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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이병희, 생명의 본질을 찾는 정동정치의 큐레이터

김준기


이병희 큐레이터


이병희는 1세대 대안공간 큐레이터 출신으로서 지금까지 현장을 지키는 21세기 한국현대미술의 산 증인이다. 20여 년 전 한국미술계의 주요 화두였던 제도미술계 비판을 통하여 새로운 미술의 자리를 만들어낸 대안공간 경험은 그에게 평생의 뜻과 일을 분기하는 과정이었다. 싱가포르 체류기간에도 그는 독립큐레이터로서 활동했다. 2016년 대안공간루프에서 했던 《시의부적절한 만남(Untimely Encounter)》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이어서 소논문 「로컬리티와 로컬 몸의 재발견_싱가포르 퍼포먼스 아트와 정체성의 정치」(한국예술연구, 2019년 26호)를 학술지에 게재하면서 새 화두를 얻었다. 한국미술계에서 제도비판이 최우선의 과제라면, 아시아 국가들에서는 예술의 독립성, 자율성이 중요한 문제라는 점을 새삼 확인한 계기였다.

2023년 포항시의 문화도시 정책사업의 일환으로 포항문화재단이 주관하는 《오토포이에틱 시티(Autopoietic City)》(구 수협냉동창고 복합문화공간)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은 서울과 싱가포르 등 거대도시 중심으로 활동했던 그에게 지역성이라는 새로운 화두를 가져다 주었다. 철의 도시, 관광의 도시로 알려진 포항이 문화로 거듭나려면 재생의 철학을 장착하는 것이 필요했고, 그래서 ‘오토포이에시스(자기 생성)’란 개념을 중심으로 ‘정동(affect)’의 활성화를 위한 행위자 네트워크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시민과 대중의 차이를 간파하면서 공간의 배치, 창작과 향유의 매개 등을 고민하고 있다.

이병희정신의 핵심은 ‘정동정치’다. 그것은 ‘환경의 정동적 자율 운동을 위해 예술적 사건이 지속해서 촉발되도록 하고, 그 과정에서 제도적인 것의 경계를 넓히고 삶에 정서적 생기와 활력을 북돋게 하는 것’이다. 그가 청년기를 보낸 1990년대는 정치와 경제의 영역 일변도에서 문화적 공간과제도, 창작과 향유, 관행과 비평이 활성화하던 시기였다. 그에게 문화는 ‘정동의 힘’이며, ‘살아있는 생기와 활기’이다.

급격하게 신자유주의 체제로 빨려 들어가면서 신좌파 경향의 문화운동이 벌어지던 시기에 청춘을 보낸 그는 미술계에 발 디딘 이래 문화로서 예술의 지위와 역할에 관해 늘 관심을 갖고 살아왔다.

그가 대안공간 운동 시기를 경험한 후 글로벌 씬과 로컬 씬을 오가며 생각하는 것은 예술을 매개로 한 문화의 힘, 즉 정동정치의 가능성이었다. 생산과 소비, 창작과 향유의 관점에서 문화는 다층적으로 존재한다. 동시대 사회는 주체적이고 자율적인 문화의 장이 점점 사라지고 문화산업의 전지구적 편재로 재구조화한 지 이미 오래다. 예술을 매개로 한 문화운동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환경과 생명의 본질을 찾는 정동정치’는 이병희정신의 출발지이자 종착지이다.

2022년부터 ‘포항에 대안공간을 만들기’를 하고 있는 이병희는 구도심의 ‘스페이스298’이라는 전시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나아가 지역사회의 문화담론을 공유하기 위해 ‘같이 알아나가기’ 그리고 ‘네트워크 하기’를 시작했다. 그 이름 ‘포라(Fora)’. ‘영남권 문화예술 기획자 협의체’이다. 이 네트워크의 구성원들과 ‘문화예술 교육, 전시 기획, 비평과 담론 활성화, 연구’ 등을 이야기하면서 새로운 장을 펼치는 것이다.

로컬 씬의 실천들을 모아 정동과 예술 연구를 심화하면서, 자신의 일과 연구를 공공적 미학 실천으로 묶어내는 일. 그것은 이론과 실천의 공진화이다. 요컨대 이병희의 길은 현장 실천과 연구의 선순환 구조 속에서 지속적인 새길을 열어나가고 있다.



- 이병희(1974- ) 서울대 농가정학과, 홍익대 미술사학과 석사, 학위 논문 「한국 생명정치와 미학적 공공성: 현대 미술 프로젝트의 미학정치와 정동배치」로 중앙대 영상예술학과 박사 졸업. 2000년부터 12년간 가나아트센터 및 프로젝트스페이스사루비아다방 큐레이터, 갤러리정미소 아트디렉터 역임. 현재 포항문화재단 space298 아트디렉터(20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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