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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인생에 있어서 좋은 멘토

김정수


김정수, 기억의 저편, 2009

인생에 있어 좋은 멘토를 만나는 것은 정말 멋지고 행복한 일이다. 내게는 세 분의 좋은 멘토가 계셨다. 한분은 고등학교 미술 선생님이셨던 이용길 선생님이셨는데 주로 부산에서 판화가로 활동하셨다. 나중에는 순수 우리말 사용하기 운동에도 열심이셨다. 요새 대학가에서 쓰고 있는 동아리, 식당 등의 이름으로 흔히 쓰이는 가마골, 그림 그릴 때의 꼴이란 말도 선생님이 지으신 말들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실기대회에 나가서 난생처음 유화라는 걸 그려봤다. 바닷가에 배 두 척 있는 풍경을 그렸었는데 가작인가 했던 거로 기억난다. 며칠 후 선생님이 나를 보시곤 “너 유화 작품 봤는데 어떤 느낌이 느껴지더라. 앞으로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뭔가가 있더라” 란 말씀을 해 주셨었다. 난 정말 기뻤었다. 그 한마디의 말씀이 평생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 살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두 번째 선생님은 우리나라 추상회화의 1세대이자 여류 추상회화의 독보적인 분이신 대학 실기시간 때 만난 이정지 선생님이시다. 난 그때 홍익대 미술교육과에 입학했었는데 나중엔 미술대학으로 흡수되어 재입학, 복학했다. 그때는 시국이 장난이 아니었다. 유신정권이 끝나니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서 참 어려운 시절이었다. 어디 잘 나서지도 못하는 소심한 나는 속으로 삭히다 입체 작업이나 이벤트, 해프닝 등 아방가르드적인 작업으로 전시도 하며 울분을 풀어내곤 했었다. 그러다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선생님께 나의 상황에 관해 설명하고 프랑스로 떠나고 싶다 했더니“그래 넌 어딜 가서도 잘할 거다. 넌 잘할 거다”라고 격려의 말씀을 해주셨다. 난 학교를 정리하고 미련 없이 1983년 2월 프랑스행 비행기를 탔었다.

세 번째 선생님은 내가 정말 뵙고 싶었던 백남준 선생님이다. 프랑스에 도착해보니 소위 말하는 고리타분한 평면작업이 화랑가의 99%를 점령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끙끙거리며 아르헨 퓨처 등 외국 서적을 사전 찾아가며 열심히 현대미술을 공부했던 나로서는 적지 않은 혼란을 겪었다. 그때쯤 기적처럼 젊은 학생들과 관광객이 많이 모이는 소르본대(파리4대학)에서 센 강 쪽으로 내려오는 거리(라탱지구)에서 백 선생님을 만났다. 이미 영문 책자를 보며 낯이 익었던 나로서는 운동화에 배낭 하나 짊어지고 걸어오시는 모습에 자석처럼 이끌려 “선생님 안녕하세요?”하며 인사를 건넸었다. 선생님과 난 인근 분수대 옆 커피숍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나는 정말 선생님께 궁금한 게 많았었는데 외설 죄로 문제가 됐던 샬롯 무어맨(Charlotte MOORMAN)양은 어떻게 됐는지 등을 여쭤봤었다. 선생님은 파리에서 어린 미술학도를 만나서 반가우셨는지 아니면 내가 선생님에 관한 여러 가지를 알고 있어서 신기했던지 여러 질문에 명쾌하게 답을 하셨다. 그다음 날 같은 카페에서 프랑스 TV 방송국 인터뷰 끝나시고 또 만나 뵈었다. 나의 진로에 대해 여쭤 봤었다. “선생님 저는 컴퓨터 아트를 하고 싶습니다.” 그때는 컴퓨터라는 게 초기 보급 단계에 있었다. 선생님은 “내가 하는 작업이 정말 힘들고 돈도 안 되니까 동양인인 내게 한 파트를 띠어준 것뿐이야, (당시 선생님은 빚이몇만 불 있으셨다) 컴퓨터 작업을 하는 제자가 3명이 있는데 상업적으로 다 실패를 했어. 왜냐하면, 너무 빠르게 변하는 작업 환경 때문이야” 그러시면서, “평면작업을 하게”라고 답하셨다. 당신은 어린 예술가 지망생에게 당신이 겪으셨던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지 않게 하려고 어쩌면 내겐 가장 따뜻하고 꼭 해주시고 싶었던 그런 말씀을 내게 해 주신 거라 생각된다. 선생님은 당뇨가 있으셨기 때문에 오후 6시가 되니 정확하게 샌드위치로 저녁을 드시면서 천천히 그리고 또렷하게 이야기를 해주셨던 것을 기억한다.

그 이후 난 평면 작업을 하기 시작하며 그해 가을 한 화랑에 전속작가로 들어갔고 그로부터 3년 후 영주권 신청하라는 통지를 받았었다. 그런 영향이었을까. 이제는 반대로 무척이나 활발히 활동하고 인기작가가 된 후배 화가에게서 나 때문에 그림을 중단하지 않고 그리게 됐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즐거운 일이다. 시간이 참 많이도 흘렀지만 내 가슴, 머리, 귓가에 세 분의 말씀은 언제나 오늘처럼 생생하다. 나이가 들어 그분들을 찾으니 두분은 이미 고인이 되셨고 한 분 이정지 선생님은 계셔서 명절마다 조그만 선물을 보낼 수 있으니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다. 진정 존경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받으면 그 말씀은 다이아몬드처럼 빛을 내면서 인생에 갈 길을 인도해주는 최고의 멋진 보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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