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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호밋자루 하나 들고, 방림원(方林園) 방한숙 관장

윤태석

방한숙 관장과 분재작품


방림원의 겨울 전경


“동물원, 아쿠아리움, 수목원도 박물관일까요?” 일반인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주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박물관이다.”라고 답하면 “그렇다면 피라미, 고양이, 개나리, 장미꽃 같이 살아있는 생명체가 유물이라는 말입니까?” 이 역시 맞는 말이다. 우리나라에는 거미, 허브 식물, 다양한 수목, 여러 가지 곤충과 물고기 등 동식물을 주제로 한 박물관이 이미 다수 존재함은 이를 반증한다. 방림원(方林園)도 그중 하나다. 명칭에 동산과 정원을 일컫는 園자가 들어있는 것을 보니 정원임을 짐작게 한다. 이 정원의 설립자는 1985년 배우자와 함께 일본 여행 중에 우연히 철쭉전시장을 찾게 되고, 그곳에서 다섯 가지 꽃이 핀 분재 하나를 보게 된다. 나머지 일정은 물론 귀국한 후에도 그 경이로운 장면은 전율처럼 뇌리에 남아 다시 한번 그곳을 찾게 되었다고 한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전국을 누비며 다양한 분재와 야생화를 접하게 되었고, 청계산 자락에 ‘삼보분재원’을 조성하기에까지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유난히 꽃을 좋아하던 어머니의 유전자를 그대로 물려받았다는 방한숙 관장이 바로 방림원의 설립자다. 방 관장에게 제주도는 특별한 인연이 있는 곳은 아니었다. 단지 제주도의 삼보(三寶) 중 하나가 제주도만의 독특한 식물자원임을 알게 된 후 제주 야생화에 관심을 두게 되면서다. 그러던 중 1999년 제주도 북제주군 한경면 저지리에 예술인마을이 조성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고, 분재 예술인으로 이름을 올림으로써 입주 자격을 얻게 된다. 그렇게 하여 땅 1,000평을 분양받아 20여 년 동안 일궈왔던 청계산 분재원을 정리하고 ‘방한숙 야생화전시관’이란 간판을 내걸고 제주도로 옮기게 되었다. 그리하여 2002년부터 3년간의 준비 끝에 2005년 4월 ‘세계야생화박물관 방림원’으로 개칭 후 개관하게 되었다. 예술인마을 건립 계획이 수립되었으나, 처음에는 예산확보가 어려웠던 데다 열악한 지리적 여건으로 인해 추진은 지지부진 난항을 겪게 된다. 그런데도 방 관장은 제대로 된 건축물 하나 없던 이곳에 가장 먼저 터를 잡고 3년이 넘게 컨테이너에서 생활하면서 각고의 노력 끝에 문을 엶으로써 예술인마을 조성을 견인했던 것이다. 즉 예술인마을의 가능성이 방림원이라고 하는 진취적이고 실험적인 공간을 통해 확인되면서 ‘제주현대미술관’과 ‘김창열미술관’ 등 저지예술인마을은 지금의 모습을 갖출 수 있었다. 따라서 그만큼 초기 준비과정은 험난하고 고단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언제나 호밋자루 하나 들고 이리저리 정신없이 돌아다니던 기억과 때로는 지쳐 돌밭 위에 주저앉아 하염없이 울던 모습만이 떠오른다. 망각이란 말뜻처럼 허무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제주에서 첫 삽을 떠 공사를 시작한 이래 겪었던 그 많은 고뇌와 고통을 늘 안고 살아야만 한다면 어찌 삶을 유지할 수 있을까? 힘들었던 지난날은 잊히고 좋았던 기억과 희망이 앞서니 말이다.’ 개관 5주년 기념행사에서 밝힌 방 관장의 회고는 조성 당시의 고난과 고뇌를 잘 말해주고 있다. 방림원은 방 관장과 방림원의 든든한 후원자인 그의 남편 임도수의 성씨에서 따온 이름이다. 이 정원은 그저 부부가 화초나 가꾸며 노년을 보낼 요량으로 자그맣게 시작되었다. 그러나 막상 일을 벌여 놓자 수목의 뿌리가 번지듯 의욕도 규모도 자연스럽게 커지게 되었다. 청계산 시절부터 40여 년간 국내와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니며 수집한 다양한 3,000여 종의 야생화가 자리를 잡아 모양을 갖추게 되고, 여기에 명성이 더해지자 여기저기 전문 박람회와 전시회로부터 초대를 받게 된다. 이렇게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되고 찾아오는 사람이 크게 늘어나게 되자 더는 부부만의 사적 공간으로만 놔둘 수 없는 공유와 향유의 공간으로 탈바꿈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여기에 지치고 힘들게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자연이 주는 안식과 그 소중한 가치를 공유하고 보존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자그마한 역할이라도 할 수 있기를 바라는 작은 소망이 더해지게 된 것이다. 

