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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이승미, 개척자 정신의 큐레이터

김준기


이승미 행촌문화재단 대표이사·행촌미술관장


이승미는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걸어 온 개척자로서, 언제나 현재진행형인 프로젝트를 안고 작가와 함께 일머리를 풀어나가는 현장 큐레이터다. 큐레이터로서 이승미정신의 핵심은 작가와 작품, 예술에 대한 존중으로 의미와 가치를 발굴하며, 작품을 통해 역사와 지리를 관통하는 인문을 성찰하면서 한없는 미지의 영역을 탐구하는 것이다. 그의 뜻과 일은 미술관 전시장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분단체제의 대결 현장에서 치유를 이야기하는 평화미술의 운동가이며, 공연 중심의 한류문화를 미술 영역에서도 실현하기 위하여 수묵을 K-아트로 연결하는 방안을 고민하는 예술정책가이다.

이승미의 현장성은 교육에서 출발했다. 그는 미술관 교육에 대한 인식이 낮았던 20여 년 전, 과천의 사립미술관인 제비울미술관으로 관객을 초대하고 만족도를 높이기 위하여 미술관 전시와 교육을 접목한 어린이 교육 프로그램에 역점을 두었다. 이후 국립중앙박물관 용산 이전 당시 어린이박물관 개관 실무에 참여했으며, 국립현대미술관 시절에는 과천관 1층에 어린이미술관을 만들며, 2023년 해남의 이마도작업실에 이르기까지 미술관 교육을 필생의 업으로 안고 살아왔다. 어린이와 교육이라는 화두를 잡고 그가 걸어온 미술관 교육의 길은 성인을 위한 전시 중심이던 미술관에 변화를 일으켰고 동시대에 이르러 기본 상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에 만화를 끌어들인 ‘한국만화 100년’(2009.6.3-8.23) 전시도 동시대 문화의 최전선으로 자리잡은 만화와 웹툰을 생각하면 선구적인 일이었다. 그의 파격적인 행보는 개별 전시 몇 개에 그치지 않는다. 평화미술이나 수묵화와 같은 주제/장르 중심의 굵직한 의제를 견인한 행보는 한국미술계의 가치와 방향을 가늠하는 묵직한 것이다. 인천아트플랫폼 디렉터 시절엔 남북간의 교전이 벌어진 백령도에서 ‘평화미술프로젝트’를 열어, 황해도 장산곶 맞은편의 (구)백령병원을 평화와 치유의 공간으로 만들고자 했다. 인천 시정부가 여야를 뒤바뀔 때마다 흥망성쇠를 거듭했지만, 인천이 평화미술의 주요 거점이라는 점은 확고부동하다. 위험과 기회가 공존하는 길을 걸었던 이승미는 한국 현대미술사에 평화미술이라는 분수령을 만들었다.

그는 행정과 학예, 민과 관 사이를 분주히 오가며 동북아시아 수묵 패러다임의 새 길을 개척했다. 전남에 자리 잡은 그는 남도문예르네상스정책의 하나로 2016년 이래 꾸준히 추진된 수묵화 전시를 키워왔다. 2016년 영호남교류전, 2017년 프레비엔날레를 거쳐 2018년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가 공식출범했고, 올해 두 번째 수묵비엔날레가 열린다. 일본의 일본화, 중국의 국화에 비해 한국 전통회화인 한국화는 오랫동안 식민주의 개념 틀에 묶여 있었다. 전남의 ‘수묵화’ 프로젝트는 한·중·일의 먹과 종이, 모필 기반의 회화를 묶는 보편명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제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는 동북아시아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고유성과 독창성을 확립한 문화 브랜드이다.

해남에서 지내온 지난 10년 동안 그는 120여 회의 전시를 열고 국내외 작가 70여 명의 레지던시를 진행하며 로컬의 힘을 길러왔다. 한반도의 남쪽 끝 해남에서 지역성을 기반으로 전국과 세계와 교류해왔다. 행촌문화재단 김재현 박사의 컬렉션 정리 또한 큰 숙제다. 작가의 작업세계를 갈무리하는 아카이브와 출판은 행촌문화재단의 전시와 레지던시를 진행하면서 쌓은 인연을 이어가는 연구 사업이다. 20여 명의 작가 도록 출판을 통해 그는 역사를 서술해가는 현장의 큐레이터로서 나날이 진화해나가고 있다. 임하도에서 작업을 이어가는 예술가와 함께 창작 현장을 지키는 일은 큐레이터 이승미를 영구 현장 큐레이터로서 살아나가게 하는 저변의 힘이다. 해남에서 수묵과 지역의 이름으로 예술의 길을 걷는 그의 삶은 궁극적으로 평화의 길 그 자체다.



- 이승미(1961- ) 덕성여대 대학원 미술학과 석사 졸업, 명지대 미술사학과 박사수료. 제비울미술관 학예연구실장, 북촌미술관 부관장, 국립현대미술관 교육팀장, 인천아트플랫폼 관장, 신안군 예술감독,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추진자문위원 및 운영위원, 프레비엔날레 수석큐레이터 등 역임. 2004 한국박관협회 표창, 2018 전남도지사 표창, 2020 문체부장관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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