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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10대 박물관_ 세계장신구박물관, 이강원·김승영 관장

윤태석


이강원 관장(2023, Frieze Art Fair)


‘때로는 아프리카의 흙먼지처럼 아득하게, 며칠 전인 듯 선명하게 되살아나는 50년 수집의 길! 그리고 뜨거운 자갈길을 맨발로 걸어온 것 같은 20년 박물관 운영의 길! 이 두 길은 저와 제 남편의 정체성이자 업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울 종로 삼청동길에 있는 세계장신구박물관 이강원 관장의 얘기다.

어려서부터 장신구를 아끼고 좋아했던 이강원은 외교관이던 김승영을 만나 ‘수집의 성’을 높고 단단하게 쌓아 왔다. 이강원은 1978년 재독일대사관에서 참사관으로 있던 남편이 에티오피아로 발령을 받게 되면서 동부 아프리카 땅을 밟게 되었다. 당시 격심한 내전 중이었던 그곳은 치안도 최악이었고 생필품도 구하기 어려울 만큼 열악했다.

정세만 보면 이강원의 인생에 대전환의 땅이 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암울한 미지. 그때까지 해외에서 살면서 이강원의 호기심 천국을 채워준 곳은 전통시장이었다. 관저에 세간살이가 어느 정도 정리되자 ‘이곳에도 시장은 있겠지?’ 가라앉아있던 호기심의 금단 증세가 스멀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국이 시국인지라 시장에 가는 것조차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강원은 마침내 어느 노천 시장을 찾게 되었다. 그곳에서 우연히 은목걸이를 보게 되었고 그것이 전통장신구 수집의 길을 걷게 한 계기가 되었다.



박물관처럼 꾸민 아르헨티나 대사관저(2001)


수집과 여행은 일란성 쌍둥이와 같다고 이강원은 말한다. 그의 말에 의하면 수집과 여행은 같은 부모를 둔 형제이자 떼려야 뗄 수 없는 끈으로 엮인 특별한 관계다. 수집은 여행에게 많은 빚을 지고 이루어진다. 수집과 여행에 생명을 불어넣은 시인다운 묘사다.

특히 세계의 장신구를 수집하는 일은 만나야 할 사람도 많고 밟아야 할 땅도 광활하기에 여행은 수집의 중추가 된다. 따라서 아프리카부터 남미까지 누빈 이강원의 삶은 수집가로서 부여받을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이었다. 이런 천혜의 멍석을 깔아준 은인은 단연 외교관인 남편 김승영이었다. 그러나 양지와 음지는 늘 공존하는 법. 외교관 부인의 역할은 팔색조보다 더 많은 변신을 해야 할 만큼 수많은 역할을 감당해야 했다. 여기에 ‘수집가’라고 하는 숙명까지 더해져 이강원은 구색조가 되어야만 했다. “수집가의 길을 가는 것은 ‘기다림과 인내심’을 곁에 두고 가는 긴 여정입니다. 비행기를 타든 두 다리로 걷든, 멀고 지친 유랑 뒤에도 원하는 수집품을 얻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길 떠남’을 늘 신성시하곤 한답니다. 미지의 장소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유물을 만났을 때는 수집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을 절대 후회하지 않지요. 마침내 중독자로 격상되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이강원의 이 말에는 컬렉터의 고단함과 보람이 함께 묻어있음을 엿보게 한다.

