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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월 광주, 세월호 참사 그리고 트라우마

윤범모

나는 지금 제정신이 아니다. 정말 미칠 것만 같다. 세월호 때문이다. 가만히 있으라. 어른들은 순종만 요구했다. 상식에서 벗어난다면 이의제기하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아니, 불의에 저항하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착한 학생들, 어른들 말만 믿고 있다가 결국 그들은 모두 바닷속에 수장되었다. 세월호가 침몰하고 있는데, 3백 명 가량의 꽃다운 목숨이 희생되고 있는데, 대한민국 그 어느 누구도 단 한 명의 목숨을 건져내지 못했다. 세월호는 악마의 다른 이름이었다. 구원은 무슨 구원? 거기에 바다 관련 업체와 공직자들의 무능과 비리가 숨어 있었다. 아비규환의 배가 침몰할 때, 그런 장면을 직접 목도하면서 아무런 조치도 취할 수 없었던 희생자의 부모들, 가슴에 대못 박히는 일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대한민국은 우울증 환자의 제조공장과 같다. 트라우마,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트라우마, 오늘 이 땅의 모든 이들에게 안긴 병명이다. 물론 예외는 있을 것이다. 상층부의 권력자들과 황금의 노예들.





아트선재센터에서 이색적인 전시를 개최했다. ‘기억의 회복 : 오월 광주 치유사진’. 이 전시는 5.18기념재단과 광주 트라우마센터가 공동주관했다. 치유, 그것도 사진으로? 한마디로 이 전시는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으로 참여했던 5.18 유공자들의 사진을 모은 것이다. 5월의 고통, 그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에서 카메라를 활용한 성과물이다. ‘가슴 아픈 상처를 공유하고 보듬어보고자’ 마련된 전시였다. 상처가 크면 클수록 그것과 상응하는 용기 또한 더욱 커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필요한 준비물은 다름이 아니라 상처 앞에서 당당히 서고자 하는 용기라고 주최 측은 설명한다. 상처와 치유, 여기에 용기가 필요하다.

‘기억의 회복’ 전시는 흘러간 그 날의 아픔을 사진으로 보여주기보다 잃어가고 있는 존엄한 삶의 가치를 피해 당사자들에 의해 마련한 것이라고 임종진 사진치유 프로그램 진행자는 강조했다. 치유의 도구로써 선택된 사진 행위, 여기에는 대상과의 상호관계가 요구된다. 그러니까 현장, 그 현장에서의 작업이 하나의 요건이 된다. 하여 이번 전시에 출품한 ‘희생자들’ 9명은 자신이 직접 경험했던 5월 현장을 카메라에 담았다. 전남도청을 촬영한 한 작가는 이런 말을 했다. “함께 하는 동지들을 재촉한다. 우리가 있었던 그 자리 전남도청이다. 80년 5월 무수히 쏟아 붓던 총탄에 만신창이가 되던 그 통곡의 벽 앞에 서서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 탄흔의 흔적을 또 찾아본다. 그러나 겨우 한두 개 자국만 간신히 찾아냈다.” 그 고통의 현장을 작가는 사진에 담았다. 기억을 회복하고 치유로 가는 과정의 ‘미술 행위’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랬는가. 강용주 광주 트라우마센터 대표는 말한다. “상처를 마주하며 자신의 내면의 상처와 대면하는 힘이 생기고 세상을 향한 빛을 볼 수 있다.” 트라우마센터는 국가폭력의 희생자들을 상대로 하여 미술치유프로그램을 운영해 왔다. 그 같은 결과의 하나로「오월꽃 마음꽃이 피었습니다- 미술치유, 10주간의 기록」이라는 자료집도 출판했다. 흥미로운 결과물이다.

트라우마의 시절이다. 세월호는 사실 대한민국호의 다른 이름이었다. 팽목항은 광주의 동의어였다. 미술치유라는 단어의 소중함이 새삼 부상되고 있는 계절이다. 이 잔인한 봄, 미술의 치유 역할을 생각하게 한다. 세월호 참사, 그 수장의 현장을 생중계하는 방송을 보면서, 제정신일 한국인은 누구일까. 이 대목에서 미술가들의 향후 행보가 궁금해진다. 세월호 참사가 미술 창작과 어떤 상관관계를 맺을 것인가, 궁금하기 때문이다. 누구는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는 없다고 말했다. 현실을 직시하는 예술가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그런 대한민국이기를 기대해 본다. 세월호 참사는 과연 우리 예술계에 어떤 ‘자극제’가 될까. 치유로서의 예술활동, 기대되는 바 적지 않다. 잔인한 5월을 넘기면서 느끼는 소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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