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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역사를 김매기하다 독도박물관 이종학

윤태석

화서동 서재에서


최근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방침은 우리 사회 전체의 갈등으로까지 심화하고 있다. 우리 역사를 바로 세우자는 내부가 이럴 진데,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한 국가 간 갈등이라면 얼마나 첨예할까를 생각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독도는 한일 양국 간 갈등의 정점에 있는 상징성으로 아직도 해결의 실마리가 요원한 역사적 숙제로 남아있다. 독도가 우리 땅임을 증명해 보이는 데 일생을 바친 이가 있다. 바로 사운 이종학(史芸 李鍾學)이다. 

이종학은 1927년 수원군, 지금의 화성시에서 태어났다. 화성은 융건릉과 용주사, 남양향교 등 유서 깊은 문화유산과 역사적인 인물이 많이 배출된 곳일 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에는 항일운동이 가장 격렬했던 곳 중 하나다. 종학은 이러한 역사적 환경과 분위기에서 자랐다. 어려서는 서당에서 한학을 배웠으며, 8살 때에는 아버지를 여의고 할아버지와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삼괴공립보통학교(현 화성장안초등학교)에 들어가 신학문을 접했고 삼괴고등공립학교를 졸업했다. 해방과 함께 그는 고등고시를 목표로 잠시 건국전문학교에 다니기도 했다. 


일본 시마네현의 독도영유권 주장 푯말 앞에서(1994)


이종학은 천성적으로 독서를 좋아해서 책을 한번 잡으면 끝을 봐야 자리에서 일어나곤 했다. 군 전역 후 첫 사회진출의 출구로 서점을 선택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1955년 ‘권독서당’이라는 서점을 종로5가에 차린 후 ‘연홍서림’으로 상호를 변경했다가 ‘연세서림’이라는 간판으로 연세대학교 근처로 자리를 옮기면서 고서 수집을 시작했다. 이종학이 먼저 빠져든 것은 충무공 이순신이었다. 『난중일기』의 오역을 잡아냈고, 『해장집(海臧集)』에 실린 기사를 통해 거북선 머리의 구조를 밝혀냈으며, 『반곡집(盤谷集)』에서 이순신이 해전뿐 아니라 육전(陸戰)에도 능했음을 세상에 알리는 등 이순신에 대해 폭넓은 연구를 통해 역사문화계에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켰다.

그러는 와중에 독도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럽게 높아져 갔다. 1981년 11월부터는 일본에 있는 독도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자 직접 일본을 방문하기 시작해 작고할 때까지 총 60여 차례나 왕래하면서 사료적 가치가 높은 수천 종의 귀중한 자료를 수집했다. 이를 근거로 일본 시마네현을 비롯한 국제사회에 독도가 명실공히 우리 땅임을 피력했다. 1994년에는 이를 본격적으로 실증하기 위해 울릉군과 독도박물관 건립을 발의하였으며, 이듬해인 1995년 5월에 울릉군에서는 대지를, 삼성문화재단은 건물을, 이종학은 자료를 기증하기로 합의한 약정서 교환을 통해 독도박물관 건립을 구체화하였다. 이에 따라 1997년에 30평생 모았던 독도와 동해 명칭 등에 대한 자료 2,200여 점을 울릉군에 기증했다. 이 자료를 토대로 독도박물관은 당해 8월 8일 문을 열었고, 이종학은 그 이듬해 2월 초대관장이 되었다. 


독도박물관 건립계획 문서


하지만 독도를 지키는 일이 우리 내부에서부터 적지 않은 문제가 있음을 발견하게 되면서 이종학의 회한은 커져만 갔다. 당시 일본은 입법·사법·행정부를 총동원해 독도가 자기네 영토임을 주장하고 나섰다. 그러나 우리정부의 태도는 다분히 미온적이었다. 이에 항의하고자 2000년 5월 ‘지키지 못한 독도, 독도박물관 문 닫습니다’는 현수막을 내걸고 박물관 폐관이라는 퍼포먼스로 우리 정부의 굴욕적 태도를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아마 2000년 이맘때(11월)쯤 이었습니다. 전갱이과 바다 생선인 방어(方魚·舫魚)가 그해 동해안에서 아주 많이 잡혔습니다. 울릉도 어시장에도 1m가 훌쩍 넘는 크기의 방어가 지천이었으니까요. 어느 날 관장님이 난데없이 방어 사러 가자고 제 손을 잡아당기셨어요. 관장님 손에 이끌려 시장으로 간 우리는 영문도 모른 채 깨끗이 손질된 크고 실한 방어 몇 마리를 골라 박물관으로 가져왔지요. 그리고 관장님의 지시에 따라 바람이 잘 통하는 옥상에다 잘 말려놓았습니다. 며칠이나 지났을까? 방어가 어느 정도 건조되었을 무렵 외출하고 돌아오신 관장님 양손에는 당시 어느 주류회사에서 팔았던 ‘독도 소주’ 몇 병이 들려있었습니다. 적당히 건조된 방어를 보신 관장님은 ‘자, 방어 한 마리에 소주 한 병씩을 포장하자!’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지만 직접 포장에 나선 관장님의 얼굴에는 비장함마저 얹혀져 있었습니다. 