시간과 장소의 누적 층이 두터워지면서 수집의 폭도 넓어지고 깊이도 더 해진다. 지역도 전 세계를 아우르게 되었고 수집품도 세계의 전통장신구에서 하이주얼리(High Jewellery)까지 폭넓은 자료를 품게 됨은 물론이다. 수집 중반기인 1990년에 이르자 자연스럽게 박물관 건립의 꿈을 갖게 된다. 2002년 김승영이 주아르헨티나 대사를 끝으로 35년간의 외교관 생활을 마감하자 본격적으로 박물관 세우기 작전에 돌입한다. 그렇게 하여 2004년 5월, 이 긴 노정의 결정체인 세계장신구박물관의 문을 열게 된 것이다. 아시아 최초의 장신구 전문 박물관이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주위의 기우나 만류를 뒤로 한 채 앞으로, 앞으로 돌진해 나아갔다. 이강원에게 박물관 건립과 운영은 그랬다. 빠듯한 예산임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건축가에게 설계를 의뢰했고, 내부 장식도 유능한 젊은 건축가에게 맡겼다. 유물에 자신 있고, 건물과 전시도 빼어나니 경영도 그것에 맞게 따라와 줄 것으로 확신했다. 그러나 관람객 숫자에 일희일비하는 냉혹한 현실이 보내는 불길한 신호를 해독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네덜란드와 영국에서 박물관학 석사 학위를 받은 두 딸과 64세에 학예사 시험에 합격, 자격증을 취득한 남편까지 온 가족이 박물관에 매달려야만 했다. 해외의 대형 박물관과 개인 박물관의 경영을 꼼꼼히 연구하고 벤치마킹도 해보았지만, 그들의 수준과 우리의 그것 차이는 엄청나게 큰 게 현실이었다. 그러나 『Art Jewelry Forum』(2012.11), 『Asian Art Newspaper』(2014.6), 『Conde Nast Traveller』(2015.7), 『Financial Times』(2023.10) 등 국제적인 언론과 전문 매거진 등에 소개되고 박물관의 나이테가 두터워지자 해외에서부터 주목하기 시작했다.



세계장신구박물관 전경


2012년에는 루브르박물관, 빅토리아알버트뮤지엄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10대 박물관>에 선정되었고, 2015년에는 스미소니언박물관, 영국왕실박물관 등과 함께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세계 5대 보석박물관(What every Jewellery lover should have on their bucket list)>에 꼽히게 되어 그 영광을 연혁에 올릴 수 있었다. 이러한 그간의 수고가 정부로부터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도 받게 되었다.

“장신구는 인류의 역사와 가장 오래 함께 해온 동반자입니다. 세계 곳곳에서 혼을 흔들어 놓을 정도로 아름답고 깊이 있는 장신구가 제작되었던 이유이기도 하지요. 수집 초기에도 수집하기 쉽지 않았지만, 이제는 장신구를 필요로 하던 전통문화도 흐릿해졌고 장인마저 대가 끊겨 세계장신구박물관의 유물들은 친구를 거의 잃은 외로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런 고귀함을 알아보는 눈 밝은 외국인 관람객들이 증가하더니 몇 년 전부터는 내국인보다 외국인 관람객 비율이 월등히 높아졌다. 박물관 방문을 목적으로 우리나라를 찾는 유명 인사까지 생겼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코로나로 인한 지난 2년의 세월은 박물관 존립 자체를 뒤흔들 만큼 타격이 컸지만, 반면 새로운 정비와 도약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관람을 사전 예약제로 돌려 무작정 기다리는 데서 벗어나 시간과 관리를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게 됐으며, 영어와 한국어 유튜브 제작, 디지털 기술과 장신구와의 콜라보, 증강현실(AR) 필터사용, 온라인 플랫폼 등 글로벌 관람객과의 소통도 적극적으로 시도하게 되었다.

부부는 닮는다고 했던가. 이에 더해 필자가 만난 수집가들은 유물을 닮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가 아는 이강원과 김승영은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 같은 인품의 소유자다. 이강원 관장은 반면, 아프리카의 열기만큼이나 붉은 의상과 과감한 목걸이 장식이 오묘하게 잘 어울리는 정열의 소유자다. 때로는 인도 라다크의 머리 장신구처럼 화려하고 어떤 때는 일리아&에밀리아 코바코프의 반지에 박힌 에메랄드처럼 진중하다. 유물을 닮아간다는 얘기다.

이강원과 김승영은 이제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세계장신구박물관을 세계인이 찾는 장신구의 성지이자 아름다움의 발신 기지로 자리매김하겠다는 포부가 그것이다. 이를 위해 다시금 수집을 시작할 때의 열정과 각오로 돌아가, 그 초심의 끈을 질끈 동여매고 있다.



- 이강원(李康媛, 1947- ) 이화여자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미국 Northern Virginia Community College 영문과 수료. 시인, 한국박물관협회와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이사 역임, 박물관 분야 국가사회발전 공로 대통령 표창 수상(2016), 서울시 문화상 수상(2016), 『장신구로 말하는 여자』(2017), 『인생의 상비약』(2019) 등 지음.

- 김승영(金昇永, 1940- ) 서울대 법학과 졸업. 1968년 외교부 입부, 주에티오피아, 코스타리카, 콜롬비아, 아르헨티나 대사 역임, 세계장신구박물관 공동 설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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