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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글의 ‘가치’, 얼마에요?

호경윤

최근 신간으로 나온 반이정의 『한국 동시대 미술 1998-2009』을 감사하게도 필자에게 직접 증정받았다. 급변했던 한국 동시대 미술의 흐름을 연구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한 시기에, 한 미술평론가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12년이라는 기간 동안 다양한 주제와 매체로 분석해 500페이지가 훨씬 넘는 두꺼운 결과물이다.

필자가 서문에서도 밝혔지만, 이 책은 미술대학 강의를 다니면서 정리했던 강의안을 계기로 삼아 2012년부터 2년간 『월간미술』에서 연재했던 원고를 그 후 또 4년여의 수정 추가 작업을 거쳐 출판 지원을 받아 출간되었다고 한다. 
이 책의 마지막 장, 즉 2009년은 당시 1세대 비평가 이경성의 타계와 공교롭게도 현장 평론가 10인의 전시 ‘비평의 지평’(일민미술관)을 계기로 ‘비평의 고백’이라는 주제를 담고 있다. 그중에서 원고료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미술 잡지의 원고료는 생계 수단이 되지 못한다. (…) 현업 미술 비평가의 생계는 ‘공정가가 없는’ 전시 서문, 외부 강연, 심사 사례비 등에 의존한다.” 


『2015 SeMA-하나 평론상, 2015 한국 현대미술 비평 집담회』 표지


이러한 이슈는 2015년 서울시립미술관의 SeMA-하나 평론상의 일환으로 개최된 집담회에서 미술평론가 문혜진이 매우 심도 있게 다룬 바 있다. ‘동시대 한국미술에서 비평은 왜 부재할 수밖에 없는가’라는 발제문에서 1990년대 미술잡지의 미술비평에 대한 발언들을 찾는 것은 물론, 현재 활동하는 평론가의 인터뷰까지 진행해 인용하면서 20여 년 간 되풀이되고 있는 비평의 위기와 그 원인을 증명하고자 했다.

그 밖에도 문혜진은 잡지 및 온라인 매체의 운영 방식, 비평 내부의 구조적 문제 등 더욱 폭넓은 논의로 확장시킨 바 있다.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한국의 원고료는 장르를 불문하고 낮은 편이다. 그중에서 미술잡지의 원고료는 훨씬 더 낮을 뿐 아니라 그마저도 체불되는 경우도 있다. 사실 이러한 측면은 과거의 나 역시 ‘가해자’일 수밖에 없었던 데다 미술잡지의 경영난도 잘 알고 있기에 안면몰수하고 지적만 할 수는 없다.
‘돈’ 이야기를 꺼내기는 쉽지 않지만 원고료에 대해 지금보다 서로 구체적이고 직설적으로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글의 ‘가치’에 대한 전반적인 상향 조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미술계는 지난 20여 년 동안 빠른 속도로 발전한 동시에 분화되고 산업화됐다. 미술 작품의 시장 체계나 부가적 가치는 자리를 잡아 가는데, ‘비평 업계’는 제자리에 머무르며 상대적으로 퇴화됐다. 근로 최저시급은 해마다 적게나마 인상되어도 원고료는 10년, 20년이 지나도 그대로인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미술에 대해 글을 쓰는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똘똘 뭉쳐 원고료를 높이자고 의견을 모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하다못해 한국미술평론가협회부터라도 스스로 원고료 기준을 만들어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듯하다.


『한국 동시대 미술 1998-2009』 표지


최근 번역료는 한국외대 통번역센터의 기준을 따르는 경우가 많아지듯이 말이다. 물론 글의 ‘가치’를 높이는 것은 원고료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앞서 언급했던 『1998-2009 한국 동시대 미술』의 사례처럼 한 권의 책이 완성되는 데에는 학교와 기관, 또는 매체와 지원 정책 등의 다양한 경로를 통해 구체화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결과물이 나오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도록 혹은 낱장의 지라시에 들어가는 서문부터, 온·오프라인 매체에 게재되는 리뷰, 비정기적으로 나오는 독립잡지의 에세이 등 이곳저곳에 산발되어 있어 다시 읽기가 어렵다. 미술계의 지적 자산이라고 할 수 있는 글을 보존, 축적시키고 그 ‘가치’를 공고히 하는 공적 지원도 함께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 이번 호를 마지막으로 1년간 연재했던 <타임슬립>을 마친다. 그동안 지면을 주신 『서울아트가이드』 편집부와 읽어 주신 독자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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