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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실처럼 가늘고 구불구불한 밭두렁 같은 한국자수박물관 허동화

윤태석

국립민속박물관 전시 개막식, 주돈식 문화부장관, 조순 서울시장, 1996


프랑스 기메박물관장과 함께(2013)


허동화는 탈춤으로 유명한 황해도 봉산출신이다. 넉넉한 집안은 아니었지만, 걸인이 오면 늘 정성을 다해 상을 차려주셨던 어머니의 마음 씀씀이는 어린 눈에도 넉넉함으로 들어왔다. 어머니는 당신 자식들에게마저 반말한 적이 없을 만큼 모범적인 분이 없다.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겸양과 배움의 지혜는 지금까지도 수장고의 유물처럼 허동화의 가슴 속에 깊이 간직되어 있다. 
유소년기를 고향에서 보낸 청년 허동화는 1945년 광복과 함께 자유를 찾아 월남했다. 그가 우리나라 옛 문화에 관심을 갖고 도자기, 자수, 목기와 민속자료 등을 수집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중반부터였다. 그저 우리 것이 좋고 수집된 하나하나의 자료들은 마치 고향 땅에 두고 온 친구들 같고 켜켜로 선 조상의 무덤처럼 아득한 것이었다. 그렇게 모인 자료로 1971년에 치과의사인 부인 박영숙의 병원 한 켠에 10여 평 규모의 박물관 형식의 전시장을 열게 되었다. 한국자수박물관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당시 진열품으로는 도자기, 자수, 목기 등 형태와 기능이 각기 다른 여러 가지 민속관련 공예품들이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수집의 방향이 분명해지면서 자수관련 자료에만 집중하였다.

민속자료는 1970년 초 새마을운동이 시작되면서 고미술시장으로 유입되기 시작했다. 그중에서 자수는 다른 자료에 비해 화려하고 미적이면서 우리 미감을 잘 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집의 주 대상으로는 인식되지 못하고 있었다. 따라서 비용 역시 적게 드는 장점이 있었다. 차츰 자수의 매력에 빠져들면서 안목도 높아진 허동화에게 연구와 보존할 가치가 큰 다양한 자수품이 늘어나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렇게 하여, 1976년 부인의 치과가 을지병원으로 이전·개관할 무렵에는 어느덧 자수전문박물관으로 변모하고 있었다. 부인 박영숙과 함께 문을 연 박물관의 초기 명칭은 한국자수박물관이었다. 이후 허 관장의 호를 딴 사전자수박물관(絲田刺繡博物館)으로 변경하였다가 1991년 논현동으로 이전할 무렵, 다시 한국자수박물관으로 개칭하게 되었다. 
허동화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우리 정체성의 가치를 자수를 통해 확인하면서 1992년부터는 해외에도 부지런히 선보였다. 현재에도 미국을 시작으로 일본, 벨기에, 스페인, 프랑스, 뉴질랜드, 호주, 독일 등에 50여 차례의 전시도 개최해 오고 있다. 소장품으로는 <자수사계분경도(刺繡四季盆景圖>(보물 제653호, 우리나라 춘하추동의 풍광이 자수로 섬세하게 묘사된 네 첩짜리 병풍), <수가사(繡袈裟> (보물 제564호) 등 보물 2점과 대향낭(大香囊), 다라니(陀羅尼)주머니, 왕비보 등 중요민속자료 3점을 포함해 자수류와 보자기류 각각 약 1,000여 점 등 총 2,000여 점이 있다. 
그 중 <자수사계분경도>의 입수 과정은 운명 같았다. 1975년 어느 날 평소 거래가 잦던 인사동의 젊은 고미술상에게서 좋은 물건이 나왔으니 구경 한번 나오라는 전화가 왔다. 바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데 어느 날 번뜩 “아차!” 싶었다. 며칠이 지나서야 허겁지겁 달려가 그를 찾았다. 그가 펼쳐 놓은 자수품은 한눈에도 범상치 않은 것으로 허동화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폭마다 격조있게 배치한 기물 하나하나는 한 올 한 올의 실 위에 얹혀 유원한 역사의 하모니를 발현하고 있었다. 고려시대의 것임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미 터키 대사 부인이 사가기로 결정된 후였다. 바로 달려올 걸 “아~!” 탄식을 하고 가슴을 친다고 되돌 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입수는 못하더라도 해외로 나가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 더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 문을 나오기 전, 자포자기의 심정까지 더해 “내가 본 이상 이건 절대 해외로 나갈 수 없네. 내가 누군지는 자네도 알지 않나.” 대한민국(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의 은근한 협박이었다.


