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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미술평론의 현실과 위기를 우연히 재현한 아카이브

반이정


'한국 미술평론의 역사전' 전시전경


“한국 미술평론을 세대 구분할 때, 본인은 몇 세대에 해당하죠?”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이 개관 10주년 기념으로, 한국 미술평론의 역사를 주로 현역 평론가들의 자료·사건을 기초로 정리한 전시 ‘한국 미술평론의 역사’(6.28-11.10,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의 개막을 일주일 앞두고, 김달진 관장님이 내게 던진 질문으로 글을 시작하는 게 낫겠다. 국내 미술평론가를 세대로 구분한 선례가 없을 테지만 연령, 비평 성향, 시대 조건 따위를 고려해서 “대략 3세대 같다”고 답했다. 광복 전후 미술비평의 맹아 격으로 지목되는 김용준, 김주경, 윤희순처럼 1900년대 태생을 제하고, 본격적인 근현대미술이 전개될 무렵 활동한 평론가부터 계보를 정리한 이 전시는 2부로 구성되었다. 1955년 본격 평론을 시작해서 1956년 한국평론가협회를 결성한 이경성(1919-2009)부터 오광수(1938- )까지를 1부로, 김복영(1942- )부터 반이정(1970- )까지를 2부로 묶었다고 소개했으니 전적으로 연령 기준으로 나눈 자료전시다. 이경성을 필두로 1920-30년대 태생을 1세대로 묶는 데엔 이견이 적을 게다. 복잡한 문제는 그 이후인데, 한국 미술 평론사는 연령 기준 외에 평론 성향으로 섬세히 나뉠 만큼 세분화 되어 있지 않을 뿐 아니라 뒤섞여 전개되었다.

흔히 1970-1980년대 한국 현대미술은 형식주의 모더니즘과 사실주의의 양립 구도로 쉽게 설명되는 형편인데, 각 사조에 가담한 평론가들마저 연령별로 뒤섞여 있어서 세대 구분의 기준이 되진 못한다. 1부의 이일, 오광수와 2부의 서성록은 형식주의 모더니즘에 속한 평론가인 반면, 1부 원동석과 2부 유홍준, 윤범모, 최석태, 김종길 그리고 전시 불참 의사를 밝힌 성완경은 사실주의를 지지하는 평론가 그룹이니 말이다. 그래서 1세대 이후 형식주의 모더니즘과 사실주의의 양립이 유지된 1990년대 초반 이전까지를 2세대로 묶어봄 직하다고 나는 본다. 그 후 1990년대 전후로 홍대와 압구정으로 상징되는 소비문화를 체험하고 1998년 전후 외환위기와 헌정사상 첫 정권교체를 겪은 세대의 다변화된 작품을 비평한 세대, 미술평론가협회에 굳이 가입하지 않고 평론하는 세대, 실기 전공자 출신자가 압도적 다수였던 1, 2세대와 달리 상대적으로 실기 비전공 평론가가 출현하기 시작한 세대를 나는 3세대로 봤다. 이런 정황 때문에 스스로를 3세대인 것 같다고 답했다. 또 3세대는 광주비엔날레의 출범(1995)을 경험했고, 가시적인 쇼를 만들어 관객과 출품 작가 모두를 만족시키는 직능(기획)이, 말과 글에 의존하는 평론의 존재감을 능가하는 걸 지켜본 세대이기도 하다. 

“윤진섭 독립기획자 오셨습니다.” 올해 6월 대구의 어떤 호텔에서 열린 ‘동시대 창작공간 연결망’ 만찬장에서 사회자가 평론가 윤진섭을 ‘독립기획자’로 소개하는 바람에 그와 같은 테이블에 앉은 일행들이 조용히 웃었다. 나 역시 심사장이나 행사장에 내 직함을 ‘독립기획자’로 인쇄해놓은 걸 본 적이 몇 번 있다. 독립 기획 자체를 한 적이 없는 나 같은 전업 평론가조차 기획자로 ‘퉁치는’ 선택압을 느낀다. 이처럼 한국 동시대 미술평론가는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정체성 위기를 체험하는 중이다.

그래선지 내가 본격 활동을 시작한 2000년 초반 이후 출현한 신진 후배 미술평론가의 수는 태부족할뿐더러 기획에 더 비중을 두고 활동하기에, 평론가라는 직함이 어울리지 않는 면까지 있어서 나와 다른 정체성을 지닌 세대라고 느낀다. 이 전시가 정리한 한국 평론가의 계보 중 최연소로 분류된 내가 내년이면 50세인 점도, 지금 평론이 직면한 지형 변화의 문제를 생각하게 만든다. 이번 전시가 정리한 51명의 국내 평론가들의 약력을 살펴봤다. 나처럼 전업 평론가의 수는 극소수에 그치고, 대개는 교직과 관직에 소속되었거나 예술 감독처럼 일시적이나마 기획자의 존재감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2002년 등단했으니 17년째 전업 평론을 하는 나지만 말과 글의 수요와 영향력이 급감한 시대를 본의 아니게 요약해준 이 아카이브 전시를 보며, 앞으로 뭘 할지 고민이 크다.


반이정(1970- ) 『중앙일보』, 『시사IN』,  『한겨레』, 『경향신문』 등 미술 칼럼·시사 칼럼 연재. 아트 서바이벌 프로그램 <아트 스타 코리아> 멘토·심사위원(2014). 라디오 <TBS>, <EBS>, <KBS> 미술 고정 패널 출연. 중앙미술대전 동아미술제 송은미술상 에르메스미술상 등 심사·추천위원, SeMA-하나 미술평론상 심사위원 역임. 서울대, 세종대 강사. 『한국 동시대 미술 1998-2009』 등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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