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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왜 우리는 비엔날레에 열광하는가

윤범모

2018 비엔날레 포스터


비엔날레 붐. 열풍을 넘어 태풍이라 해야 할까. 전국이 비엔날레로 어지러울 정도이다. 현재 비엔날레 간판을 내세우고 있는 도시만 해도, 서울, 광주, 부산, 대전, 대구, 창원, 목포 등 엄청나다. 언제부터 한국이 비엔날레를 열광하는 나라가 되었단 말인가. 도처에서 비엔날레 열풍이 불어 한반도 남단은 뜨겁다. 게다가 이들 비엔날레는 비슷한 시기에 개막하여 미술(애호)가들의 발걸음을 더욱 바쁘게 하고 있다. 우리는 왜 비엔날레에 열광하는가. 도대체 비엔날레가 무엇인데? 여기저기 흩어진 비엔날레 현장을 방문하면서, 나는 안복(眼福)에 안도하기도 했지만 실망감으로 어깨가 처지기도 했다. 도대체 비엔날레가 무엇이란 말인가.

1995년 광주는 2년에 한 번씩 여는 국제미술전을 추진했다. 그때 집행위원회 회의에서 행사 명칭에 대하여 논란이 있었다. 결국 비엔날레라는 용어를 채택했다. 그래서 광주비엔날레는 출범했고, 대한민국의 비엔날레 역사를 추동하는 모태가 되었다. 당시 나는 집행위원으로 비엔날레 창설 작업에 힘을 보탰다. 국제 세미나도 열었다. 행사장 객석의 청중은 갑작스럽게 시위군중으로 변해 비엔날레 반대 표지판을 들고 새로운 움직임에 대하여 항의했다. 외국의 저명인사들과 함께 발제자로 단상에 앉은 나는 이런 현장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제1회 광주비엔날레, 드디어 개막했다. 나는 특별전 큐레이터로 신축 비엔날레관의 한 공간을 전시장으로 만들었다. 입장객이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로 호응을 받고 있을 때, ‘안티 비엔날레’가 통일미술제라는 이름으로 망월동 묘역에서 개최되었다. 나는 망월동으로 달려가 항의의 현장을 주의 깊게 보았다. 그러면서 비엔날레 반대의 뜻을 충분히 이해하고자 했다. 망월동은 1,000여 개의 깃발로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항쟁의 도시 광주다웠다. 나는 속으로 안티 비엔날레의 지속을 빌었다. 그것은 광주다운 저항정신의 표상과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2회 비엔날레에서 ‘안티’는 볼 수 없었다. 정말 아쉬웠다. 이번에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광주비엔날레에서 참으로 오래간만에 망월동의 깃발을 다시 볼 수 있었다. 너무 반가웠다. 하지만 깃발들은 하나의 설치작품처럼 설치되어 있을 따름이었다. 아니, 죽은 이를 위한 무덤의 장식 같았다. 정말 만장(輓章)이었다. 비엔날레의 정신은 보이지 않고, 단순한 오브제, 현대미술의 설치작품 같았다. 훌륭한 미술작품, 하지만 광주비엔날레 정신은?

우리는 무엇 때문에 비엔날레를 여는가. 거금을 들이고, 외국 총감독을 모셔오고, 잘 알 수도 없는 외국 작가의 행진에 그저 침묵해야 하고, 아, 이런 게 현대미술, 그저 숨죽여야 하고, 정말 비엔날레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렇지 않아도 구미 일변도의 세태에 대하여 불편했고, 또 비판도 했지만, 구미 중심의 현대미술은 거의 하늘의 계시와 다를 바 없는 것 같았다. 한국 미술의 교과서는 ‘무조건’ 구미의 재판이다(?). 단순 복사, 비슷하게 닮으면 최고라는 의식 수준이다. 비엔날레의 현란한 치장에, 뭔가 있는 것 같은 화려한 목소리에, 냉가슴 앓듯 고개 숙이고 나오는 일, 언제까지 반복해야 좋단 말인가. 그들만의 잔치, 그들만의 게임, 과연 우리가 본받아야 할 진정한 미술이란 말인가. 현란한 장식은 현실을 호도하기 십상이다. 아니 경우에 따라 현장에 바탕을 둔 작업도 있다. 하지만 그 현장은 그들의 현장, 우리와 동행하기에는 너무 다른 환경이기 일쑤였다. 우리의 현실은 바로 여기에 있는데, 강 건너 등불에 춤출 필요까지 있을까. 물론 국제무대의 미술 생태계 혹은 현대미술의 특성 그 자체를 무시하자는 것은 아니다. 이제 우리의 옷을 입자는 주장이다. 그것도 자신감 있게. 대중과 공감할 수 있는 우리의 미술, 그런 비엔날레의 나라가 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비슷한 것은 가짜라는 말이 있다. 이왕 개최하는 비엔날레라 한다면 각각의 개성을 발휘하는, 그것도 박래품(舶來品)이 아닌 우리의 비엔날레를 하자는 말이다. 비엔날레 열풍. 과연 바람직한가. 나는 이 가을 비엔날레 현장을 방문하면서, 어깨가 가볍지 않아 우울했다. 비엔날레 숫자가 중요한 것 아니다. 우리 미술의 정체성을 살리는 비엔날레를 중심에 두자는 고언(苦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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