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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중국의 항일정신과 일본의 무표정

윤범모

하얼빈 ‘침화일군 731부대죄증진열관’


9월 3일, 중국은 북경 천안문 광장에서 거대한 군사 퍼레이드를 열었다. 바로 항일전쟁 및 세계 반 파시스트 전쟁 승리 70주년 기념식이었다. 항일전쟁 승리의 날, 우리는 8월 15일을 광복절이라 하여 기념한다. 1945년 8월 15일, 일왕 히로히토는 항복선언을 했다. 하지만 전승국과 패전국 사이의 공식 문건 체결은 9월 3일 도쿄의 미주리함 선상에서였다. 승전 70주년의 날, 미국은 그냥 넘겼지만, 중국은 그러지 않았다. 중국은 대외적으로 ‘중국 굴기’의 힘을 과시했다. 군사대국 중국은 미국이나 일본에 불편한 심기를 안겨주었다. 그렇다고 ‘가해자’ 일본의 반성은 볼 수 없었다. 겉으로는 무표정을 보였다.
사실 중국은 ‘식민지 조선’에 비하면 일본 지배를 받았던 기간은 짧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항일정신을 고취하는 전시관이 많다. 역사적 현장은 으레 거대한 규모의 박물관이 되어 ‘과거’를 직시하게 했다. 만주지역을 여행하다 보면 항일 관련 기념물이 많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은 민족의식을 적극적으로 체험케 하는 학습의 현장이기도 하다. 뤼순일아감옥구지박물관(旅順日俄監獄舊址博物館)은 일본의 잔악상을 실감하게한다. 일제 말 안중근, 신채호, 이회영 같은 항일투사 700여 명이 투옥되었거나 순국한 현장이다. 안중근 의사의 독방은 별도로 특화해 관리하고 있다. 근래 하얼빈 기차역 구내에 안중근의사기념관을 개관한 바 있다. 더불어 하얼빈 시내에 중국 군가를 작곡한 정율성기념관도 있다. 중국의 외국인 공식 기념관은 안중근과 정율성 등 극소수에 불과하다. 승전 70주년을 맞이하여 하얼빈의 731부대 기념관은 새롭게 면모를 일신하여 거대한 박물관으로 태어났다. 일제의 731부대는 세균전쟁 준비 등 악랄한 인체 실험을 자행하면서 침략자의 민얼굴을 보였다. 부대 현장에 중국은 거대한 박물관을 신축한바, 그 이름부터 강렬하다. 침화일군 제731부대죄증진열관(侵華日軍第七三一部隊罪証陳列館), 범죄의 증거 곧 죄증 진열관이라, 거대한 박물관의 명칭치고는 너무 이색적이다. 바로 중국의 항일정신을 엿보게 하는 2015년 8월의 현장이다.
심양의 9.18역사박물관은 인상적인 곳이다. 1931년 9월 18일, 일제는 만철(滿鐵) 폭파사건을 조작하여 만주 침략의 구실로 삼았다. 바로 만주사변을 일컫는 것이다. ‘잊지 말자, 9.18’. 거대한 규모의 박물관은 항일정신의 실체를 확인시켜 준다. 그런데 박물관을 돌다 보면 눈길을 끄는 부분이 있다. 미술가의 관련 작품이다. 특히 기념조형물은 리얼리즘에 입각한 상상력과 역사의식의 걸작으로 꼽게 한다. 9.18박물관의 외벽을 장식하고 있는 거대한 조형물은 중국미술의 실력을 실감하게 한다. 한국에서는 보기 어려운 항일정신의 현장 그리고 미술작품들, 만주지역 여행은 우리에게 여러모로 반성을 촉구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는 어떤가. 몇몇 미술관은 종전 70주년을 맞아 전쟁 관련 특별전을 개최했다. 예컨대 나고야(名古屋)시립미술관의 ‘화가들과 전쟁’ 같은 것이 그것이다. 이들 전시는 전쟁기의 화가들이 제작한 작품의 단순 ‘진열’에 불과하다. 반전(反戰)이나 평화의식은커녕 침략자로서 반성의 제스쳐도 보기 어렵다. 전쟁기록화는 ‘우리 편 이겨라’라는 침략의 소도구에 불과하다. 올해 일본의 미술관 6곳에서는 ‘한일 근대미술가들의 눈:조선에서 그리다’라는 특별전을 순회하고 있다. 도록의 주최자 글에 의하면, “20세기 초중반을 살았던 한국과 일본의 미술가가 식민지 ‘조선’이라는 공간을 어떻게 체험했고 무엇을 표현했는지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동북아시아 근대미술의 복잡한 양상에 주목한 전시”라 했다.
특이한 것은 이 전시기획의 책임자가 없다는 것이다. 한국인 감수자를 전면에 내세우고 기획 책임은 뒤로 숨고, 참여 미술관만 나열한 셈이다. 이 전시는 종전 70년을 기념한 것이 아니라 ‘한일 수교 50주년’을 기념한 것이다. 수교 기념이면서, 왜 식민지 시대 일본화가들이 조선을 그린 작품들을 한 자리에 모았을까. 수교 이후의 한일 미술 관련 주제가 아니어서 기획의도부터 의심스럽게 했다. 이번 전시는 일본의 반성까지는 기대하지 않는다 해도 최소 역사의식의 토대 아래 추진되었어야 할 기획이었다. 역사의식 부재의 일본 참고자료 나열전시에 한국의 상당수 근대미술 전공자들이 들러리 선 것은 불편하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중국과 일본의 태도, 그 사이에서 아무런 개념조차 마련하지 않는 한국, 답답한 광복 70주년의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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