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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엉터리 미술용어의 나라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은 ‘한국현대미술작가 시리즈’ 전시를 개최하고 있다. 한마디로 한국의 주요 원로작가 회고전이다. 장르를 안배하여 20여 명의 작가를 선정했고, 이들 작가는 앞으로 3년 동안 전시를 개최하게 된다. 향후 작가명단을 추가 선정하여 전시사업은 계속될 예정이다. 나는 작가선정 위원장으로 회의를 주재한 바 있다. 회의에서 나는 미술용어에 따른 문제 제기부터 해야 했다. 미술 장르에 따른 명칭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아직도 ‘한국화(혹은 동양화)’와 ‘회화’인가.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장르 구분명칭은 ‘한국화’ ‘회화’ ‘조각’ 등 10개 분야로 나누어져 있다. 조소(彫塑)라는 좋은 용어를 제쳐 놓고 조각이라고 쓰는 것도 문제이지만, 한국화와 회화를 동급의 개념으로 취급하고 있다는 점은 이해할 수 없었다. 회화라는 대개념과 한국화라는 소개념을 동급에 두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다. 여기서 회화는 이른바 ‘서양화’를 일컫는다. 그러니까 ‘서양화’라는 분야가 ‘회화’의 대표성을 띄는 용어로 자리매김 되었음을 국가가 공증하고 있는 셈이다.

원로작가 선정회의에서 나는 ‘한국화’와 ‘회화’라는 용어의 모순을 지적하고 이들 용어의 조정을 시도했다. 결과적으로 이 둘을 통합하여 ‘회화’라는 용어로 묶었다. 토탈 아트 시대에 걸맞은 명칭이었다. 하지만 작품 구입심의 회의에 들어가 보니 소장품 장르구분 체계는 아직도 ‘한국화’와 ‘회화’로 나누어져 있었다. 문제는 지방의 미술관들도 국립현대미술관 체제를 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시립미술관도 예외는 아니다. 물론 위와 같은 모순을 나는 지역의 공립 미술관 작품 구입심의 회의에 참석하면서 확인한 바 있다. 정말 한심한 일이지 않을 수 없다. 미술용어의 재정비가 시급하다. 명칭은 내용을 입증한다. 개념의 혼란은 미술계의 혼란과 맞물린다. 체계도 논리도 없는 미술계, 언제까지 방관만 할 것인가. 오래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근대미술 특별전을 연례행사로 진행할 때, 전문적으로 검토하여 명칭 통일을 시도했으나 당시의 전문적 검토를 외면하고 있는 오늘의 미술관, 안타깝다.

동양화 여섯 분 전람회, 1971


미술이란 용어는 19세기 말에 일본이 번역한 용어이다. 동양화란 용어는 일제 식민지의 산물이다. 1922년 조선총독부는 조선미전을 창설하면서 전통회화 분야를 ‘조선화’ 대신 ‘동양화’라 공식화했다. 중국의 ‘중국화’ 혹은 일본의 ‘일본화’라는 용어를 생각하면 ‘동양화’는 족보에도 없는 용어이다. 그렇다고 ‘서양화’라는 것도 좋은 용어는 아니다. 서양화는 글자 그대로 ‘서양의 그림’이다. 서양화가는 서양인 화가를 일컫는다. 서양화(Western Painting)는 서양에서도 사용하지 않는 용어이다. 굳이 장르구분이 필요하다면 매체에 따라 유화라고 하면 된다. 동양화 혹은 한국화는 채묵화라고 부르면 대안이 될 것이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아직도 동양화/서양화인가.

서울대 미술대의 학과 명칭이 아직도 ‘동양화과’ ‘서양화과’인 것에 대하여 나는 이해할 수 없다. 아니 이는 홍익대의 경우보다 나은 편인가. 홍익대 미술대의 학과명은 ‘동양화과’와 ‘회화과’로 나뉘어 있다. 회화라는 대개념과 동양화라는 소개념을 동급으로 취급하는 논리적 모순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성의 전당이라는 대학의 학과 명칭, 과연 적합한가.


체계화된 미술용어 정립이 시급하다

전통회화의 위기시대이다. 화랑가는 물론 미술시장에서 전통미술은 ‘찬밥’이 된 지 오래다. 수묵화의 위기, 이는 새삼스런 강조조차 불필요로 하게 한다. 조선시대 말기 명가의 작품가격이 신인 작가의 작품 가격보다 낮게 취급되기도 한다. 오늘날 미술대에서 정통 수묵화/채색화 작업을 하는 학생은 희귀종에 속한다. 하기야 ‘동양화과’라고 명명된 학과에서 무엇을 배우겠는가. 시대정신의 결여, 이는 미술시장에서의 도태를 자초하는 것과 다름이 아니다. 식민지 용어이건 아니건, 최소한의 논리적 모순만큼은 피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니까 도표를 그렸을 때, 상하 구별은 할 수 있어야 계통이 선다. 정말 이는 체통의 문제이다. 상하 구별의 혼란을 더 이상 방관하지 말자. 회화라는 개념 아래의 동양화/서양화는 논리적 모순을 최소한 모면할 수 있다. 언제까지 ‘동양화(한국화)와 회화’라는 장르 구분법을 용인할 것인가.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한 전국의 미술관들, 그리고 미술대학들, 옷깃을 여미고 스스로의 얼굴을 들여다보자. 과연 우리 미술계는 체계가 있는가. 정당한 이름을 갖고 있는가. 작명법, 얼마나 중요한가. 이름을 제대로 짓지 못하면 패가망신한다고 했다. 언제까지 엉터리 이름으로 우리 미술계를 혼란 속에서 헤매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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