있었던 것 같다.3)

 

이 뿐 아니라,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후원회 준비위원장을 맡아주었던 미술평론가 오광수(덕수궁시절 전문위원으로 자료실 근무를 시작하며 처음 만난 인연), 후원회장 박래경(과천시절 학예연구관, 2대 연구실장 역임) 등 일찍이 김달진이 보여준 수집에 대한 열정을 보아온 수많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김달진의 박물관 설립을 그의 인생의 당연한 귀결로 평가한다. 초지일관한 그의 집념과 열정, 성실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김달진은 수집활동을 하면서 훗날 연구소가 되었고 박물관을 도모하지는 않았다고 고백한다.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다보니 결과적으로 박물관 등의 열매를 낳은 것이다.


1)『아름다운 시작-김달진미술자료관, 2008, 7.

2) 윤진섭, 혁신과 창의, 도전정신으로 가득 찬 미술자료의 산실, 아카이브스토리, 2015. 7.

3) 김창실, <미술 정기간행물 1921-2008>을 축하하며-내가 아는 김달진씨를 되새겨본다-, 아름다운 시작-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17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