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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불편하게 보낸 광복 70년의 미술계

윤범모

이쾌대, 군상4, 1948추정, 캔버스에 유채, 177×216cm, 개인소장


광복 70년, 이 여름을 뜨겁게 한 말, 광복 70년. 광복이라, 그렇다면 다시 빛을 찾았다는 뜻인데 진정 빛을 찾았는가. 위안부 문제 등 ‘가해자 일본’은 반성할 줄 모르고 계속 뻗대고 있는데, 피해자는 구걸하듯 일본의 반성을 촉구하고 있다. 고약한 세상이다. 그래서 아직 광복은 진행형인지 모른다. 광복 70년, 이 말과 함께 간과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분단 70년이다. 광복과 함께 온 분단, 그래서 광복은 아직 진정한 광복이 아니다. 우리 손으로 얻은 광복이 아닌 원죄 때문에 분단이라는 멍에를 지고 있다. 참으로 불행한 시대요, 민족이지 않은가.
고희(古稀)의 나이를 상기하고자 도처에서 광복 70년 기념행사를 개최했다. 외형적으로 거창한 행사도 없지 않았지만, 그만큼 내실이 있었는가 헤아리게도 했다. 한마디로 불편한 광복 70년의 여름이었다. 8월의 미술계를 장식한 기념전도 여러 군데에서 열렸다. 그 가운데 서울 한복판에서 열린 미술전을 살펴보자. 서울시립미술관은 ‘북한프로젝트’(7.21-9.29)라는 이름 아래 이색적인 전시를 마련했다. 서울시에서 북한미술전을 개최한다고! ‘햇볕정책’ 이후 최악의 남북 대치 상황에서 북한미술을 조명하겠다니 정말 기대 수치가 높지 않을 수 없다. 전시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뉘어, 북한 작가들의 창작품, 외국 사진작가들의 북한 풍경 사진, 그리고 남한 작가들의 북한 주제 작품으로 엮여졌다. 다소 안일한 구분이라는 인상도 없지 않다. 무엇보다 북한미술을 보여주겠다면서 외국의 개인 소장품을 체계적 검토 없이 직송했다는 점은 전문성이나 대표성은 커녕 북한미술의 실체를 충실히 반영하려 했는지 의구심조차 들게한다. 북한 작가의 전시는 유화, 포스터, 우표의 세 부분으로 나뉘었는데, 북한미술을 대표하는 ‘조선화’ 분야의 완전 누락은 어떤 변명도 통하기 어려울 것 같다. 미술관에서 우표 전시는 하면서, 본격 그림 전시는 외면했다고? 게다가 유화 부분의 역사적 체계 없는 진열은 전시의 품격과 연결되게 했다. 과연 북한미술의 실체를 충실히 담으려한 전시기획인가. 북한미술에 대하여 오도(誤導)시킬 가능성은 없었는지, 원초적 질문을 던지게 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광복70년 기념 한국근대미술 소장품전’(7.22-11.1)을 마련했다. ‘졸속’이라는 언론의 비판도 없지 않았지만, ‘소장품’ 전시라는 안일한 접근이 아쉽게 했다. 작품 발굴 등 기획력이 돋보이는 기념전이 그립기 때문이다. 8월의 대표전시로 ‘거장 이쾌대: 해방의 대서사’(7.22-11.1 덕수궁미술관)를 들고 싶다. 무엇보다 이 전시는 비교적 오랜 기간 동안 공력을 들여 전문가 자문의 충실한 반영, 최대한 이끌어 낸 유족 등 소장가의 협력, 관련 자료의 풍성한 동원에 의한 아카이브, 외부 전문 출판사에서 단행본 형식으로 출판한 도록, 그러면서도 우리 시대의 담론을 풍성하게 제공했다는 점을 주목하게 했다. 이쾌대는 누구인가. 남한에서는 월북화가라 하여 금기 작가였고, 북한에서는 주체사상의 손을 들어주지 않아 역시 금기 작가였다. 20세기 허리부분에서 가장 탁월한 화가였음에도 불구하고 분단 조국은 ‘거장 이쾌대’를 암흑 속으로 밀어 넣었던 것이다. 실로 안타깝고, 안타까운 일이었다. 이쾌대야말로 분단시대의 상징적 작가가 아니었던가.
세월은 흘렀고, 시대상황도 바뀌었다. 이쾌대는 남한에서 해금작가 명단에 올랐고, 북한에서도 비록 사후이기는 하나 복권되어 미술가 사전에 등재될 수 있었다. ‘빨갱이 집안’이라는 낙인 아래 온갖 고초를 견뎌내면서 미망인은 남편의 작품을 목숨처럼 간직했다. 88년 해금 이후의 첫 이쾌대 전시 ‘월북작가 이쾌대전’(1991, 신세계미술관)은 미술계를 경악, 그 자체로 몰아넣었다. 어쩌면 20세기 근대미술 발굴 역사에서 단연 절정에 오를 사건이지 않았는가 여겨진다. 이쾌대의 작품과 그의 화단 활동을 통해 우리의 미술 역사가 더욱 풍성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형식적으로는 인체 소묘 등 사실주의 기법을 들 수 있지만, 내용적으로는 민족과 현실을 아우르는 담론, 즉 시대 상황이라는 키워드를 제공했음이다. 담론 부재의 우리 미술계에서 이쾌대처럼 거대 담론을 제공한 작가가 또 어디에 있는가. 해방기의 걸작 <군상>연작이나 신미술가협회 활동만을 두고 평가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쾌대는 식민지와 분단시대를 온몸으로 겪어내면서, 민족과 현실을 작품세계에 담은 미술가였기 때문이다. 광복 70년을 앞장세운 허울 좋은 기념행사들, 그 허접스런 행사들 가운데 이쾌대 전시는 단연 주목을 끌었다. 이 전시는 싱싱한 거대 담론을 제공하면서, ‘해방의 대서사’를 생각하게 했기 때문이다. 해방 다음의 키워드는 무엇일까. 분단 극복이 아닌가. 그러니까 분단 극복시대에 이쾌대는 많은 시사점을 안겨 주었다. 하여 이번 이쾌대 전시는 불편하게 넘어가던 광복 70년을 새롭게 반추시킨 기념행사였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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