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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관계와 교감의 사연까지도 자료가 되어 _우종미술관, 우영인·박용하 관장

윤태석

“여수로 시집을 왔습니다. 시댁에서 가장 이색적이었던 것은 저택 곳곳에 서화가 정말 많이 걸려있었다는 점입니다. 그 이유를 알아보니 양조장을 운영하시는 등 지역에서 꽤 알려진 사업가이자 유지였던 아버님이 화가들의 든든한 후원자셨습니다. 정이 많고 문화예술에 조예도 깊으셔서 어려운 작가들의 작품을 사주셨고, 여수로 스케치 여행을 온 작가들에게는 숙식을 제공했으며 3층에는 작가들을 들여 몇 달씩 작업할 수 있게도 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신세를 진 작가들이 선물로 놓고 간 작품들까지 더해 집은 미술관이나 진배없었습니다. 그런 집안에서 자란 까닭이었을까요. 서울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한 남편은 틈만 나면 인사동에 나가 작품을 사나르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의 이런 수집 의지는 늘 생활비를 부족하게 했었으니까요.”, “오늘 우종미술관이 있을 수 있었던 것은 이런 과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우영인 관장은 이렇게 옛일을 회상했다.



우종미술관 전경


이것저것을 더 묻자 설립자이자 남편인 박용하 우종문화재단 이사장이 잘 알고 있으니 이 이상의 깊은 얘기는 직접 물어보라고 한사코 인터뷰를 사양했다. 우 관장이 어찌 모를까마는 미술관이 있기까지 남편의 공이 얼마나 지대했는지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과 더불어 우 관장 특유의 겸손함에서 배어 나온 배려임이 분명했다.

우 관장은 한편, 대전에서 태어나 6·25 때 부모님을 따라 지리산 아래 구례로 피난 와 정착했다. 전북 남원 출신인 부친은 일본에서 전문학교를 나온 엘리트였다. 태평양전쟁 때는 일본군 학도병으로 끌려가지 않으려고 금강산으로 들어가 독립운동을 했다. 구례로 내려와서는 지리산을 국립공원 1호로 만드는 데 이바지했으며, 지리산 산악회와 섬진강 보존협회를 결성해 자연보호에도 앞장선 선각자였다. 시부와 친부의 성향이 맞닿는 지점이다.

신혼 초기, 부부의 컬렉션은 동양화에 집중됐다. 이는 당시 미술시장의 흐름에 기인한 것이기도 했지만 시아버님의 영향이기도 했다. 그러다 20여 년 전부터 서양화에 관심을 두게 되면서 활동반경을 해외로까지 넓히게 되었다. 좋은 작품을 수집하기 위해 뉴욕도 방문하게 되었고, 일제강점기에 유출된 문화재를 들여오기 위해 일본어까지도 공부하는 열정을 보이기도 했다. 이렇게 수집한 작품은 국제적인 수준의 것들이었고 다양한 분야에서 적지 않은 수량이었다. 작품이 늘자 자연스럽게 미술관 건립에 관심이 모이게 되었다. 처음에는 시아버지의 체취와 서기(瑞氣), 가풍과 소소한 스토리가 남아있는 여수 본가를 생각했다. 그러나 개발로 인해 집이 철거되는 바람에 그 꿈은 접게 되었다.

이후로 2008년에 보성군 조성면에 골프장을 건설하게 되면서 우종문화재단의 주요사업으로 미술관도 문을 열게 되었다. 우종미술관은 보성컨트리클럽 내에 자리함으로써 스포츠와 문화인프라가 취약한 지역주민들이 건전한 여가활동을 영위할 수 있는 공간이 된 것이다.



우영인 관장


미술관 조성을 앞두고 우 관장은 서울을 오가며 대학과 미술관에서 전문 재교육프로그램을 이수하기도 했다. 개관 20년을 앞둔 우종미술관은 국내외를 아우르는 컬렉션으로 다양한 전시와 미술관 연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미술관은 소장품을 선보이는 세 차례의 기획전과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중견작가 초대전을 개최하고 있다. 아울러 문화가 있는 날과 문화 소외계층을 위한 자선 행사도 정기적으로 마련하고 있다. 이처럼 지역주민의 문화 욕구를 충족시키고, 문화예술교류의 장으로 자리매김해 오고 있다. 특히 순천과 보성지역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작품을 감상케 하고 다채로운 체험 교실을 운영하는 등 성심성의를 다해 온 것은 대단히 보람이 큰 프로그램이다.라고 우 관장은 첨언했다.

