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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씁쓸하게 한 ‘달콤한 이슬’

윤범모

홍성담, <세월오월>, 부분, ⓒphoto: 김달진


광주비엔날레 특별전 ‘달콤한 이슬, 1980 그 후’가 여름을 강타했다. 비엔날레 창립 20주년을 기념하여 ‘특별히’ 준비한 특별프로젝트, 강좌와 퍼포먼스 시리즈의 하나로 마련된 전시였다. 하지만 8월 8일의 개막식은 무산되었다. 개막행사의 꽃이기도 했던 걸개그림 <세월오월>의 ‘전시 유보’ 결정에 따라 행사가 파행을 맞은 까닭이었다. 정말 난감한 일이었다. 왜 이 같은 불상사가 일어났던가. 전시의 총책임자였던 나의 감회를 여기에 적고자 한다.

이번 ‘달콤한 이슬’은 광주정신의 예술적 승화라는 야심찬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5월정신을 단순히 연대기적으로 기록하는 일은 삼가자고 했다. 그래서 ‘1980 그 후’라는 부제를 달았다. 5.18정신은 국가폭력에 따른 저항정신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전시는 국가폭력에 따른 기억과 예술적 증언 그리고 치유의 개념을 비중 있게 했다. 그래서 4.3항쟁을 겪은 제주를 주목했고, 같은 맥락에서 ‘미군기지’ 오키나와를 주목했다. 더불어 국내외의 저항미술로부터 시대정신을 담은 작품을 주목했다. 나치시절 저항미술가로 유명했던 케테 콜비츠의 판화 40여 점을 특별히 진열한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였다. 1930년대 중국에서 노신의 주도로 전개되었던 항일 목판화 운동의 원품을 베이징 노신박물관에서 직접 공수해 온 것도 마찬가지의 이유였다. 그렇다고 이번 전시가 명가들의 명품만 모은 것은 아니다. 나눔의 집 일본군 성노예 생활을 했던 할머니들의 ‘피눈물 나는’ 그림 17점도 진열했다. 현대미술전에 이렇듯 미술가가 아닌 ‘할머니들’의 육성을 직접 모셔 온 것은 파격, 그 자체였다. 물론 통도사성보박물관 소장 <감로도>가 첫 번째 방을 차지한 것도 그렇다.

<세월오월>은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1980년 5월 이후 오늘날까지의 우리 사회의 주요 장면을 활용한 작품이었다. 80년대 전국적으로 유행했던 걸개그림의 재현작업이었다. 광주의 상징적 화가 홍성담이 주필을 맡았고 시각매체연구회와 시민들이 동참했다. 병풍식으로 제작한 이번 대작의 대형 복제본은 미술관 외벽을 장식할 예정이었다. 20분의 1이나 될까, ‘허수아비’라는 한 부분 때문에 작품의 본질은 외면당하고 정치적 회오리바람에 휩싸이게 되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었다. 현직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표현한 것이 문제의 핵이었다. 뒤에 작가는 허수아비 대신 닭으로 수정하여 작품을 완성했다. 한때 이런 말이 유행한 적 있다.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도 새벽을 거부하는 세력이 활보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가 이 점을 재인식시키기도 했다. 이번 걸개그림은 이 점을 방기하지 않았다. 풍자기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했다. 하지만 광주시의 과도한 개입은 결국 걸개그림의 전시를 막았다.

전시총괄책임자였던 나는 <세월오월> 전시 파행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책임큐레이터 직을 사퇴했다. 그와 같은 전시장에 자신의 작품이 걸려 있는 것은 치욕이라면서 몇몇 작가들은 자진 철거했다. 더불어 참여작가 일동은 기획자의 원안을 존중하지 않으면 작품을 철수하겠다는 의견을 냈다. <세월오월> 파동은 일파만파 번져나갔다. 민주 인권의 도시인 광주의 명예와 광주비엔날레의 명예에 먹칠하는 사건이 되었다. 이와 같은 일은 왜 생겼을까. 관권의 과도한 개입, 바로 이것이다.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관권 개입인가. 그것도 광주에서, 광주비엔날레에서. 예술 표현의 자유와 광주정신은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가만히 있으라. 그래서 세월호 참사는 더욱 커졌다. 이번에도 관권은 예술을 향하여 가만히 있으라, 이렇게 명령했다. 그것도 광주시에서.

달콤한 이슬, 하지만 이번 광주에서 뿌려진 이슬은 씁쓸한 이슬이었다. 조선후기에 유행했던 감로도(甘露圖)에서 빌려온 개념 ‘ 감로’는 정말 상처받았다. 상처를 딛고 치유와 희망의 미래를 꿈꾸었던 전시기획은 누더기가 되었다. 우리 사회는 언제까지 달콤한 이슬을 필요로 해야 할까. 2014년 8월, 이슬 대신 눈물을 흘리게 했던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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