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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강화도 전등사의 현대미술 사랑하기

윤범모

매년 가을이면 강화도 전등사 정족산 사고(史庫)에서는 현대미술 중진작가 전시를 개최한다. 바로 삼랑성 역사문화 축제의 일환으로 산사에서 미술작품과 만날 수 있다. 사고(史庫)에서 현대미술 전시! 희귀한 일이지 않을 수 없다. 사고라 함은 무엇을 말하는가. 바로 조선왕조 시대 『조선왕조실록』 등 역사 문헌을 보관했던 창고이지 않은가. 특히 정족산 사고는 4대 사고 가운데 『조선왕조실록』을 유일하게 지킨 영광스런 명당이었다. 이렇듯 영광을 지키게 된 배경에는 전등사 스님들의 남다른 역사 지키기의 정성이 깃든 결과였다. 사고, 현재는 빈 공간이다. 조그만 공간이지만 사고가 주는 이미지는 실로 막대하다. 역사와 문화를 새롭게 일구어내는 곳. 정족산 사고는 오늘의 미술을 품어내고 있다. 올해도 원(願)이라는 주제 아래 현역 작가를 초청했다. 이화자, 김근중, 오원배, 최동열, 김기라, 박영남, 이상현, 김준권(판화), 황헌만(사진), 정현(조소) 등 10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이들 작가는 작품을 2점씩 출품하여 산사의 가을을 멋있게 꾸몄다. 비록 규모는 작았지만, 기획자로서 나는 추억의 전시장으로 기록할 수 있었다. 사고에서의 현대미술 전시라는 형식도 이색적이지만 무엇보다 이들 출품작 전체를 전등사에서 구입한다는 점은 특기하게 한다. 이렇게 하여 전등사는 국내 유일하게 현대미술 컬렉션을 자랑하는 사찰이 되었다. 벌써 100점 이상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오, 정말!

 

전등사의 현대미술 사랑하기는 사고 전시만도 아니다. 바로 무설전(無說殿) 건물이 이색 공간의 현장이다. 전등사는 전통사찰 보호, 공원관리, 군사 지역 등 관련 법규 때문에 집 한 채 마음대로 지을 수 없는 곳이다. 그래서 다중이 참여할 수 있는 대형공간의 절실함은 쉽게 해결할 수 없었다. 드디어 작은 둔덕을 동굴처럼 파서 반지하에 커다란 신축건물을 지을 수 있게 되었다. 다목적 공간, 강당의 역할이 크기 때문에 언어의 성찬(盛饌)이 벌어지는 공간이다. 하지만 건물 이름은 역설적이게 무설전(無說殿)이라 지었다. 입 다물라! 무설전이란 이름은 이 건물 신축에 참여했던 나의 주장을 따른 것이다. 전등사는 무설전 신축에 즈음하여 창작단을 꾸렸다. 그 결과 현대미술가의 참여 아래 불상, 불화, 실내 인테리어, 그리고 공간 기획과 기록이라는 협업체제를 일구었다. 현대 미술가들이 참여한 국내 최초의 현대 불사(佛事)가 아닐까 한다. 나는 창작단의 기획 담당으로 참여했고, 그 과정과 자세한 내용은 책자로 출판할 예정이다. 불상의 김영원, 불화의 오원배, 인테리어의 이정교, 모두 쟁쟁한 현역 미술가들이다. 창작단은 국내 최초의 현대식 전각(殿閣)을 만들어보자는 의기투합으로 정말 이색적인 불사(佛事)를 이루어냈다. 무설전 회랑은 전시 공간으로 꾸며 전등사 소장 현대미술 작품을 전시한다. 물론 특별전시도 개최한다. 이 같은 전등사의 현대미술 사랑하기는 장윤 회주 스님과 범우 주지 스님의 원력에 힘입은 바 크다.

 





 

미술창작의 보고, 사찰
그동안 우리는 전국 도처에서 불사(佛事)라는 이름의 토목과 조형물 공사현장을 볼 수 있었다. 그 결과 사찰의 외형은 몰라볼 정도로 규모의 확대를 가져왔다. 정말 20세기 후반부 불사(佛事) 백서(白書) 같은 자료집이라도 있으면 보고 싶다. 아니, 차라리 눈을 감고 싶다. 불사라는 이름의 공사, 거기는 창작성과 현대성 부재의 현장이었기 때문이다. 범종을 새롭게 주조하면서 굳이 신라 범종의 복제로 만족하려 했다. 전국 도처에 성덕대왕신종의 복제품들, 지겨울 정도이다. 아니 전통성을 담보한 기술 수준도 아닌 복제 흉내들, 정말 눈 감고 싶은 현장이다. 불상이나 불화 그리고 불구(佛具) 등 우리 시대의 창작과 거리가 먼 것들이 불사라는 이름 아래 양산되었다. 한마디로 전국 사찰은 짝퉁의 집산지 같았다. 토함산 석굴암은 8세기의 ‘당대(當代)’ 창작품이었다. 과거의 불교미술은 당대의 시대정신을 담은 창작품이었다는 사실, 왜 이 부분을 간과하고 있는가. 그런데 20세기 후반의 불사는 왜 짝퉁의 시대로 추락했다. 이런 와중에 이번 전등사의 현대미술 사랑하기는 실로 의의가 적지 않다고 믿어진다. 원래 사찰은 미술 창작의 보고(寶庫)였다. 이런 창작정신을 오늘날에 이어 갈 의무가 있다. 전등사의 현대미술 사랑하기는 이런 의미에서 주목하게 한다. 전등사 정신이 전국 사찰로 번지게 되길 간절히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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