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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교토국제현대예술제의 교훈

윤범모

차이 구오 창, 쿄토 다빈치 2015, 교토국제현대예술제 출품작


교토(京都)의 봄날은 꽃 바다의 도시이다. 벚꽃 천국. 벚꽃 종류도 많지만, 그 가운데 수양버들처럼 늘어진 가지의 ‘수양 벚꽃’은 나그네의 발길을 오랫동안 묶어둔다.(벚꽃의 원산지는 한라산이라는 학설도 있다.) 교토는 계절마다 색깔을 달리하면서 고도(古都)의 정취를 만끽하게 한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사찰과 문화재만 해도 17개에 이를 정도로 관광도시로서의 명성 또한 드높다. ‘옛것의 천국’ 교토, 그 교토가 근래 ‘새것’을 끌어안으면서 도시의 면모를 풍성하게 시도하고 있다. 정말 그렇다. 새것이 있어야 옛것이 더 빛난다. 세상의 원리는 상대적이다. 지옥이 없다면 어디에 천국이 있을까. 음지가 있기 때문에 양지가 돋보이는 것이다. 옛것이 더욱 빛나려면 새것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 법고창신(法古創新) 아닌가.
교토가 새롭게 추가한 문화예술 행사, 바로 ‘교토국제현대예술제’이다. 올해 첫 선을 보이면서 축제 이름을 여성스럽게 ‘Parasophia’라고 지었다. 문화유산의 보고(寶庫)라는 도시에서 ‘문화의 자유 교역도시’임을 천명하고, 교토의 면모를 새롭게 했다. 하기야 교토는 그동안 현대미술을 위해 다양한 문화사업을 펼쳐 온 바 있다. 이와 같은 경험의 축적이 예술제로 연결되었다. 이번 예술제의 특징은 무엇보다 민간이 주도하여 성사시킨 행사라는 점이다. 교토경제동우회라는 단체가 행사를 제안했고, 그 단체장이 예술제 조직위원회의 회장을 맡았다. 권력의 상층부인 지사와 시장은 부회장으로 내려앉았다. 한국 같으면 상상할 수 없는 구조이다. 물론 경제인들이 먼저 나서서 예술행사를 제안할 리도 없지만, 관료들이 뒷전을 차지한 것도 이색적이다. 오늘의 한국을 생각해 보자. 각종 문화예술 행사에 참석해 보면 ‘감투들’은 으레 상석에 앉고, 또 그들 중심으로 행사를 진행한다. 비록 미술행사일지언정 미술가는 들러리 정도로 푸대접받기 십상이다. 축사를 위해 단상에 오르는 ‘감투와 작가의 비례’를 보면 실감 날 것이다. 
2년 전부터 준비한 이번 예술제는 40명(팀 포함)의 미술가가 초청되었다. 물론 비중 있는 국제적 작가 가운데 엄선했다. 이들 참여작가는 전시 준비과정에서 교토 체험의 기회를 얻었다. 주최 측은 참여작가로부터 출품작만 수동적으로 받아 진열하지 않았다. 사전에 작가들을 교토로 초청했고, 작가들은 교토 체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작품을 제작했다. 비엔날레 홍수시대에 상투적인 관습을 깬 것이 흥미롭다. 그래서 형식적으로 내세우는 주제나 표현경향 같은 것은 없다. 이는 전시 맥락에서 다소 일탈 현상을 보일 수 있으나, 현대미술의 자유분방함을 내세울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교토시미술관의 중심부를 차지하고 있는 작품은 중국 출신 차이 구오 창(蔡國强)의 신작 <교토 다빈치>이다. 이 작품은 당나라의 수도였던 장안(長安, 현재 西安)에 있는 대안탑(大雁塔)의 모습을 염두에 두고 대나무로 쌓아올린 7층 죽탑(竹塔)이다. 탑 주위에는 농민 발명가가 일상생활의 폐자재를 이용하여 만든 로보트 같은 것들이 작동하고 있다. 잭슨 폴록이나 이브 클라인의 작업을 풍자한 것, 흥미롭다.
차이(Cai)는 지난 1994년 교토 건도(建都) 1,200주년 기념 프로젝트를 맡은 바 있다. 당시 그는 화약을 이용한 특유의 발화(發火) 작업을 선보였다. 그리고 서봉주(西鳳酒)라는 중국 술 1,200kg을 교토로 운반한 다음 구덩이에 넣어 불을 질러, 교토를 알콜 향기로 덮은 바 있다. 20년 뒤 차이는 이번 예술제를 위해 대나무 탑을 쌓았다. 물론 교토는 장안의 도시계획을 받아들인 도시여서 두 도시의 친연성을 바탕에 둔 작업이다. 특히 주목을 요하는 부분은 무명농민 발명가의 발명품을 ‘발견’하고, 이를 전시장 안으로 끌어온 것이다. 그래서 나신의 여체는 바닥에서 신체예술을 실연하고 있다. ‘농민 다빈치’는 <교토 다빈치>가 되어 예술제의 중심을 빛내주었다. 교토국제현대예술제, 옛것은 새것에 의해 더욱 빛난다는 사실을 각인시켜 주었다. 그렇다면, 한국의 천년 고도인 경주는 무엇을 했는가. 현대미술의 불모지 경주, 너무 답답하지 않은가. 새로운 예술이 없는 경주, 그곳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다고 무슨 재미가 있을까. 불쌍한 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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