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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김충선 정건모 김한, 실향민 고독의 아픔을 가요로 달래며...

김정

김충선(1925-94) 선생은 60년대 후반부터 구상전 멤버로 인물화를 중심으로한 작업을 해오셨다. 1968년 전시에서 박고석 선생 소개로 만난 이후 식사도 몇 번 했다. 키 6척의 거인 스타일로 마치 레슬링 선수 같다. 그런 건장한 외모에 비해 아픈 데가 많아 늘 고생하셨다. 언행도 수줍어하는 태도다. 1980년 6월 17일 자화상 인물전 때 김영주, 김충선, 김태, 박석호, 송경, 이대원, 이종무, 전상수, 조병덕, 최영림, 하인두, 황유엽 등과 활발히 참여했지만, 다시 건강문제로 수년 동안 은둔생활 하셨다. 본인도 괴로웠지만, 가족도 힘들게 지내셨다. 필자가 독일에서 잠시 귀국, 주한독일문화원 원장 요하임 뷜러의 초대로 남산독일문화원에서 ‘김정 독일 드로잉전(1982.6.15)’ 오픈에 김충선 선생이 뜻밖에 오셨다. 조금 나아진 건강 덕분에 아주 오랜만에 외출로 여기를 왔다고 했다. 외모는 크지만 마음씨와 언행은 착한 큰형처럼 포근한 정을 느낀 분이다. 그 후론 소식이 끊겼으나, 1990년 지인을 통해 병세가 나쁘다는 소식을 접했고, 4년 뒤 별세하셨다. 정말 겸손하셨던 분으로 가슴 아픈 이야기다.



김정, 정건모 드로잉

정건모(1930-2006) 선생은 평소 말수가 적고 조용하신데 담배는 많이 피우신 분이다. 그림도 차분한 점선 터치로 포근한 분위기다. 그러나 술 한잔 드시면 태도는 약간 다른 분 모습으로 변하셨다. 술과 음악은 비슷한 감정인 듯…. 정건모 선생도 노래엔 관심이 많아 부르셨지만, 한 박자가 늘 느렸다. 필자가 예술의전당에서 개인전 오픈하던 날 정건모 선생 등, 뒤풀이를 위해 밤늦게까지 모였다. 청담동엔 원로화가이며 오페라가수로 통하는 전상수 선생이 사셨다. 오페라를 들으려고 주변 지인들이 삼삼오오 청담성당 옆 지하식당에 모였다. 정건모 선생도 여기의 한 멤버였다. 술 한잔에 음악회(?) 비슷한 모임이다. 모임에선 이태리풍의 오페라가수 전상수 선생의 멋진 목소리가 좌중을 숨죽였다. 따라서 청담동의 주인공은 역시 전상수 선생이지만, 한두 분이 뒤이어 노래를 또 불렀다. 그 시절 정건모 선생도 참석 노래 멤버였다. 정건모 선생은 노래 중간중간 가사가 끊어지는 게 장기였다. 두어 번 끊었다가 이어부르는 게 특기지만, 열심히 부르는 모습은 아름다웠다. 평상시 조용하시던 분이 알코올 덕에 자유스러운 모습도 볼 수 있는 행복이었던 시절이다.



주한독일문화원에서, 왼쪽부터 김한, 김충선, 김정


김한(1931-2013) 선생은 함경도 명천 태생이다. ‘명천에 사는 태(太) 서방이 처음 잡았다 하여 명태란 이름이 생긴 것’ 처럼 명천 땅은 예로부터 명태로 유명한 고장. 전쟁 때 김한 선생만 월남하고 형제들은 이북에 있는 이산가족이다. 김한 선생이 이산가족 상봉때 이북동생을 만났다. 이북에 살고 있는 동생은 시인이라고 했고, 만날 당시 김한 선생은 어릴 때 어머니가 업어주시던 추억을 그림으로 그려 동생에게 선물로 전달했다. 김한 선생은 대중가수 뺨칠 정도로 가요를 잘 불렀다. 특히 흘러간 노래의 꺾는 맛이 기막히다. 전상수 선생이 오페라 가수라면 김한 선생은 대중가수다. 필자가 보기에 김한 선생의 가요 <굳세어라 금순아>, <비 내리는 호남선>은 그의 단골 메뉴다. 원래 현인의 가요지만, 김한의 창법이 더 감칠맛이다. 어느 날 권옥연 선생이 김한 노래 <굳세어라 금순아>를 들으신 이후론 같은 함경도 고향 실향민으로 아주 귀여워했던 일화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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