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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배명지, 문명사를 새로 쓰는 큐레이터

김준기


배명지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사


20여년간 사립미술관과 국립미술관에서 일해온 배명지는 한국과 아시아 현대미술의 주요 의제를 생성하고 진화시켜온 큐레이터다. 그는 2023년의 《현대차 시리즈 2023: 정연두- 백년 여행기》를 비롯해 《히토 슈타이얼: 데이터의 바다》(2022), 《이승택: 거꾸로 비미술》(2020), 《한국 비디오 아트 7090》(2019), 《세상에 눈뜨다: 아시아 미술과 사회, 1960s-1990s》(2018) 등 국립현대미술관의 대표 전시를 기획했다. 코리아나미술관 큐레이터 시절에는 뮌, 고낙범, 이윰 등 유수의 작가 개인전과 《필름 몽타주》, 《텔 미 허스토리》, 《예술가의 신체》, 《이미지 극장》 등의 빛나는 기획전을 꾸렸다. 그의 전시는 전시프로그램 자체로서 빛날뿐더러 그 속에 문명사를 새로 쓰는 마음이 들어있다는 점에서 매번 문제적 사건으로 주목받고 있다.

큐레이터 배명지의 주요 의제는 ‘신체와 아시아미술 그리고 무빙이미지’이다. 그의 기획전 《역사를 몸으로 쓰다》(2018-2019)는 1960년대 이후 예술 매체로서의 몸과 몸짓이 사회와 역사, 문화에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추적한 전시다. ‘집단기억과 문화, 일상의 몸짓과 사회적 안무, 공동체를 퍼포밍하다’ 등의 섹션 제목에서 나타나듯 그는 현대미술의 최전선으로서 신체예술을 깊이 파고 들었다. 그는 ‘세상에 눈뜨다’라는 타이틀로 아시아미술사를 다뤘다. 국립현대미술관과 일본, 싱가포르의 국립 미술관과 공동주최한 이 전시에서 그는 20세기 후반 아시아 각국의 변화와 현대미술의 면면을 연결했다.

시간 이미지 장치라는 부제를 단 기획전시 《한국 비디오 아트 7090》(2019)은 한국현대미술의 비디오아트 30년 역사를 갈무리한 전시다. 한국의 대표 비디오 작가 60여 명의 작품 130여 점을 선보인 이 전시에서 그는 시간성과 행위, 과정 등을 주제로 한 70년대 비디오아트를 살펴보고, 이후의 비디오 조각, 싱글채널과 멀티채널 비디오 등의 90년대까지의 역사를 갈무리했다. 이처럼 배명지는 하나의 주제 전시를 통해 그 주제의 미술사를 서술할 수 있는 단단한 세기와 깊이를 가진 큐레이터다.

그는 작가의 삶과 작품 속에서 한 시대의 정신과 그 뿌리의 철학을 발견하고자 한다. 예술가의 생각을 동시대 담론과 연결하려는 그의 노력은 한 시대의 이론적 성취를 예술 작품 속에서 발견하고, 그 반대로 예술 작품을 통하여 시대정신을 갈무리하는 희열로 이어진다. 작가를 마주하고 작품을 실견하며 그 변화의 추이를 동행하거나 역추적해나가는 과정에서 배명지는 정신적 희열을 얻는다. 작가와 작품 속에서 정신문화의 정수를 발굴하고 채취하여 그것을 미술사와 사회사로 연결하고 나아가 문명사로 갈무리할 수 있다는 믿음, 큐레이터 배명지 정신의 핵심이다.

미술사의 주요 변곡점을 추적해온 그는 비디오아트를 파고드는 연구와 전시로 성과를 냈다. 이어서 20세기 후반 이후 동시대에 이르기까지 아시아의 현대미술을 초국가적인 비교문화 관점에서 연구하고 전시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제국주의 식민과 독립, 전쟁과 냉전, 민족주의와 탈식민, 산업화와 민주화 등의 역사를 지내온 아시아의 역사와 현실 속에서 아시아 현대미술이 어떻게 태동하고 전개, 진화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일이다. 서구 중심의 글로벌 미술사는 다시 쓰는 일로서 기관과 연구자의 협업이 중요한 일이다.
2024년 이후 아시아 여성미술 전시를 시작으로 장기적 관점의 아시아미술 프로젝트를 통하여 비서구 비주류에 머물러 있는 아시아의 문명사를 재구성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는 배명지의 넓고 큰 길이다.


- 배명지(1972- ) 홍익대 예술학과, 동 대학원 미술사학과 석사 졸업·박사과정 수료. 코리아나미술관 책임큐레이터(2004-2015),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2015- ). 2006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올해의 예술상 《이미지 극장》, 2019 아시아아트파이오니어어워드 ‘올해의 전시’ 《세상에 눈뜨다: 아시아 미술과 사회, 1960s-1990s》 수상. 공저 『22명의 예술가 시대와 소통하다, 1970년대 이후 한국현대미술의 자화상』 (2010, 궁리), 『국립현대미술관 연구 제 14집: 데이터와 예술』(2022)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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