방 관장은 수집한 식물을 기반한 다양한 연구 자료와 더불어 유전자 보전에도 노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 야생화를 연구와 교육자료로 활용하고자 『고사리의 세계』, 『방림원의 야생화』, 『방한숙 야생화 작품집』 등 학술서를 자체 발간하고 있다. 특히 제주도 고유종 자생식물 50여 종을 수집하여 조성한 ‘제주 자생식물전시관’은 관람객들에게 큰 호평을 얻는 등 학술적으로도 대단히 중요하게 평가되고 있다. 지난 2007년에는 중국 인민일보가 발행하는 시사잡지 『환구인물(环球人物, 영문명: Global People)』은 방 관장을 ‘제주도의 여우공(女愚公)’으로 소개한 바 있으며, 중국 인민일보에서는 ‘한국 우공(愚公) 잡감(雜感)’이라고 보도하여 방림원이 중화권으로까지도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미얀마의 정신적인 지도자 사야도 우 조티카(Sayadaw U JOTIKA) 큰스님을 비롯해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중화 TV드라마 ‘판관 포청천’의 출연진과 스태프 등 세계 20여 개국의 중요 인사들이 다녀가기도 했다. 


방림원의 가을 전경


방림원은 개관 이래 지금까지 6백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다녀갈 정도로 명실공히 제주도는 물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자연과 문화의 중요 박물관 자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식물이 발산하는 끝없는 아름다운 에너지, 생성사멸(生成死滅) 순환의 질서에서 방 관장은 박애와 겸손을 배운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이를 공유하고 공감함으로써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건강한 세상이 되기를 희망한다. 박제된 유물이 아니라 생명을 다루고 제주 고유종을 비롯한 희귀종 야생화를 늘 입·이식(入·移植)해야만 하는 환경과 전염병 대유행에 중국과의 군사 정치적 관계 악화 등으로 항시 운영난을 겪어야만 했던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개관 초기부터 지역발전과 예술인마을 활성화를 위해 발전기금을 기부해 오고 있는 것은 이를 위한 작은 실천의 하나다. 이렇듯 우리나라 최초의 야생화 전문 식물박물관 방림원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야생화 정원을 가꾸기 위해 노력해 왔다. 특히, 몇 해 전 한라수목원장과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장을 역임한 이 분야 최고의 전문가를 영입해 전문화를 꾀하고 있는 것은 이를 위한 또 다른 시도로 박물관 계에서는 대단히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개인이 운영하는 박물관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참신한 실험으로 이 역시 방 관장의 남다른 운영 철학을 엿보게 한다. 한국박물관협회는 방 관장이 보여준 그간의 노고와 족적을 높게 평가하며 박물관 인으로서는 최고의 영예인 자랑스런박물관인상을 수여(2022)하기도 했다. 방한숙과 임도수의 방림원은 제주에서 피어나고 있다.


- 방한숙(方漢淑, 1943-) 방림원 설립 관장, 수필가, 한국야생화협회 자문위원, 방한숙 야생화 개인전(2005), 제1회 고양국제꽃박람회 등 다수의 박람회와 전시회에 출품, 월간 문예사조 수필 『덩굴클럽』 당선(2023), 자랑스런박물관인상 특별공로상 수상(2022), 제주관광협회 관광자원화기여 부문 대상 수상(2019),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수상(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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