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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온 카와라와의 만남

양은희

「온 카와라의 유목적 정신: ‘세계시민’의 자서전(On Kawara’s Nomadic Mind: Autobiography of a ‘Citizen of the World’)」, 2004


온 카와라, 1957년경 도쿄 작업실


온 카와라, 1백만 년-과거, 1969-70


10년 전 받은 박사학위 논문에 대해 글을 쓰자니 쑥스럽다. 그럼에도 용기를 낸 것은 나의 논문 주제이자 개념미술의 선구자였던 온 카와라(On Kawara; 본명 On Kawahara, 1932-2014)가 작년 여름 사망했기 때문이다. 이후 이어진 추모의 글과 전시를 보면서 카와라와의 평범하지만은 않았던 만남과 잘 알려지지 않은 그의 삶에 대해 언급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는 패전한 일본에서 신동이라고 불리며 독학으로 예술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엔지니어였던 아버지의 도움으로 멕시코, 파리를 거쳐 1960년대 중반 뉴욕에 자리를 잡았으며, 당시 추동된 개념미술의 중심에서 조셉 코수드, 로렌스 위너 등과 함께 활동했다. 그가 사망할 때 준비하고 있던 회고전이 올해 2월 6일부터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열리는데, 세간에 알려진 그의 이미지를 반영하듯 부제가 ‘침묵Silence)’이라고 한다. 사실 그는 1965년 이후 공식적인 인터뷰나 사진을 거부하고, 매일 날짜를 회화로 기록하는 <날짜 회화> 시리즈, 만난 사람과 간 곳을 기록하는 <I Met>, <I Went> 시리즈, 1백만 년의 시간을 책과 소리로 담아내는 작업을 하면서 신비한 철학자이자 은둔자로 비쳐졌다. 뉴욕의 한 대학에서 미술사 박사과정 중이던 내가 논문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2000년부터 그의 족적을 찾아 일본과 미국의 미술관큐레이터들을 만나고, 그에 대해 책을 쓴 저자들과 Q&A를 주고받고, 그의 갤러리를 통해 소개받은 카와라 부부를 뉴욕 소호의 한 로프트에서 만나면서 그동안 받았던 울림은 일본이라는 무게를 딛고 홀로 서는 과정을 통해 누락된 편린, 억눌린 기억, 생활의 고단함을 넘어서 나온 정련된 정신세계의 결과이자 독서와 사색을 통해 갖춘 예지력의 발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2002년 3월 2일, 6월 5일 이틀간 그를 만나 각각 6시간 동안 대화를 나눴고 이후에도 그가 부연설명을 하려는 듯 나에게 전화를 걸 때마다 2시간 정도씩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일본어 억양이 강한 영어로 무슨 질문이든지 길게 대답했으며, 정작 요점을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여러 주제를 종횡무진하는 편이이었다. 신비한 유사과학이론을 좋아하고, 구지에프(Gurdjieff)의 소설『 손자에게 전하는 빌즈법의 이야기(Beelzebub’s Tales to His Grandson)』(1950)를 추천하기도 했다. 자신의 생각과 비슷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먼 거리를 마다않고 가는 여행자였던 그는 광주비엔날레에도 혼자 왔다 갔으며, 한국의 시인과 교류한 적도 있다고 했다. 이후 만난 미술계 지인들은 그에 대해 예술 이외의 노동을 거부했던 가난한 소호의 작가에서 뉴욕, 파리, 일본에 집을 보유한 성공한 작가로 변모했으며, 하루 2-3갑씩 담배를 피웠고, 일본에서 온 젊은 작가들을 도와주는데 적극적이었다고 전했다. 그 결과 나온 나의 논문「온 카와라의 유목적 정신: ‘세계시민’의 자서전(On Kawara’s Nomadic Mind: Autobiography of a ‘Citizen of the World’)」(2004)은 ‘초국가적 세계시민의 자서전’이라는 주제로 패전 후 일본을 떠나 탈 일본, 탈 중심을 화두로 삼고 세계의 여러 도시를 돌아다니며 그 도시의 언어를 통해 유동적이며 자유로운 예술가의 정체성을 확립한 그의 전 작업을 설명하고 있다.

2004년 박사학위를 받고 한국으로 돌아온 후 카와라 부부와 연락은 끊겼다. 그러나 소식은 계속 들려왔다. 2006년경 일본 친구를 통해 그가 부인과 이혼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사실 히로코는 1960년대 일본과 미국에서 예술가로 활동했으나 포기하고 남편과 두 자녀의 생계를 책임졌으며 이후 카와라의 매니저처럼 그의 커리어를 관리했었다. 카와라를 거의 그대로 빼닮은 아들 아키토 카와하라(Akito Y. Kawahara)는 현재 미국에서 곤충학자이자 교수로 활동하고 있으며, 새로운 나방을 발견하자 어릴 적 자신의 호기심을 길러주고 연구를 후원한 아버지를 기념하며 ‘온 카와라’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 양은희(1965- ) 뉴욕시립대 미술사 박사, 광주문화예술진흥위원회 실행위원 (2005-6), 인천여성미술비엔날레(2009) 커미셔너, 델코 스튜디오 디렉터(2008-12) 역임,『뉴욕, 아트 앤 더 시티』(2010) 저자. 현재 건국대 글로컬 문화 전략 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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