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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그림을 그리는 이유

김정수



왜 화가들은 그림을 그릴까, 화가마다 여러 가지 그림 그리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표현하는 방법도 다 다르다. 내 경우는 젊었을 때 입체,설치, 이벤트, 해프닝 이런 작업에 관심이 무척 컸었다.

평면 작업은 왠지 고리타분하다는 인상을 가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1983년 초 파리로 떠난 후 그곳에서 만났던 풍경은 내가 생각하고 상상했던 것과는 매우 달랐다.

그 당시엔 우리보단 훨씬 앞서 있었던 세계 미술 문화의 중심지 파리에서 맞닥뜨렸던 미술문화의 첫 번째 인상은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좀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99% 평면작업으로 다가왔었다. 

뉴욕으로 갈 걸 잘못했나 후회도 됐었고 또한 그곳으로 가려고도 생각했었다. 다행히 백남준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추상 평면작업을 다시 시작했었다. 그리고 생제르망의 한 갤러리에서 전속작가의 일원으로 화가로서 출발하게 되었었다. 

솔직히 그렇게 화랑에 들어가기 위해 작업을 준비하면서도 확고한 작가로서의 신념이라던지 그림을 보는 관람자들에게 전달해야 할 메세지에 대해선 지금처럼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해보진 않은 것 같다. 

진정으로 그림을 그린다는 문제를 몇 달간 치열하게 고민했었던 때는 엉뚱하게도 나의 정체성 문제를 따지고 들어갔을 때부터였다. 프랑스 영주권자로 한국인 반 프랑스인 반으로 적당히 국제인으로 살아가면 되겠다고 생각을 하고 그렇게 작업도 했었고 생활도 그렇게 하고있었다.

그러다 잠깐 우리나라에 왔다. 종로 레코드 가게에서 우연히 듣게 된 한참 유행하고 있던 노래가 내가 갖고 있었던 50% 50% 이론을 산산조각을 내면서 작업에 대한 정체성 고민도 다시 돌아보게되었다. 

나는 뼛속 깊이 대한민국인이라는 답이 나온 건 고상한 이론이나 학문이라든지 하는 게 아니라 저속하다고 내게 손가락질할지 몰라도 노래방에서 흔히 불리는 술 한잔하면 뇌까리게 되는 흔하디흔한 유행가 한 구절이었다. 

내 인생의 모든 것들이 뒤바뀌는 특별한 순간으로 기억한다. 그랬다. 뼛속 깊이 대한민국 사람이라고 느끼는 정체성을 확인한 순간 내가 그림을 그려야 하는 이유 그리고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림을 그려야 하는 이유 간단했다.세계인들의 마음에 공감을 주는 것도 좋지만 우선 한국인의 가슴을 흔들고 그들이 편히 기댈 수 있는 그런 작품을 남기고 싶었다. 기왕이면 마음을 위로하고 치유할 수 있는 사랑이 넘치는 그런 작업을 하고 싶었다. 그런 걸로 내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의 정체성을 확인했었다. 세계적인 화가가 되지 않아도 좋았다. 세계적으로 유행인 화법이나 방법론 등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냥 소박하게 한국인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감동을 주는 그런 작업을 하고 싶었다. 기왕이면 그들의 마음을 훔쳐 나와 같은 마음을 이입시키는 그런 작업을 하고 싶었다. 작업하는 과정은 혹독할 만치 힘들었다. 무슨 소재가 한국인의 마음에 가까이 갈 수 있는지 선택하는 문제만 해도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 소재를 선택한 다음 표현하는 방법을 찾는 것도 오랜 시간과 땀을 흘려야 했었다. 그러나 그건 내 문제였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또한 도와줄 수도 없는 작가가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그래도 그림을 그리는 이유가 분명히 있어서 그런 과정들이 즐거웠다.

여러 그림이 있다. 아마도 그림을 그린 작가의 생각도 다 다를 것이다. 그리고 뚜렷하게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그림에 옮겨 놓은 훌륭한 작가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다 좋지만 더 좋은 작가와 작품을 만나는 나름의 기준 하나는 그림을 그리는 이유가 분명히 드러날 때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작가의 가슴 속 이야기는 어떤 땐 비수로 내 맘에 꽂히기도 하고 어떤 땐 달콤한 향기로 내맘에 날아올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깨달음 중의 하나는 어떤 경우이든 좋은 작품은 관람자의 마음을 훔치고 천천히 관람자의 가슴에 작가의 마음이 내려앉게 된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그림을 사고팔고 하는 게 아니라 작가의 그림을 그리는 이유 등 작가의 정신세계를 사고팔고 하는 것이 맞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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