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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국립박물관의 현대미술전 개최

윤범모

담장이 너무 높다. 경계선이 강철 같다. 통섭의 시대라 하는데 일방통행 위주이다. 이는 한국미술사학계의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장르와 시대 구분의 확고한 선 긋기. 정말 통섭과 거리가 멀다.

예컨대 한국미술사 관련 통사(通史)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조선왕조의 국망이 미술사 기술의 하한연대를 이룬다. 그러니까 19세기와 20세기는 서로 등을 돌리게 하지 합석시키지 않는다. 이렇듯 미술사 책에서 근현대 시기를 누락시키는 관행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 점 박물관에 가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우리 국립박물관은 한결같이 20세기 미술을 외면하고 있다. 그러니까 박물관에서 현역작가를 대상으로 한 미술전은 상상 밖의 일이다. 뉴욕 메트로폴리탄뮤지엄의 경우처럼 고대미술부터 현대미술까지 시대의 벽을 깬 전시는 기대할 수 없는 구조이다.

국립경주박물관은 ‘이변’을 만들었다. 천년왕국 신라. 즉 전통의 하중에 눌려 보수적 특징을 보이고 있는 경주라는 도시, 거기서 시대의 장벽을 깬 것이다. 특별전 ‘신라를 다시 본다’(3월 3일까지)의 경우를 일컫는다. 이 전시는 신라문화를 작가 나름대로 해석하여, 또 작가 나름의 개성에 맞게 작업한 성과물을 모은 것이다. 박대성, 정종미, 임옥상, 이흥재, 이이남, 김승영. 이들 참여작가는 수묵화, 채색화, 사진, 미디어 아트, 설치미술 등 다양한 장르를 통하여 신라를 재해석했다.





‘신라를 다시 본다’ 전시 전경, 국립경주박물관


수묵으로 일군 노송(老松)과 다보탑, 진혼(鎭魂)의식으로 모셔 온 선덕여왕, 전 세계로 울려 퍼지면서 갖가지의 상처를 보듬어주는 성덕대왕신종의 종소리, 바로 신라를 울리고, 세계를 울리는 종소리이다. 코르텐 강철의 불두(佛頭) 형상에 금강경 구절을 새긴 대형 입체작품, 신라 왕릉의 푸르른 밤 풍경, 디지털 영상으로 표현된 신라천년의 문화재 즉 천년의 빛, 무너진 벽돌 위의 반가사유상. 다양한 주제와 표현형식의 특별전이다.

정말 신라를 다시 본 현대미술전이라 할 수 있다. 국립박물관에서 현역작가의 특별전을 개최하다니! 이는 놀라운 ‘사태’가 아닐 수 없다. 유병하 전임관장의 결단이 커다란 역할을 했고 자문위원으로 김영순, 조은정 그리고 필자 등이 참여했다. 이 전시는 국립박물관 역사에서 초유의 현대미술전으로 기록할 수 있을 듯하다. 거보(巨步)를 위한 첫걸음. 이런 정신은 지속적으로 이어졌으면 좋겠고, 전국 단위면 더욱 좋겠다.

태양 아래 새것 없다고 했다. 동북아시아의 관례는 기존 학설을 비판할 때‘주석(註釋)’의 형식을 활용했다. 비판이나 이의 제기할 때 칼날 대신 겸손한 자세를 선택한 것이다. 그래서 법고창신(法古創新)이란 표현을 좋아했다. 옛것을 거울삼아 새것을 만들려는 정신, 훌륭한 일이다. 김수영의 시구절처럼,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것이라도 좋다고 했다. 문제는 전통의 현대적 계승이다. 그것도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사관(史觀)에 따라 역사기술이 달라지듯 역사는 늘 새로운 각도에서 해석된다. 어떤 시각에서 볼 것인가. 창작은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전통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전통과 현대의 만남. 이렇게 멋진 표현이 얼마나 더 있을까. ‘신라를 다시 본다’ 같은 전시가 서울의 국립중앙박물관에서도 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고대미술의 보고(寶庫)에서 현대미술전을 개최할 수 있는 포용력, 그만큼 우리 문화의 확장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국립박물관의 현대미술전! 결코 강 건너의 불빛만은 아니다. 통섭의 시대이다. 전통과 현대가 즐겁게 만나 제3의 창조로 연결될 수 있다면, 미술문화의 강국으로 가는 지름길 가운데 하나로 작용할 듯하다. 장르와 시대의 높은 장벽을 부수는 미술사학계 그리고 박물관 동네. 새해는 고정관념 타파의 단초를 이루는 해가 되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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