독도박물관 개관식, 1997


선물이라면 방어 한 마리면 충분할 텐데 소주 한 병은 뭐람? 포장이 끝나자 관장님은 손을 탈탈 털고 일어나시더니 ‘자, 이제 됐다. 독도 방어라~!’, ‘독도(소주) 방어(물고기)?’ 그제야 그 심오한 뜻을 알고 우리는 허탈함 반, 숙연함 반으로 관장님을 한동안이나 쳐다봤었습니다. 관장님의 결연한 의지까지 담긴 편지까지 동봉되어 묵직한 ‘독도방어 선물세트’는 청와대, 국회, 관계부처 및 관련 기관 등에 정성껏 보내졌습니다만 결과적으로 메아리 없는 외침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독도에 대한 관장님의 애정은 그가 가신 지금에도 유물처럼 기억에 남아 숙여질 때가 많습니다.” 당시 유물관리 담당 연구관으로 있다가 이종학 관장을 이어 독도박물관을 이끌고 있는 이승진 관장의 술회다.
이처럼 이종학은 독도 같은 사람이었다. 결국, 이종학은 정부에 대해 크게 실망한 나머지 2001년 2월에 마침내 관장직도 내려놓게 되었다. 관장에서 물러난 한 달 뒤에는 우리가 제대로 하지 못한 일본과의 과거 청산을 북한만은 제대로 해달라는 바람을 안고 일제강점기와 관련된 자료를 가지고 평양 인민대학습당으로 날아가 전시를 통해 강한 의지를 피력했다. 그리고 전시 후에는 그 자료를 고스란히 평양에 남겨두고 돌아왔다.


 울릉도 이종학 묘소와 송덕비


이외에도 이종학은 일본의 경술국치 공작이 얼마나 치밀하게 계획되고 만행 되었는지를 일본 궁내성 문서를 통해 입증했다. 이 외에도 조선을 병합하기 위해 얼마나 치졸한 공작이 있었는지, 일본 군대를 조선에서 증원하여 합방 반대세력을 제압하려고 어떤 준비과정이 있었는지 등도 밝혀내기에 이른다. 그뿐만 아니라 문화재관리국(현 문화재청) 등 관계 당국에 적극적으로 건의하여 일제가 지은 ‘수원성’이란 이름 대신 본래 이름인 ‘화성’으로 되돌리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또한, 일본 야스쿠니 신사에 있는 북관대첩비(北關大捷碑)가 북쪽 회령 지방에 있던 것이라는 사실을 밝혀내는 등 작고 전까지 올바른 역사를 찾기 위해 명과 운을 다 걸었던 것이다. 그중에서 이종학의 가장 큰 업적은 그동안 관심 밖에 있었던 독도 문제를 대내외적으로 알려,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사실을 일본이 만든 자료를 통해 밝히고자 한 점, 이 자료들이 박물관을 통해 독도가 우리의 영토임을 증명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가 간 지금도 독도박물관은 울릉도의 동쪽 끝자락에서, 떠오르는 해를 등지고 외롭게 서 있는 우리 영토 독도와 마주하며 역사의 김매기(史芸)를 하고 있다.


- 사운 이종학(1927-2002) 경기도 수원군(현 화성시) 출생, 종로 5가 ‘권독서당’ 책방 운영(1955), 연세대 앞에서 고서점 ‘연세서림’ 운영(1957), 첫 독도 방문(1983), 거북선 머리 구조 등을 밝힌 『해장집』(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본) 발굴 및 공개, 수원시사 편찬 및 집필위원(1985), 독립기념관 개관(첫 번째 입장, 독립기념관 1호 입장권 기증)(1987), 자료 수집 차 북경대, 연변대 등 10여개 곳 방문(1988), 천도교 수운회관에서 ‘동학혁명 100주년기념 특별전시회-이종학 소장 문헌 자료전’ 개최(1994), 문화재관리국에 수원성 명칭을 화성으로 변경해달라는 청원서 제출(1996), 사운연구소 개소(종로 수운회관 310호)(1996), 30년간 수집한 독도 관계 자료를 토대로 울릉군·삼성문화재단·중앙일보와 협의하여 울릉군에 독도박물관 건립 추진(1997), 독도박물관 개관(독도관련 자료기증)(1997), 독도박물관 초대관장 역임(1998-2001), 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 초대소장(1999-2000), 독도박물관 특별기획전 전시자료 기증(441종 746점)(2001), 누적기증자료 총 830종 1,301점, 국민훈장 무궁화장 서훈(2003), 수원박물관에 전체소장 자료 2만여 점 기증(2004), 수원박물관 내 ‘사운 이종학사료관’ 개관(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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