자수사계분경도, 보물 제653호


집으로 향하던 발걸음은 마치 군에 간 아들놈 첫 면회하고 돌아오는 심정 같았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까 학수고대하던 전화가 걸려왔다. 이렇게 해서 <자수사계분경도>는 허동화에게 입수되었고 보물급 문화재의 해외반출도 막을 수 있었다. 13-14세기 무렵 고려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자수사계분경도>는 각 계절에 알맞은 분경이 수 놓여있다. 봄 풍경의 문양은 가운데 석반(石盤)을 중심으로 좌우에 화병과 나비가 배치되어 있다. 채석(採石) 조각이 장식된 석반 위에는 괴석과 매화가 분경을 이루고, 왼편의 화병에는 모란이 분재 되어 있다. 반면 오른편 화병에는 부채와 종이 두루마리 및 현등(懸燈, 밤에 깃대에 매다는 등)이 막대기 위에 걸려 있어 세련미에 수려함을 더해 준다.  
이전까지만 해도 꽃꽂이는 일본 고유의 문화로 알려졌었다. 이 병풍은 이미 고려시대에 꽃꽂이가 널리 성행하고 있음을 기록사진처럼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어, 오늘날 일본의 꽃꽂이 문화가 우리에게서 전파된 것임을 재인식하게 해주고 있다. <자수사계분경도>는 미학적 조형미에 사료적 가치까지 더해 유물이 갖는 힘을 실감케 해주고 있어 국가적으로나 허동화에게나 매우 특별한 의미가 있는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한편 그의 아내 박영숙은 1996년부터 98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사인교, 다수의 다듬잇돌, 평교자 바탕 등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해 다듬잇돌을 테마로 기증자실이 만들어지기도 해 부창부수의 길을 가고 있다. 

구순이 넘어선 지금, 허동화는 오늘날 자신이 있을 수 있음을 감사한다고 회상한다. 동토(북한)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우선 감사하며, 도자기나 회화가 아닌 보자기와 자수를 수집할 수밖에 없었던 가난함에 또 감사한다. 이러한 가난의 축복으로, 하마터면 역사 속에서 망각될 뻔 했던 규방문화재를 헐값으로 수집할 수 있었으며 전문 학자에게 조사연구를 의뢰할 수 없어 스스로 자료집을 저술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풍요롭게 태어나지는 못했어도 의사 아내를 만나 생활고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박물관도 문을 열 수 있었음은 허동화 인생에 가장 큰 축복이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있다.
박물관 입구에는 ‘사전가(絲田家)’라는 팻말이 세워져 있다. 굳이 풀어보자면 사전(絲田)이 사는 집일 것이다. 실사(糸)자는 굵은 실 또는 한 가닥의 실이라면, 둘(糸+糸=絲)이 되면 가는 실 또는 여러 번 겹쳐 꼬아서 쓰는 실을 의미한다. 여기에 전(田)을 붙여 실처럼 가늘고 구불구불한 논두렁 같은 실밭 또는 아내와 조화를 이뤄 밭을 이루다는 뜻이다. 20대 때에 고향풍경을 그리며 그렇게 살고자 지은 이름이다. 그리고 허동화는 박영숙과 지금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 허동화(許東華, 1926- ) 황해도 봉산 출생, 육군사관학교 졸업(1950), 동국대 법정대학 졸업(1957), 동국대 행정대학원 석사(1969). 미국 Linda Vista Baptist대 명예 인문학 박사(1988), 명지대 미술사학 명예박사(2013), 한국전력공사 이사(1964)및 감사 역임, 한국사전자수연구소장(1974-현재), 한국자수박물관장(1976-현재), 한국민중박물관협회장(1968-78), 문화재 전문위원(1978-2001). 저서 『한국의 자수』 외 25종(1978). 국내외 문화재공개전시 109회(1979), 국립현대미술관회 강사 15년(자수예술론)(1986), 보관문화훈장 수훈 외 25회(1987), 대한민국문화예술상 심사위원 2회(1990), 사단법인 한국박물관협회장(8년) 및 명예회장(8년)(1991), 국가유공자 대통령표창 수상(1993), 허동화 작품전-갤러리슈터 외 31회 특별전 개최(1995), 문화재 기증 기부-국립중앙박물관 외 16회(1996), 아주대 외래교수 4년(1998), 재단법인 일본전승염직진흥회 이사(2007-현재), 5·16민족상 심사위원(2013) 등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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