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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기울어진 평면’의 미국미술

박응주

나의 박사논문(11)
박응주 / 미술비평가

 「1930년대에서 1940년대로의 미국미술의 이행기에 관한 연구: 사회적 리얼리즘과 추상표현주의를 중심으로」, 2013


필자의 논문은 1930-40년대 미국미술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상식의 수준에서 그 시대의 예술이란 공산주의의 영향 아래에 있던 사회적 혹은 사회주의적 미술이라는 도구적 쓰임으로부터 벗어나 예술의 독자적 자율성을 성취한 40년대 추상표현주의의 승리로 진행되어왔다고 설명되곤 한다. 논문은 이 상식을 다시 묻는 것에서 출발했다.

30년대의 예술은 과연 공산주의 이념의 영향 하나만으로 설명되는가? 모더니즘 비평은 추상표현주의 미술을 왜 시각적 쾌(快)만으로 설명하려했고 이를 그토록 특권화시켜 부각시키려했을까? 미술사 자체와 미술비평사 자체를 동시에 질문하려했던 이 논문의 입지점이 여기에 있었다.

따라서 그것은 미국에서의 그 이행기 시대의 정치문화사적 배면에 대한 고찰을 요하는 일이기도 했다. 20세기 중반 미국의 이때란 양차 세계대전이라는 ‘천혜의 조건’에서 자본이니 이윤이니 자유경쟁이니 하는 자본주의를 다른 나라에 수출해 번영을 구가할 수 있었던 팍스 아메리카나의 태동기였다. 중산층 가정은 3년마다 새차를 살 수 있었고, 세율이 90%를 육박하고 있었을지라도 그들은 부자였고, 노후 연금이 확고히 보장되었던 이 예외적 풍요는 물론 소위 경쟁 국가들의 모든 산업시설이 전쟁으로 잿더미가 되었던 때 그들만은 안전할 수 있었던 1등 국가라는 조건 아래서만 가능할 수 있었던 은총의 산물이었다. 또한 “대공황을 이겨낸 루스벨트”라는 한 자애로운 국부(國父)의 미국주의 이미지 그 배면의 한 켠에서는 연방정부의 국유기업 약 70%를 사적 독점자본에 헐값에 매각한 권력과 자본의 유착이 완성되어갔던 때이기도 하다.




또한 미국민 대부분은 신(神)이 이 미국식 민주주의와 문명을 전 세계로 확산시키라는 운명을 부여했다는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의 신념체계에 둘러싸여 쿠바, 베트남, 필리핀 등에 대한 침략 전쟁을 묵인하며 애국적이고 긍정적이며 발전적인 역사관(Consensus Theory)을 내면화하고 있던 때이다. 중산층이 이민 노동자들의 궁핍과 정당한 몫의 투쟁에 대해 눈감고 있듯이, 기업이 국가를 인수하건 말건 자기 몫이 줄어들지 않을 때까진 침묵하듯이, 잉여농산물을 다른 나라에 처분할 수 있는 강권이 ‘문호개방정책’으로 포장되어질 수만 있다면 농부들은 가책을 느끼지 않았듯이, 그들은 모두 ‘눈을 감았던’ 것이다.

30년대에 대해 왜 그토록 걍팍한 억하심정적 삭제와 매몰이 가해졌는지, 일체의 사회적 가치와는 조우할 일 없는 미적 가치에의 경배인 형식주의 미학은 왜 열렬한 보수주의로서의 미국적 합의 사학과 조우하는지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그 연속선상에서 비로소 우리는 ‘미술사’가 문제가 아니라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의 형식주의 미학을 역사화하는 ‘미술비평사’가 “눈만 감으면 되었던 것”이라 말할 수 있게 된다. 『파르티잔 리뷰 Partisan Review』 진영으로 대표되는 당대의 미국 진보 지식인 집단에 광범위하게 풍미했던 전후 패배적 실존주의류 철학과 미학의 판본인 추상표현주의 형식주의 미학은 곧 ‘사회적 기억상실증(Social Amnesia)’이라 이름 지을만한 상황 외 다른 것이 아닌 것이다. 

이 논문을 통해 보았던 것은 결국 ‘근본에서부터 기울어져 있는 평면’이었다. 20세기 중반의 미국과 서유럽에서는 ‘모던한 것’에 대한 애호라는 뚜렷한 에토스가, 이 끊임없는 새로움 추구와 뮤지엄·예술사·예술 시장이라는 시장들이 서로 맞물려 있어 혁신이나 진보와 같은 의제를 숨가쁘게 닦달하던 분명한 감각이 있었던 것이다. 또한 미국의 정치지도자들은 문화제국으로의 발돋움을 위해 현대미술이 긴요한 ‘무기’가 될 것임을 2차 대전 와중에도 이미 명확히 간파하고 그 제도를 입안하고 있었다. 마침내 이 모든 경사면은 그린버그의 지극히 현실주의적인 문화적 선택으로서의 ‘형식주의 미학’이라는 최종의 총화로 열매 맺은 것이었음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우리를 일깨우는 것은 결국 이 기울어진 평면을 지나가는 어리석음, 그 뿐일 것이다. 그 때도 혹은 지금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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