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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광주에서 본 조양규의 창고와 맨홀

윤범모

경남 진주 출생. 1948년 좌파 사상으로 일본 밀항. 재일 조선인 차별 속에서의 막노동 생활. 전후 일본 미술계의 공백기를 채웠다고 평가받는 화가. 도쿄에서 개인전 개최와 화집 발행. 1960년 10월, 북송선으로 평양 정착. 1960년대 후반 어느 날 밤 행방불명과 비참한 말로. 남북 분단의 상징적 예술가. 그의 이름은 조양규(1928-?)이다.

1980년대 후반 나는 도쿄 국립근대미술관에서 신기한 체험을 했다. 전시장에서 이색적인 유화 작품 한 점이 나의 눈을 강하게 자극했다. 리얼리즘 미술과 거리가 먼 일본풍토에서 정말 특이한 작품이었다. 작품 가까이 가서 명제표를 보니 제목은 <밀폐된 창고>(1957), 아니, 이게 뭐야? 작가 이름은 경악, 경악, 그 자체였다. 바로 조양규, 생소한 이름이었다. 조양규라면 한국식 이름, 하지만 명색이 현장 평론가라는 내가 모르는 이름, 참담했다. 그 길로 조양규 탐사의 발걸음은 분주해졌다. 재일 동포화가를 섭렵하다 미술평론가 하리우 이치로(針生一郞)와 연결되었다. 그는 조양규와 가까운 사이로, 나에게 조양규 화집을 건네주면서, 작가 관련 다양한 증언을 들려주었다. 정말 조양규는 일본 미술사의 공백기를 채운 화가였다. 국립 미술관의 상설전시장을 차지할만한 위상의 화가였다. 나는 조사한 내용을 바탕으로 국내에 조양규라는 화가의 존재를 소개했다(1989). 그리고 관련 원고를 포함한 첫 평론집 『미술과 함께, 사회와 함께』(1991)를 출판하면서, 표지화로 조양규의 <맨홀>시리즈를 선택했다. 어느새 조양규는 나의 가슴 깊숙이 파고 들어와 자리를 차지했나 보다.



조양규(曹良奎), 밀폐된 창고(密閉せる倉庫), 1957, Oil on canvas, 162×130


광주시립미술관 분관 하정웅미술관은 조양규 탄생 90주년 기념 ‘조양규, 시대의 응시_단절과 긴장’이라는 전시를 열고 있다(10.16-2019.1.20). 전시장의 대부분은 흑백 판넬로 대체했지만, 이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리라. 조양규의 유존작은 불과 10점 정도, 작가가 북송선을 탈 때 최소 37점의 작품이 있었지만, 현실은 참담할 따름이다. 이번 조양규 전시에서 <밀폐된 창고>를 비롯해 <맨홀 B>(일본 미야기현립미술관 소장), <31번 창고>(하정웅 컬렉션) 등 보석과 같은 걸작을 감상할 수 있다. 고맙고 고마운 일이다. 게다가 미술관은 부대행사로 세미나를 개최한 바, 이 자리에서 김영순 평론가는 조양규 예술세계를 치밀하게 분석하는 논고를 발표했고, 이미나 도쿄예술대학교수는 사카이 요시유키 사진자료에서 조양규 관련의 새로운 자료를 발굴하여 소개했다. 나는 조양규를 소개한 인연으로 연단에 올라 일본 미술계에서의 조양규의 위상에 대하여, 특히 마루키 이리 부부 화가와 도미야마 다에코 등과 비교하는 내용을 발표했다.

조양규 예술의 대표적 키워드는 ‘창고’와 ‘맨홀’이다. <창고> 연작(1955-58)은 자신의 일상생활 현장을 독자적 화풍으로 일구어낸 작품과 같다. 거대한 창고 앞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모습과 대비시켰기 때문이다. 창고는 뭔가 집적하여 두는 공간이다. 자본주의 체제의 상징적 공간, 그런 공간 앞에서 소외되어 있는 노동, 전달해 주는 상징적 메시지가 강렬하다. <맨홀> 연작(1958-60)은 도시 풍경의 한 단면이다. 아스팔트 도로 지하의 통로를 덮는 뚜껑, 그것의 원형 구도와 노동자의 모습이 묘한 대비를 이룬다. 그러니까 창고 연작의 수직과 직선의 구도와 맨홀 연작의 수평과 곡선 구도의 대비를 읽게 한다. 1950년대에 이와 같은 독자적 화풍의 유화 작업을 이룩했다니, 이는 놀라운 일이지 않을 수 없다. 그것도 핍박과 차별의 일본 사회에서, 남북 이데올로기 쟁투의 현장에서, 이룩해냈다니 그저 감탄사만 연발하게 한다.

“남북으로 분열하여, 남조선에 침략자의 자리가 계속되는 한 조선의 평화는 없다. 조선에 있어 평화획득의 투쟁이야말로 창작에 관련된 나의 표현자로서의 임무이며, 그때야말로 일본에서의 귀중한 체험이 내 속에서 강하게 움직일 것을 확신한다.” 조양규가 북송선을 타면서 남긴 말이다. 조양규. 분단시대의 상처를 온몸으로 부딪치면서 작업한 예술가. 광주에서 작가의 육성을 들을 기회가 왔으니, 남북 화해 시대에 그저 감읍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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