우종미술관의 소장품은 고대와 근현대를 대표하는 국내외 미술품 1,500여 점을 망라하고 있다. 삼국시대 토기, 조선백자와 분청사기 등 도자기류, 이 지역에서 생산했던 조선 보성장(寶城欌)과 나전칠기, 약장, 떡살 등 목물(가구)류, 의재(毅齋 許百鍊)와 이당(以堂 金殷鎬), 청전(靑田 李象範)과 심산(心汕 盧壽鉉) 등 소위 한국화 근대 6대가 등의 서화류, 은 입사 담배합 등 금속 공예품 등이 있다. 이에 더해 박수근, 김환기, 천경자, 오지호, 도상봉, 이우환, 이대원, 권옥연, 김종학을 비롯해 샤갈, 호안 미로, 앤디 워홀, 데미안 허스트, 쿠사마 야요이, 나라 요시토모까지. 지역미술관에서는 쉬이 볼 수 없는 최고 수준의 작품들이 1-2층 기획전시실과 3층 상설전시실을 차지하고 있다. “지금은 며느리가 부관장을 맡아, 미술관에 더 큰 활력을 불어넣어 주고 있습니다. 저나 바깥양반이나 외부 활동으로 바빠지긴 했지만, 작품수집은 계속할 것입니다.” 역시 우 관장의 말이다.



우 관장 부부, 시모, 장남과 함께(여수본가, 1981)


“80년대 초쯤 아버님과 친분이 두터우시던 법정 스님이 본가를 방문하신 적이 있습니다. 거실에 펼쳐져 있던 소치(小痴 許鍊)의 8폭 병풍 한 점을 우연히 보시게 되었는데, 그 작품이 얼마나 마음에 드셨던지 스님은 내온 차를 마시면서도 쉬이 눈을 떼지 못하셨지요. 그러면서 이 겨울 그저 잠시나마 머리맡에 두고 싶은 작품이라며 스치듯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예사롭지 않게 들으신 시부께서는 낡은 병풍을 손봐서 스님이 머무시던 송광사 불일암에 보내셨지요. 그렇게 스님과 동안거를 마친 병풍은 봄이 되자 한층 고매한 자태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이후로 다시 오셨던 스님은 이번에는 미산(米山 許瀅)의 작품 앞에서 발길을 떼지 못하셨습니다. “스님 다른 작품도 있습니다.”라고 했더니 눈 버릴까 두렵다며 끝내 보지 않으셨지요. 이렇듯 우리 미술관에는 소치와 미산을 비롯해 다채로운 관계와 교감이 어우러진 사연까지도 작품이 되어 소장되어 있습니다.” 우관장은 소치의 작품을 바라보며 슬며시 말을 내려놓았다.

우종미술관을 관장하고 있는 우종문화재단은 우 관장 시부인 박우종(朴又鐘) 선생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 설립한 비영리 공익재단이다. 명칭 ‘우종’에는 또 다른 인연의 중의적 의미가 담겨있다. 우 관장의 친정아버지 성함이 우종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부와 친부의 성과 명을 합성해 보니 박우종수다. 이유야 어떻든 관명과 함께 박용하 이사장과 우영인 관장이 맺은 해로(偕老)의 연이 예사롭지 않음을 큰 무게없이 유추해 보는 것도 흥미로운 대목이 아닌가 한다. 이 특별한 인연의 결정체가 우종미술관이다.





- 우영인(禹英仁, 1949- ) 경희대 사학과 졸업. 광주전남적십자자문위원장, 사립미술관협회 부회장, 전남박물관미술관협회 부회장.
- 박용하(朴龍河, 1948- ) 고려대 독어독문과 졸업, 동 대학원 정치외교학과 수료. 와이엔텍 회장, (재)우종문화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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